재계에서는 지금 못한 특별 세무조사가 대선 후 대대적으로 실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세종시 국세청 본청. 연합뉴스
대기업들 사이에서는 행정부 수장이 공백 상태인 지금 세무조사를 받는 것이 다행이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 받는 게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청와대가 비어 있는 지금, 기획 조사가 내려올 리 없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진행하는 세무조사는 거의 정기 세무조사일 뿐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정기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기업은 LG전자·호텔롯데·대림산업·동국제강 등이다. 이들 기업은 대부분 정기조사를 담당하는 국세청 조사1국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해외 자회사나 법인을 통해 사업을 하는 호텔롯데와 동국제강은 서울지방국세청 국제거래조사국에서 실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해외에서 원재료를 많이 들여오기 때문에 국제거래조사국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근 국세청의 대기업 세무조사가 큰 화제가 되고 있지만 대부분 정기 조사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대기업이 적지 않다. 재계에서는 국세청으로서도 행정부 수반자리가 비어 있고 정부가 교체되는 시기에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이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정 기업을 표적으로 삼았다거나 정무적 판단이 들어간 세무조사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금 받는 게 낫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러한 분위기가 대선 후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지금 못한 특별 세무조사가 대선 후 대대적으로 실시될 것이라는 얘기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재계 5위 기업 중 박근혜 정부에서 세무조사를 받지 않은 기업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미래에셋 등 지난 정부에서 크게 성장한 기업도 대선 후 세무조사의 타깃으로 떠오른다.
이와 관련, 2015년부터 현대·기아차 협력업체인 경신·만도·아진산업·인팩 등이 줄줄이 정기·특별세무조사를 받은 사실로 볼 때 현대·기아차의 세무조사가 임박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앞의 사정기관 관계자는 “삼성은 경영권 승계가 진행되고 있어 여러 문제를 보기 위해서는 이번에 세무조사를 할 수밖에 없다”며 “현대·기아차 경우 승계 문제도 남아 있어 세무조사의 다음 타깃이라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기아차는 2013년 정기 세무조사를 받은 바 있어 정기 세무조사 시기와도 맞물려 있다.
서울지방국세청이 현대기아차의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대선 이후 현대·기아차도 타깃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박정훈 기자
한편, 국세청 세무조사에 대비하는 재계 자세가 흥미롭다. 우선 재계는 경제단체들의 입을 빌려 세무조사를 줄여달라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다. 지난 3월 14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임환수 국세청창을 초청한 정책간담회에서 “경기를 고려해 세무조사 규모를 과감하게 줄이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회계장부를 이중으로 작성, 사용하는 대기업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실제로 수백억 원을 들여 내부용 회계장부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기업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국세청 출신 인사들을 사외이사로 영입해 조세자문 등의 역할을 맡기기도 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11개 상장사 중 8개사에서 국세청 출신 인사를 사외이사로 두고 있으며 CJ그룹 계열사에도 국세청 출신 사외이사가 여러 명 포진해 있다. 이들은 주로 국세청 세무조사와 관련해 미리 정보를 얻거나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는 비난이 제기되기도 한다.
국세청 관계자는 “기업들이 세무조사에 대비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국세청 퇴직 관료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것 같다”며 “그러나 이들이 세무조사와 관련해 정보를 얻거나 막기는 힘들다”고 잘라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세무조사에 대비하거나 정권에 줄을 대기 위해 영입한다는 생각은 잘못됐다”며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분을 사외이사로 모시다보니 공교롭게 관료 출신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