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취임 후 100일’은 ‘허니문’ 기간으로 통한다. 일요신문 DB
대통령 취임 후 100일은 높은 지지율과 국회 협력 속에서 주요 공약을 밀어붙일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정치권에서도 이 기간을 ‘허니문’이라 부르며 신임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지켜왔다. 취임 후 100일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시작된 의회 특별회기가 100일 만에 끝난 데서 나온 말이다. 정치권에선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 기간 의회와 함께 경제 위기 극복 법안 등을 통과시켰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19대 대통령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간이 없다. 인수위에서 했던 업무보고와 주요 인사는 취임 후 이뤄진다. 전직 대통령들과는 출발선상부터 다른 셈이다. 신임 대통령은 취임 후 100일 동안 개혁 과제 추진은 고사하고 정권을 ‘세팅’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국내 정치 상황이 대통령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전직 대통령 탄핵에 따른 보수-진보 갈등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에서 진영 논리가 대통령 앞길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군다나 어느 쪽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국회 원 구성을 감안하면 신임 대통령은 야당과의 관계 설정이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차재원 부산카톨릭대 교수는 “(누가 되더라도) 여소야대 국면이기 때문에 사실상 국회에서 모든 걸 인준 행사하는 식이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사안에 대해 국회 결정을 받아야 되는 상황이 된다는 말이다. 대다수 후보가 ‘협치’ ‘연정’을 얘기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했다. 채진원 경희대 교수 또한 “여소야대 국면이 신임 대통령에겐 결정타로 작용할 것이다. 진영 논리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탰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임기 초반 인사청문회는 대통령 시험 무대다. 이를 무난히 통과한다면 대통령 국정 운영은 탄력을 받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임기 내내 야당에 휘둘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임기 초 부적절한 인사 발탁으로 청문회 통과에 실패했고, 이는 국민들에 대한 지지도 하락으로 이어졌다. 또 틀어진 야당과의 관계도 복원되지 않았다.
2018년 6월 지방선거도 신임 대통령에겐 악재다. 그동안 지방선거는 대통령 임기 중반에 치러졌지만 이번엔 취임 1년 후다. 대선이 끝난 뒤 정치권이 바로 지방선거 체제로 전환하는 이유다. 야권은 내년 지방선거를 대통령 임기 1년 평가라는 프레임을 내걸 가능성이 높다. 야권이 임기 초부터 대통령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채진원 교수는 “지방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야권에선 새 정부를 철저히 견제하고 심판하려는 태도로 나올 것”이라고 했다.
차재원 교수는 개헌 또한 취임 100일의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그는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개헌이다. 개헌은 새 정부 개혁 과제 가운데 하나다. 개헌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공론을 모아야 한다. 국회의원과 대통령 임기 등 권력 구조를 어떻게 맞추고 조정할 것인가가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국민 기본권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이해도가 다르기 때문에 조율해야 한다. 지방 선거 전까지는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가 다 끝나야 한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취임 100일 동안 신임 대통령이 ‘협치’를 중점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채진원 교수는 “허니문 기간을 잘 보내야 한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대통령은 중도적이고 신망 높은 인사를 등용해 야권과 협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여당 원내 협상팀도 잘 꾸려야 한다”고 했다.
차재원 교수는 “국민들은 협치에 대한 기대도 갖고 있지만 개혁과 통합이라는 기대도 갖고 있다. 모순된 상황 속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어느 부분을 소홀히 하고 미룰 것인가를 두고 내부적으로 갈등이 생기게 된다. 당 내에선 호남 영남 수도권의 이해가 또 다를 것이다. 이런 부분까지도 조율해야 한다. 이런 걸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이 실패했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