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결과 여파는 체제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의 운명도 걸려있다. ‘문재인이냐, 안철수냐’에 따라 친문(친문재인)계와 반문(반문재인)계도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봉착한다. 승리 땐 청와대로 가는 급행열차에 탑승하지만, 패배 땐 정치적 사생아로 전락할 수도 있다. 계파나 당도 마찬가지다. 패배 땐 사실상 파산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본청 앞에서 열린 ‘천군만마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박은숙 기자
“친문계 전진 배치냐, 대탕평책이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대선 이후 최대 과제다. 문 후보는 내각의 4대 키워드로 ▲도덕성 ▲개혁성 ▲대탕평 ▲대통합을 제시하며 “대한민국 드림팀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래도 우열은 존재한다. 문 후보 당선 최대 수혜자는 ‘문재인의 사람들’이다. 임종석 후보 비서실장을 비롯해 양정철 비서실 부실장, 김경수 대변인과 윤건영 종합상황본부 제2부실장, 서훈 안보단장, 한병도 조직본부 부본부장 등이 최측근 그룹에 속한다.
이 중 임 실장은 문 후보와 핫라인을 구축한 몇 안 되는 인사다. 문재인 캠프 관계자는 “문 후보 최측근 중 좌장은 단연 임 실장”이라며 “임 실장이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올해 대선과 지난 대선은 큰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의 선대위 구성을 둘러싼 갈등 과정에서도 임 실장에 힘을 실어줬다. 임 실장이 차기 정권의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을 것이란 얘기도 끊이지 않는다. 참여정부 인사인 김 대변인과 양 부실장, 한 부본부장은 2선에서 후방 지원을 하고 있지만, 언제든지 내각에 전진 배치될 수 있는 인사로 꼽힌다.
당 출신으로는 김민석 종합상황본부장과 송영길 총괄본부장, 노영민 공동 조직본부장과 백원우 조직부본부장, 김광두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위원장, 조윤제 국민성장위원장 등도 문 후보 측근이다. 전윤철·김상곤·김진표·김효석 공동선대위원장 등도 국무총리 및 경제, 교육 부처 등용 선순위 인사들이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통합 용광로 내각인 셈이다.
내각뿐만이 아니다. 친문계는 민주당 차기 당권 구도에서도 절대 우세를 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불협화음 없는 당·청 관계는 정권 초반 국정 드라이브의 전제조건이다. 포스트 대선 과정에서 당은 ‘문재인 정권-친문 당대표’ 공식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추미애 체제’ 임기는 오는 2018년 8월까지다. 다만 추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2018년 초 조기 전당대회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등을 둘러싼 주류와 비주류의 진검승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6월 예정된 지방선거 직전 전당대회는 민주당 내 권력구도의 최대 분수령이다. 친문계도, 비문(비문재인)계도 정치적 명운을 걸고 한판승부를 벌여야 한다. 당 내부에선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이 당 전면에 설 것으로 전망한다. 86그룹 맏형격인 이인영 의원과 우상호 원내대표 등은 자의 반 타의 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된다. 86그룹 내부에서는 당내 대선 경선 당시부터 이 의원 등이 서울시장 쪽으로 빠지고 원내에 2세대 운동권 그룹이 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86그룹과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내 운동권 인사들이 박 시장을 지지했던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친문계 한 관계자는 “박 시장이 일단 서울시장 3선 행보에 나서고 당 내부에서 세대교체론이 나올 때 사퇴하는 게 가장 좋은 그림”이라며 “이 경우 박 시장은 차기 대권 직행, 1세대 86그룹은 서울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장, 2세대 그룹은 원내 진입 등을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문 후보의 통합정부추진위원회(통추위)에 합류한 비문계 박영선·변재일 위원장과 이종걸 공동선대위원장 등도 