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나무다리로 이어진 깐따야 해변은 한적한 어촌이다.
제 고향은 넓고 넓은 강원도 바닷가입니다. 그래서 스무 살 무렵까지 바다와 마주하며 살았습니다. 바다와 관련된 추억도 많습니다. 이 나라에 와서도 가끔 가고 싶지만 해변은 너무 먼 거리에 있습니다. 최근 외국인이 자주 찾는 웨이싸웅 해변은 양곤에서 6시간 걸립니다. 가장 가까운 곳입니다. 다른 유명 해변은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합니다. 깐따야 해변은 라카인 주 나빨리로 가는 도중에 있습니다. 캠핑카로 16시간이 꼬박 걸립니다. 한때 쓰나미가 덮친 곳이어서 한적한 해변입니다. 화려했던 관광지였지만 이젠 게스트하우스 하나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마찌쭝이란 섬은 라카인 주 서북쪽에 있습니다. 서부 해안의 국내선 항공기점인 딴드웨(Thandwe)에서 미니버스로 약 2시간을 북쪽으로 더 올라갑니다. 해안에서 통통배를 타고 3시간을 바다로 나갑니다. 돌고래들이 환영하는 검푸른 바다 가운데 섬이 있습니다. 4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어촌. 섬 주변으로 크고 작은 무인도가 흩어져 있습니다. 바다낚시가 잘 되는 곳입니다. 섬 주민들은 한국 사람도 처음 보고 회를 떠먹는 것도 처음 보니 신기한 듯 지켜봅니다. 주민들은 집집마다 배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잡은 큰 물고기들은 바다 위에서 거래합니다. 태국에서 온 큰 배들에게 팔기도 합니다. 작은 생선들은 집으로 가져와 말리거나 젓갈을 담습니다. 하루를 바다생선들과 함께 하는 고단한 삶입니다.
마찌쭝은 미얀마 서북쪽에 자리 잡은 섬이다. 큰 고기는 바다에서 거래하고 작은 고기는 가져와 말리거나 젓갈을 담근다.
이 여행길에는 배낭여행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깐따야 해안과 마찌쭝 섬은 황량하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머나먼 길을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름 모를 낯선 해변에서, 생각나는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이름 모를 해변에 당도해 짐을 풀며 썼다는 에세이 ‘넓고 넓은 바닷가에’(원제 Beachcombing at Mirama). 미국 저널리스트 리처드 보드(Richard Bode)가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담은 글입니다. 그는 바닷가에서 산 삶의 기록으로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의 다른 작품입니다. 그는 캘리포니아 미라마 해변으로 떠나 삶의 평안과 기쁨의 뿌리를 찾았습니다.
그는 뉴욕에서 잘 나가던 저명한 신문편집인이었습니다. 가장 바쁘게 살던 어느 날, 그는 서부의 낯선 해변으로 떠납니다. 미라마 바닷가입니다. 자신이 모은 재산을 가족들에게 모두 넘겨줍니다. 달랑 밴 한 대, 타자기, 레코드 플레이어, 책 몇 권을 지닌 채 허름한 오두막에 살며 모래톱을 걷는 비치코머로 살아갑니다. 그의 인생에 대한 성찰은 바닷속처럼 깊어집니다. 때로는 소박한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웃음 짓게 합니다. 그는 비로소 이웃 사람들을 사랑하며 사는 기쁨을 누린 듯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이곳 바닷가 모래톱을 거닐면서 나 자신과 보조를 맞추는 법을 익혔기 때문에 쉽게 지치지 않는다. 나는 맥박을 높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체중을 줄이거나 심폐기능을 높이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내 그림자를 보려고 이곳에 왔다.”
미얀마 서부 해안길을 걷습니다. 모래톱을 걷다가 주인 없는 바다카페에 주저앉아 주인을 기다립니다. 무더운 여름인지라 주인은 뒷마당 그늘에서 풀잎처럼 옆으로 누워 잠들어 있을 것입니다. 먼지 나는 황톳길과 바나나 숲을 걸으며 만난 시골사람들이 떠오릅니다. 항구에서 만난 숯 파는 청년의 그을린 얼굴, 카페에서 만난 졸린 눈동자의 소년, 아기를 안고 과자 바구니를 위태롭게 머리에 인 젊은 엄마. 물병을 코앞에 들이대며 파는 예닐곱된 소녀의 머리에는 자스민 꽃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잠시 휴대폰을 꺼내봅니다. 한국은 선거철이라 수많은 지지그룹의 메시지가 페북과 카톡에 번져 있고 댓글이 이어져 있습니다. 숨이 막힙니다. 문득 머릿속에 앞으로의 인생, 무엇을 지지하며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나게 합니다. 아무것도 지지할 게 없는 듯한, 오늘 만난 그 얼굴들이 제게 또 질문합니다. 그대는 삶의 그 무엇을 지지하며 살겠어요? 그 무엇을.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