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감옥 안의 따분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법무부에서 허용한 채널 한 개의 텔레비전 영상을 본다고 했다. 여러 채널을 보지 못해 감질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대통령도 보시는 텔레비전인데 내가 뭘?”하면서 감사하게 시청한다고 했다. 감옥에 있는 대통령의 존재가 역설적으로 많은 위로가 되는 걸 발견했다.
권력의 화신이던 대통령 비서실장과 권력의 총애를 받던 현직 장관의 구속도 강한 상징성을 가진다. 법 위에서 군림하던 사람들이 법치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대통령이 아닌 법이 다스려야 한다. 재판도 이면공작은 물론 판사의 편견이나 독단이 섞여서는 안 된다.
그러면 촘촘해진 법의 그물망은 완전무결한 것일까. 그걸 빠져나가는 법의 미꾸라지가 아직도 존재하는 건 아닐까. 궁지에 몰린 한 큰 건설회사의 사장이 위기에 몰려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었다. 그의 주머니에서는 유서 같은 쪽지가 있었다. 그 쪽지에는 그의 뇌물을 받은 거물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한 서린 그는 죽으면서 그들의 부정부패를 고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법당국은 죽은 사람의 유서보다는 살아있는 권력의 말을 더 믿는 것 같다. 무죄를 선고한 판결들은 정말 한 점의 티도 없는 순수한 결정이었을까. 뇌물죄를 빠져 나가기 위한 거물급의 음모와 조작을 목격한 적이 있다. 시간과 장소를 조작하고 증인을 매수하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는 거물도 봤다. 법원은 그걸 알면서도 적당히 눈감아주고 무죄를 선고한다. 힘센 고기는 법의 그물 구멍을 찢고 도망쳤다.
이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의 재판이 시작될 예정이다. 몇 안 되는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는 뇌물 때문에 감옥으로 간 사람들도 있다. 권력은 뇌물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든 것 같다. 불행한 일이지만 이런 재판을 계기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사법부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본다. 노태우 대통령 뇌물죄 사건 때 국가적인 하나의 기준이 탄생됐다. 대통령은 포괄적으로 막강한 권한을 가졌기 때문에 담당자가 아니더라도 뇌물죄의 주체가 되는 공무원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몸으로 두 번째 판결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개인으로는 불행이지만 이 나라를 깨끗하게 하기 위한 철학이 담긴 공정한 기준이 나와야 할 것 같다. 다음 번 당선되는 대통령도 구속된 전직 대통령을 사면할 것인가에 대해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고민이 많을 것이다. 재판은 보통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올곧은 판결문들이 하나하나 권리장전이 되어야 한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