서울시장 출마 및 당권 후보로 거론되는 만큼, ‘포스트 대선’ 때 세력 구축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문 후보가 삼고초려한 김덕룡 ‘하나되는대한민국위원회’ 상임위원장과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 국민대 특임교수 등도 각각 차기 내각과 전략공천 대상이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국민대통합위원회와 비슷한 조직의 수장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월 재보선 당시 민주당의 관악을 전략공천 대상자로 거론된 김 교수도 대선 직후 재보선에 전격 등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 후보 패배 땐 친문계 입지는 급속히 좁아진다. 문 후보는 당장 정권교체 탈환 실패에 대한 책임론에 휩싸인다. 정계은퇴가 불가피하다. 친문계도 사실상 2선 후퇴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친문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계파인 정세균계 역시 정세균 국회의장의 임기 만료(2018년)에 맞춰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 계파 구도가 새판 짜기에 돌입하는 셈이다. 반면, 비문계의 입지는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도 마찬가지다. 안철수 후보 측근은 크게 ▲진심캠프 출신(김성식 총괄선대본부 부본부장·박선숙 전 의원·조광희 비서실 부실장) ▲정치신인그룹(손금주 수석대변인·김경록 대변인) ▲동교동계(박지원 상임 선거대책위원장·최경환 비서실장) 등이다. 이 밖에 경쟁자였던 손학규 공동 상임선대위원장과 외곽그룹의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와 유승찬 스토리닷컴 대표 등이 있다. 한때 불화설이 나돌았던 김한길 전 국민의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도 차기 당권 1순위 인사다.
이 중 ‘상왕론’에 시달리는 박 위원장은 “안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공직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간 박 위원장은 “안 후보를 앞세워 차기 실세 총리를 노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민주당 범주류 한 관계자는 “차기 정부의 제1기 총리가 박 위원장의 마지막 꿈”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공직 배제를 선언했다. 박 위원장 2선 후퇴도 여전히 살아있는 카드다.
앞서 안 후보 측근인 문병호 의원과 호남인사인 황주홍 의원은 공개적으로 박 위원장 백의종군을 요청한 바 있다. 야권 안팎에선 박 위원장이 대선 이후 ‘포스트 호남 맹주’ 자리를 지키다가, 정권 중·후반기 ‘구원투수’로 등판할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온다. 안 후보가 연정과 협치를 매개로 한 통합정부를 천명한 만큼, 연합정권이 출범할 가능성 크다.
안 후보는 5월 6일 통합 비전 선포식을 통해 ‘오픈 캐비닛’(열린 내각)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앞서 안 후보는 4월2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에게 ‘개혁공동정부 준비위원회’를 맡아달라고 제안한 뒤 ‘국회 존중’ 등 오픈 캐비닛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안 후보와 김 전 대표가 심야회동(4월 27일)한 다음 날이다. 양측의 심야회동 직후 정치권 안팎에선 ‘김종인 총리설’이 흘러나왔다. 고리는 임기단축 개헌이다. 김 전 대표는 “나는 자리를 전제로 하고서 일을 하지는 않는다”라면서도 킹메이커 역할론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김 전 대표를 비롯해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등이 중용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패배 땐 소용돌이다. 안 후보 책임론은 물론, 상왕론의 박 위원장과 70대에 접어든 손 위원장 등은 정계은퇴를 요구받을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 호남 득표율이 과반에 미달하거나, 전체 득표율이 30%대에도 못 미칠 경우 당이 쪼개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부는 ‘도로 민주당’, 일부는 ‘독자’, 일부는 제3지대 정계개편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의 통합정부 인사로 거론되는 김 전 대표와 정 이사장의 정치적 입지 축소도 불가피하다.
