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6일, SGI서울보증보험을 이끌던 최종구 당시 사장은 수출입은행장으로 갑작스럽게 지명돼 자리를 옮겼다. 최 행장은 강릉고와 고려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5회로 공직에 입문해 재정경제부 외화자금과장, 국제금융과장, 국제금융심의관 등을 거쳐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과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을 지냈다. 이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을 거쳐 지난해 1월 서울보증 사장에 취임했다. 취임할 때부터 낙하산 성격이 짙은 인사인 데다 선임 후 불과 1년 남짓 만에 다시 자리를 옮겼다는 점에서 안팎의 비판이 쏟아졌다.
서울 종로구 SGI서울보증보험 사옥. 지난 3월 최종구 전 사장이 수출입은행자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서울보증의 사장자리가 몇 달째 비워져 있다. 일요신문DB.
상법상 기존 대표이사는 후임자가 결정돼야만 법인 등기부에서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서울보증은 후임자를 선임하지 못했기 때문에 등기부상 대표이사로 기존 최종구 전 사장이 계속 등재돼 있었다. 이에 따라 서울보증이 발급하는 각종 보증서가 ‘최종구 사장’ 명의로 발급됐다.
서울보증은 이미 수출입은행장으로 취임한 최 전 사장의 명의로 보증서가 발급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법원에 결정을 의뢰했다. 이에 따라 서울보증은 김상택 전무를 일시 대표이사로 선임한 것이다.
지난해 시행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따라서 서울보증은 사외이사 4명, 비상무이사 1명 등 이사회 멤버로 임추위를 구성할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예금보험공사 추천 인사나 민간위원 등 외부인사를 포함시키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보증보험은 사장 선임을 미루고 있다.
임추위 구성만으로도 후보 공개모집과 검증을 통해 신임 사장을 선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장 선임을 미루는 것은 서울보증 사장 선임이 전통적으로 정부의 입김에 따라 좌우되는 경향이 있었던 만큼 이번에도 그런 의도를 담고 일정을 지연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기 정부 출범이 코앞인데 굳이 지금 시점에 ‘눈치없이’ 새 사장을 선임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서울보증은 예보가 전체 지분의 94%를 보유 중인 사실상 공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인지 1998년 지금의 서울보증이 출범한 뒤 사장 6명 가운데 4명이 금융당국이나 관료 출신이었다.
이와 관련, 서울보증 내부에서는 김옥찬 전 사장이 취임 1년 만에 KB금융지주로 자리를 옮긴 데 이어 후임자인 최종구 사장마저 1년여 만에 물러나면서 서울보증이 ‘관피아(관료 출신 마피아)’들의 재취업 창구로 전락했다는 자조 섞인 비판도 나오고 있다.
금융권에선 서울보증 사장 선임이 금융당국 수장 인선이 끝난 뒤에야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새 정부의 뜻에 맞게 금융당국 고위층의 ‘물갈이’가 이뤄지고 나면 자연스럽게 서울보증으로 내려올 사람이 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서울보증 사장 자리는 선임 때마다 금융당국 출신 인사들이 거론돼온 자리”라면서 “이번에도 새 정부가 들어선 뒤 금융당국 인사가 이뤄진 뒤에야 임추위가 꾸려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고 전했다.
국책은행인 수협은행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해 말 수협중앙회에서 분리된 수협은행은 이원태 전 행장 임기 만료 전부터 은행장추천위원회(행추위)를 열고 차기 행장 선출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올해 2월 22일 차기 은행장 선임 작업에 돌입한 행추위는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두 차례의 행장 후보 공모와 열 번이 넘는 회의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은행장 자리를 놓고 정부(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해양수산부)와 수협은행 지주회사 격인 수협중앙회 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은행장 자리를 놓고 수협은행에 1조 1581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정부와 대주주인 수협중앙회 간 ‘힘겨루기’는 그칠 줄 모른다. 2000년 공적자금 투입 이후 수협은행장은 관료 출신 인사가 주로 맡아 왔다. 이번에도 정부는 수협은행이 중앙회에서 분사한 첫해인 만큼 중량감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앙회 측은 “낙하산 인사는 안된다”며 “내부 출신이 행장이 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행추위가 헛도는 사이 이원태 전 행장의 임기가 끝나 현재 정만화 수협중앙회 상무가 행장 대행을 맡고 있다.
일각에서는 차기정부의 관료 조직 개편으로 수협 행장에 내부 인사가 선임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일례로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조직 개편안을 공개하면서 경제부처 조직개편안의 1안으로 기재부의 분리와 경제부총리 폐지를 내세웠다. 기재부의 비대한 권한을 ‘견제와 균형’을 통해 분산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기획재정부를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하고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 권한도 재정경제부로 흡수하겠다면서 금융위의 감독권한을 금감원으로 넘기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금융위도 해체되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기존 관피아들의 영향력이 급격히 약해지면서 수협은행 내부 인사들이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권 또 다른 관계자는 “중앙정부가 조직개편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상대적으로 한직이라 할 수 있는 수협은행장 자리는 잊힐 가능성도 있다”면서 “혼란스러운 틈(?)을 노리는 야심가들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지 않느냐”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