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맏딸 이방카 트럼프가 지난 4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G20 여성경제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이방카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위상을 뽐냈다. dpa/연합뉴스
현재 ‘백악관의 실세 중에 실세’라고 불리고 있는 이방카는 인수위 시절부터 트럼프 곁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처음에는 공식 직함 없이 아버지 곁에서 일하다가 비난이 쏟아지자 뒤늦게 보좌관이라는 공식 직함을 갖고 일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수석고문을 맡고 있는 남편과 함께 백악관의 핵심 참모로 활동하고 있다. 뒤늦게 공식 직함을 부여받은 데 대해 이방카는 “단, 무보수로 일하겠다. 다른 연방 공무원들처럼 모든 규정을 따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한 백악관 내 웨스트윙 2층에 개인 사무실도 마련했는가 하면, 중요 사안이 있을 때마다 종종 관료들을 물리치고 아버지와 독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 부처 장관들과는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 논의를 하고 있으며, 스티브 므누친 재무장관과는 일주일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회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이방카는 백악관에 개인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개인 비서실장까지 고용했다. 비서실장에는 과거 부시 행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을 지낸 마거릿 스펠링스의 참모였던 줄리 래드퍼드가 낙점됐다.
트럼프의 ‘정리맨’으로 불리고 있는 맏사위인 쿠슈너 역시 백악관 내 영향력이 막대하다. 중동 평화부터 연방정부 개편까지 손을 안 뻗치는 곳이 없다. 최근에는 합동참모본부장과 함께 이라크로 날아가서 한바탕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었다. 이는 통상적으로는 국무장관의 역할이기 때문에 그가 백악관 내에서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잘 드러난 대목이었다. 이밖에도 쿠슈너는 중동, 캐나다, 멕시코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수시로 트럼프에게 조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방카의 활동 반경은 내치를 넘어 외치로까지 확장된 상태다. 지금까지 열린 트럼프의 해외정상회담 자리에는 이방카가 거의 모두 동석했다. 가령 1월 초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접견하는 자리에 트럼프와 나란히 참석했으며, 2월에는 백악관을 방문한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 함께 여성 경제활동촉진 관련 회의에 참석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런가 하면 3월 초에는 백악관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당시 양국의 주요 기업 CEO들이 배석한 직업훈련 회의에 참석했던 이방카가 다른 자리도 아닌 메르켈 바로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자 미 언론들은 “왜 공식 직함도 없는 이방카가 정상회담 자리에 참석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는 명백한 외교적 결례라고 비난했다.
최근 이방카는 국제외교무대에도 공식 데뷔하면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메르켈 총리의 초청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G20 여성경제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이방카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외교장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위상을 뽐냈다.
뿐만 아니다. 이방카는 현재 실질적인 영부인 역할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트럼프의 아내인 멜라니아가 아들의 교육 문제로 뉴욕에 머물고 있는 까닭에 비어있다시피 한 영부인 자리를 이방카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이방카는 지난 3월에는 이스트윙에 위치한 영부인 사무실을 직접 새단장했으며, 현재 영부인 대신 이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단, 멜라니아가 오는 6월 워싱턴으로 이사를 오면 공동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방카 측 관계자는 “아마 그렇게 되면 이곳을 ‘퍼스트 패밀리 오피스’라고 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백악관의 공식 입장은 “계획된 바 없다”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족벌 정치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그저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방카 부부가 너무 백악관 실세처럼 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파이낸셜타임스>는 “유권자들로부터 한 표도 얻지 못한 이방카 부부가 미국을 통치하고 있다”라고 꼬집으면서 “이는 민주주의 사상 유례 없는 행태”라고 비난했다. 또한 <뉴욕타임스> 역시 이방카 부부가 백악관에서 너무 큰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비록 본인은 여성문제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교육, 환경, 이민자, 난민 문제 등 광범위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또 개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방카가 선출직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이 권한을 부여한 적이 없다는 점, 그리고 행정 및 정책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히고 있다. 아무리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졸업한 인재라 해도 관련 경력이 없다면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쿠슈너 역시 마찬가지다. 하버드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뉴욕대학교에서 석박사를 취득했지만 그 역시 정책 경험은 전무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공익과 사익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이방카가 비록 기업 경영에서 손을 뗐다고는 하지만 과연 백악관에서의 영향력이 트럼프 가족의 사업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방카가 인스타그램에 수시로 올리는 백악관 사진들이 미국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백악관 집무실 책상에 버젓이 앉은 이방카와 양 옆에 선 트럼프 대통령과 트뤼도 캐나나 총리.