보수진영도 마찬가지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패할 경우 보수분열 책임론에 시달린다. 득표율이 낮은 쪽 책임론이 더 크다. 득표율 10% 미만일 땐 당이 사실상 파산에 직면한다. 대선 이후 책임론을 둘러싼 책임 공방전을 펼치다가 2018년 지방선거 직전 ‘좌파 정권 불가론’을 기치로 보수대통합에 나설 공산이 크다. 이른바 ‘창조적 파괴’를 통한 새집 짓기다. 자유한국당 한 관계자는 “정치는 생물이다. 대선 후보가 아닌 개개인의 의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포스트 대선’의 권력구도”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
김한길이 기지개를 켠 까닭은? ‘포스트 대선’ 정계개편 카운트다운 여의도 정가의 눈은 ‘포스트 5·9 대선’으로 쏠린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든 ‘안철수 정권’이 출범하든 포스트 대선발 정계개편은 상수다. 5·9 장미대선이 보수의 궤멸과 ‘야 vs 야’ 구도인 만큼, 대선 이후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모두 헤쳐 모여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그간 숨죽이던 김한길 전 국민의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대선 보름을 앞둔 4월 24일 정치적 기지개를 켜자, 정치권 안팎에선 포스트 대선 정계개편의 주도권 다툼이 초읽기에 돌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전 위원장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 하락 이후 급물살을 타는 ‘반문연대’에 연일 선을 긋고 있어서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진영 내부에서 ‘안철수·홍준표·유승민’ 연대론에 불을 지핀 것과는 달리, 김 전 위원장은 “지금 상태에서 여야 단일화,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 김 전 위원장은 4월 24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신의 옥탑방 집무실에서 간담회를 열고 “안 후보를 전방에서 도울 것”이라며 “친박(친박근혜)계가 떠난 자리에 친문(친문재인)이 들어서는 게 정치 발전이겠냐. (안 후보에게) 반전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뒤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서는 ‘3당 후보 원샷 단일화’ 추진에 대해 “당혹스럽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와 관련해선 “그때는 어쨌든 ‘야 대 야’ 후보의 통합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국민의당 상층부 입장도 갈린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반문 단일화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 정부를 고리로 중도개혁세력 연대에 나서자는 의미로 풀이된다. 손 전 대표는 4월 22일 서울 모처에서 이종구 바른정당 의원과 비밀리에 회동하고 연대 논의를 했다. 정동영 의원도 손 전 대표 주장에 힘을 싣는다. 반면, 박지원 대표는 연대론에 대해 “남의 집 사정일 뿐”이라며 자강론의 안 후보 지원 사격에 나섰다. 연대론을 놓고 ‘안철수·박지원·김한길’ vs ‘손학규·정동영’ 등으로 갈린 셈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들의 ‘포지션’이다. 박 대표는 대선 이후 호남 맹주를 노린다. 5·9 대선 유세 첫날부터 ‘대북송금 특검’ 등 호남 반문 정서에 불을 지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 전 위원장은 중도개혁세력 통합론자다. 칩거를 깬 김 전 위원장의 행보에는 ‘포스트 대선’의 주도권 확보 전략이 깔렸다는 얘기다. 대선 이후 김 전 위원장은 정동영 의원과 당권 경쟁에 나설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온다. 통합정부론자인 손 전 대표는 사실상 이번 대선이 마지막이다. 20대 대선은 없다. 대선 후 개헌 변수가 살아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철수 정권 출범 여부에 따라 사실상의 내치 대통령인 실권 총리를 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포스트 대선 정계개편은 제3지대뿐만이 아니다. 5·9 대선에서 범보수진영은 한국당과 바른정당, 새누리당 등 세 갈래로 찢어진 채 각자도생했다. 대권 여의주를 거머쥐지 못하더라도 보수적통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쪽이 ‘포스트 대선’ 과정에서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시기는 2018년 지방선거다. 21대(2020년) 총선 전초전인 지방선거를 앞두고 범보수진영의 원샷 통합론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큰 셈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홍준표 후보 중심으로 재편된 한국당, 유승민 후보와 김무성 의원 간 갈등 관계인 바른정당, 태극기 민심을 업은 새누리당 등이 대선 이후 보수 적통 경쟁에 나선 뒤 합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