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내가 간첩이었어요!”
1987년 한 남자가 아내를 죽인다. 이 남자의 이름은 윤태식. 결혼한 지 3개월도 안 된 아내 김옥분을 목 졸라 살해한다.
당시 안전기획부 장세동 부장의 지시로 윤태식은 기자회견을 하게 되는데... “미인계를 이용해 접근한 북한 여간첩에게 속아서 결혼 생활을 하다가 북한으로 납치당하려던 순간 용감하게 탈출했습니다”라며 평소 첩보영화에 미쳐있던 그는 영웅담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상한 냄새를 맡은 안기부는 윤태식을 추궁했는데 “부인은 간첩이 아니고 내가 살해한 뒤 처벌이 두려워 거짓말했다”라고 윤태식은 고백한다.
당시 전두환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최고치에 이르렀고 전두환은 격앙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한 장의 카드를 꺼낸다. 바로 ‘빨갱이’ 카드
“빨갱이로 반감을 조성하자” “‘여자 간첩’은 좋은 소재니 이슈화해야겠어”... 안기부는 윤태식의 거짓말을 그럴듯한 소설로 둔갑시킨다
안기부가 개입한 ‘대국민 사기 쇼’
장세동 부장의 지시로 언론은 놀아난다. ‘여간첩 수지 김’ ‘미인계를 쓴 희대의 여간첩’ ‘아내 간첩…간첩은 우리 주변에’
안기부의 계획대로 ‘빨갱이’로 내몰린 김옥분의 가족들. 누명을 쓴 가족들은 각종 고문과 인권침해를 당했고 여동생들은 이혼을 당하고 자녀들은 자퇴했다. 가족 중 3명은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받다 사망까지...
안기부의 묵인 아래 활개 치고 살아온 살인자 윤태식은 벤처기업의 CEO로 화려하게 등장하며 안기부 청사 내에 사업 시연회까지 연다.
기자들 “뭔가 이상한데…”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언론은 윤태식의 의혹을 연일 보도하고 검찰 수사에 의해 그의 모든 것이 까발려진다
그의 거짓말이 다 들통나고 아내를 죽인 사실까지 세상에 드러났다. 국회의원들과 언론 각계 인사들에게 로비해온 정황이 포착되고 ‘윤태식 게이트’가 또 한 번 대한민국을 뒤집었다.
공소시효를 50일 앞두고 개시된 검찰의 수사. 사건이 일어난 지 14년 만에 그는 ‘살인 혐의’ 유죄를 선고받는다.
살인자 윤태식을 앞세워 한 가족의 삶을 짓밟은 장세동 안기부장은 공소시효가 지나 불기소 종결 처리됐다.
공안정부가 만든 간첩, 공안정부 희대의 사기극, 그 아래에서 온갖 모욕을 받아온 한 가족
안기부와 손잡고 호화로운 생활을 누려온 윤태식은 곧 출소한다. (2017년 5월)
기획·제작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