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표절 시비에 휘말린 창작자가 늘 그런 것처럼 전인권 역시 “비슷하긴 하지만 표절한 적은 절대 없다. 나는 독일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고, 이 곡은 이혼한 아내를 생각하며 지은 노래”라고 의혹을 일축했다. 남은 것은 상대 곡 원작자인 블랙 푀스의 작곡가가 입장을 밝히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미 곡을 공개한 이후로 40여 년이 지난 시점이라 원작자의 입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속 시원한 결론을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곡 ‘링딩동’을 그대로 도용한 캄보디아 연예인의 뮤직비디오. 유튜브 화면 캡처.
이미 기존에도 국내 가수와 해외 가수 간 표절 문제는 비일비재했지만 문제가 제기된 초기에만 반짝했을 뿐, 어떻게 결론이 내려졌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실제 국내 가수 또는 해외 가수가 자신의 표절을 인정해 손해를 배상하거나, 정식 재판으로까지 이어져 승소 또는 패소했을 때에나 사건이 재조명을 받는 식이다.
대부분은 쌍방 간 협의로 음원 수익에 대한 권한을 양측이 나눠 갖는 방법으로 분쟁을 끝내거나, 아예 문제 제기 자체를 하지 않고 흐지부지 흘려보내는 경우도 많다. 유사성만으로 표절 여부를 입증하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상대가 해외라면 인력과 자금 등 신경을 써야 할 사안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K-Pop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할 즈음인 2010년대 초반에 샤이니, 2NE1, 소녀시대 등의 노래가 동남아 지역에서 빈번하게 표절됐었다. ‘캄보디아 링딩동’이나 ‘동남아 2NE1’으로 알려진 이야기들이다. 당시 대중들은 국내 연예인의 저작권 등 지적재산권이 침해됐다는 데 분노하기보다는 사안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을 보였다. 원곡을 무단으로 가져다 사용한 것은 맞지만, 이 외국 그룹의 무대 모습이나 저예산 뮤직비디오 등을 보면 가수라기보다는 오히려 가수를 패러디한 코미디언에 가깝게 보였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표절 시비에 휘말린 가수의 소속사들도 딱히 본격적인 대처에 나서지 않고 그저 황당한 해프닝으로 치부하는 듯했다.
그러나 2011년 세르비아에서 본격적으로 K-Pop을 표절한 노래가 공개되면서 국내 연예기획사들도 단순한 해프닝으로만 사안을 취급할 수 없게 됐다. 세르비아의 가수 옐레나 카를루사가 샤이니의 ‘루시퍼’를 통째로 표절한 곡 ‘여자를 증오하는 남자(Muskarac koji mrzi zene)’를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 등 온라인에 공개한 것. 카를루사는 1995년에 데뷔해 자국인 세르비아 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여가수다.
세르비아 여가수 옐레나 카를로사가 샤이니의 ‘루시퍼’를 도용한 의혹을 받고 있는 곡을 자신의 유튜브 공식 채널을 통해 공개했다. 2017년 현재까지도 이 곡을 유튜브나 유료 음원사이트에서 들을 수 있다. 유튜브 옐레나 카를루사 공식 채널 캡처.
이전의 ‘캄보디아 링딩동’에 대해서는 무단 도용에 대한 항의만 했을 뿐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SM은 적극적으로 법적 절차에 나설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루시퍼’를 공동 작업한 SM 소속 작곡가와 미국 작곡가가 저작권 침해 사실에 동의해 유럽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하고 공동 대응에 나섰다. 금방이라도 카를루사가 표절 곡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토해내고, SM 측에 피해를 배상한 뒤, 인터넷 사이트에서 표절 곡을 내릴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과연 이 사건은 어떻게 종결됐을까. SM이 이에 대한 답변을 피하는 만큼 정확한 결말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카를루사가 SM의 강경 대응 주장이 있은 지 1년이 지난 2012년 6월 12일자로 앨범 ‘디바(DIVA)‘에 수록된 문제의 곡을 그대로 자신의 유튜브 공식 채널에 공개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이 곡은 2017년 4월 현재까지도 유튜브나 해외 음원사이트를 통해 듣거나 다운 받을 수 있으며, 심지어 국내 음원사이트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이를 보면 SM 측의 “강경한 법적 대응”은 주장만큼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거나, 상호 협의를 거쳐 곡의 이용을 용인하는 방식으로 사안이 허무하게 종결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표절 의혹이 불거져도 아예 대응조차 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자사 소속 가수들이 표절을 했다는 논란에도, 표절을 당했다는 논란에도 “문제가 없으니 대응하지 않는다”고 일관했던 YG엔터테인먼트의 경우다. YG는 지난 2015년 미국 팝가수 데릭 블락이 태양의 ‘눈, 코, 입’을 표절해 음원사이트에 공개한 것처럼 전체 곡을 무단 도용하고, 상대가 이를 인정한 사례가 아니라면 침묵을 지키는 방식을 고수했다.
실례로 YG 소속인 싸이의 경우는 2016년 2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가수 겸 코미디언 콤비 ‘오리엔탈 라디오’에게 표절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이에 대해 YG가 나서서 입장을 밝힌 적은 없다. 오리엔탈 라디오는 각각 ‘강남스타일’과 ‘대디’와 상당히 유사한 곡 ‘퍼펙트 휴먼’과 ‘골든 타워’를 공개했던 바 있다. 이 가운데 ‘퍼펙트 휴먼’은 일본 아이튠즈 차트 1위를 달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유사한 곡 진행, 멜로디로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일본 가수이자 개그콤비 ‘오리엔탈 라디오’의 곡 ‘Perfect Human’의 뮤직비디오. 이 곡은 유튜브에서 2017년 기준 4900만 뷰를 기록했다. 유튜브 화면 캡처.
당시 일본 언론들도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멜로디‘ 같다”며 표절 가능성을 에둘러 표현할 정도였다. 일본 팬들 역시 “이건 싸이의 패러디 곡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를 공론화해야 할 저작권자 측이 침묵하고 있는 만큼 ‘오리엔탈 라디오’는 별 다른 제재 없이 방송이나 무대 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연예기획사 측은 현실적으로 제재를 가하거나 피해 보상을 받아내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표절 의혹이 제기되더라도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저작권을 보호하는 법 제도가 미미한 국가이거나 한국과 다소 다른 법이 적용되는 국가인 경우 애초에 법에 호소할 수조차 없어 피해를 입더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설사 승소하더라도 상대방으로부터 받아낼 수 있는 손해배상 금액이 재판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터무니없이 적다는 점도 기획사를 위축시킨다. 이에 대해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누가 들어도 동일한 곡이라면 단순히 경고문을 보내고 사건을 공론화시키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표절 가수 측이 원곡의 일부를 변경하고는 ‘원곡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면 곡의 원작자나 저작권자는 정식재판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는 승소하기 어렵다”라며 “승소해도 무단 도용한 음원을 이용한 수익금과 그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받아내야 하는데 재판 비용과 비교해서 터무니없이 적은 경우도 많다. 재판을 진행할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으니 웬만하면 경고문을 보내고 음원사이트에서 해당 음원을 내려달라고 요구하는 데 그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