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태 씨가 지난 4월 14일 오후 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 정순신)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손영배)는 지난 4월 11일, 소환에 불응하고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영태 씨를 자택에서 긴급 체포했다. 검찰이 고 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관세청 인사 개입 의혹에 따른 알선수재 등.
검찰에 따르면 고 씨는 최순실 씨를 등에 업고 관세청 인사에 개입해 김 아무개 씨를 인천본부세관장 자리에 앉히는 대가로 2000만여 원을 받았다. 또 고 씨는 주식 투자금 명목으로 8000만 원을 빌렸다가 갚지 않은 혐의(사기)도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 고 씨는 2억 원 가량을 투자해 불법 인터넷 경마 도박 사이트를 공동 운영한 혐의(한국마사회법 위반)도 받고 있다.
태블릿 PC부터, 최순실 씨의 의상실 관련 영상까지, 최 씨의 전횡을 폭로하는 자료를 언론과 검찰에 넘기며 국정농단 수사에 적극 협조했던 고 씨. 그랬던 고 씨가 결국 6개월 만에 ‘국정농단의 조력자’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사실 고 씨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은 사건 초기부터 있었다.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졌던 지난해 말만 해도, 검찰 내에서는 “결국 고 씨도 같이 해먹으려다가 최 씨와 관계가 틀어지자 폭로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한 패였다가 배신했던 사람이니, 진술은 가감 없이 하겠지만 과연 그를 ‘정의롭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했을 정도.
하지만 촛불 민심과 국정감사,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맞물려 고 씨에 대해서는 수사의 ‘시옷’자도 꺼내지 못했던 게 검찰이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는데 성공하자 고 씨를 보기 좋게 구속해 버렸다. 검찰은 “고 씨가 구속 사안이 아니라며 적부심까지 신청했지만 법원이 ‘구속이 정당하다’고 판단하지 않았느냐”고 해명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줄타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만 하더라도 4%만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느냐”며 “그 때와 지금은 흐름이 다르고, 검찰 입장에서는 다음 정권이 누가 들어선다 하더라도 ‘균형 있게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모든 죄는 명명백백 처벌했다’는 명분이 있어야 향후 검찰 개혁 얘기가 나올 때 조금이라도 불똥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 역시 “검찰은 인사권이 청와대에 있기 때문에 ‘묶여있는 신세’”라며 “새롭게 자신들을 묶을 정권이 어디인지 불확실할 때에는, 조금이라도 원칙에 가깝게 행동해야 비판을 최소화할 수 있고 그런 면에서 ‘법리’를 이유로 고 씨를 처벌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또 “야당 성향의 새 정권이 얼마만큼의 지지를 받고 청와대에 입성할지 모르지만 결국 몇 달 후면 다시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국회에서 싸움이 시작될 것이고 그때는 보수 진영의 정당도 검찰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직으로 회복되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검찰은 정권의 눈치를 보며 균형잡기 식 수사를 곧잘 선보이곤 한다. 앞선 성완종 리스트 사건 수사 때만 하더라도, 이완구 당시 총리 등 여당(새누리당) 의원들이 줄지어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 씨를 불구속 기소하며 ‘여야 균형 있는 처벌’을 선보인 바 있다.
때문에 고영태 씨 측은 이번 검찰의 수사를 정치적인 결정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고 씨 변호인은 “공교롭게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영장심사가 진행된 날 고 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는 점에서 균형을 맞추려 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비난했는데, 이후에도 고 씨 변호인단은 “검찰이 불성실하게 조사하고 있고, 고 씨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등 위법 수사를 자행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럼에도 ‘특검’ 얘기가 나오고 있는 우병우 전 수석의 재판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불구속 기소된 우 전 수석의 첫 공판준비기일은 어제(1일) 열렸는데 정식 공판과 달리 공판준비 때는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없는 만큼 우 전 수석은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우 전 수석은 가장 ‘확실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부장판사 출신인 위현석 변호사(사법연수원 21기)를 변호인으로 선임한 것. 지난해 옷을 벗고 나온 위 변호사는 현재 서울중앙지법 사건을 담당할 수 있는 전관 중에 가장 ‘능력 있는’ 변호사로 손꼽히는데, 우 전 수석은 위 변호사를 앞세워 검찰이 내세운 혐의들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최민준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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