이와 관련, <AP 통신>은 트럼프 취임 100일에 즈음해서 “가족 동원: 트럼프가 가족, 정부, 사업을 뒤섞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AP는 “존 F.케네디가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장관직에 임명하고, 처남을 평화봉사단 회장으로 고용한 이래 대통령이 가족에게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5세 손녀인 아라벨라까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자리에 참석해 중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등 외교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비공식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차남인 에릭은 부활절 행사 당시 트럼프를 대신해서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에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어느 나라에서든 사람이 죽거나 도시가 파괴되거나 혼란이 발생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재차 말하건대 지독한 독재자를 대할 때는 강력한 근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트럼프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머지않아 공직에 출마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AP는 뉴욕 주지사직에 도전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전 국무차관이자 나토 대사였던 니콜라스 번즈는 <CBS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가족이 백악관에서 이토록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오랫동안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이런 모습은 보통 지도자의 형제나 아들 혹은 친척들이 영향력을 미치는 군주 국가나 독재 국가에서나 보아왔던 모습이다”라고 비난했다.
트럼프의 이런 족벌 정치에 대해 찬반 의견이 양립하는 것도 사실이다. 프린스턴대학의 역사학자인 줄리언 젤라이저는 “가족들은 대통령에게 다른 측근들은 망설일 수도 있는 사안에 대해 강력한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가족이라는 신분에 휘말려서 아버지를 보호하려고 솔직한 조언을 하지 못하거나 문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가족 기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정직하고 애정어린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 H.W 부시 행정부 시절 관료였던 더그 위드는 “모두가 숨기려고 할 때 가족들은 솔직하게 말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시했다. 다시 말해 막가파인 트럼프를 어느 정도 억제하는 역할을 가족들이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이방카가 똑똑하고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다. 와튼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데다, 사업적으로 국제 계약을 체결한 경험이 다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능력이 검증됐다는 것이다. 또한 환경 문제 등 아버지가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가족의 역할에 대해 미국인들의 반응은 ‘부적절하다’는 쪽에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퀴니피액대학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53%의 응답자가 이방카가 백악관에서 중책을 맡은 것이 ‘부적절하다’고 응답했으며, 이는 쿠슈너의 역할에 대한 의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방카가 인스타그램에 수시로 올리는 백악관 사진도 미국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평소 백악관 사진을 자랑스레 올리고 있는 이방카는 지난 2월에는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버젓이 앉아 있는 사진을 올려서 맹비난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이 사진은 양옆에 트럼프 대통령과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가 나란히 서있었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됐었다. 대통령 자리는 전통적으로 오직 한 사람, 대통령에게만 허용된 자리는 점에서 이방카의 이런 행동은 미국인들의 비난을 사기에 충분했었다.
사실 대통령의 딸이 영부인 역할을 대신한 것은 미 역대 정부를 돌아봤을 때 이방카가 처음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영부인이란 ‘대통령의 아내’를 뜻하지만 부득이한 경우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령 초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홀아비였던 까닭에 장녀가 영부인으로 활동했으며, 7대 대통령인 앤드류 잭슨의 경우에는 조카딸과 며느리가 함께 영부인 역할을 맡았었다. 10대인 존 타일러 대통령은 아내가 중풍 환자였던 까닭에 며느리에게 영부인 역할을 맡겼으며, 이밖에 12대 재커리 테일러 대통령과 23대 벤저민 해리스 대통령 역시 딸들이 영부인 역할을 대신했었다. 22대 및 24대 대통령이었던 그로버 클리블랜드는 누이에게 영부인 역할을 맡겼었다.
다만 이방카의 경우 문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엄연히 영부인인 멜라니아가 존재하는 데다, 트럼프 가족의 사익 추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미 언론들은 지적하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이방카 vs 멜라니아 불화설…“누가 진짜 퍼스트 레이디야?” 퍼스트 레이디와 퍼스트 도터의 신경전이 예사롭지 않다. 이방카(왼쪽)와 멜라니아. EPA/연합뉴스 “백악관 내 ‘캣파이트(catfight)’가 시작됐다.” 퍼스트 레이디와 퍼스트 도터의 신경전이 예사롭지 않다고 최근 <버니티페어>가 보도했다. 멜라니아의 사생활을 집중 보도한 기사에서 <버니티페어>는 패션과 미디어 업계에 종사하는 익명의 소식통 두 명을 통해 둘 사이가 서리가 내린 듯 ‘차갑다’고 전했다. 이유인즉슨, 퍼스트 도터인 이방카가 퍼스트 레이디인 멜라니아의 역할을 도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뉴욕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는 멜라니아와 달리 이방카가 워싱턴에서 워낙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까닭에 도대체 누가 퍼스트 레이디인지 헷갈릴 정도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할리우드라이프닷컴> 역시 “힐러리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 이후 백악관 내 최고의 싸움이 시작됐다”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둘의 냉랭한 관계는 ‘질투’와 ‘권력욕’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자초한 것은 사실 멜라니아 본인이었다. <버니티페어>는 멜라니아 측근의 말을 빌려 “멜라니아는 단 한 순간도 영부인이 되길 원한 적도, 또 관심도 없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에도 새롭게 바뀐 현실을 외면하려고 했었다. <US 위클리> 역시 트럼프 가족의 지인을 통해 “영부인이 되는 것은 멜라니아의 꿈이 아니었다. 그건 트럼프의 꿈일 뿐이었다”라고 말했다. 아들의 교육 문제를 핑계 삼아(?) 뉴욕에 남아있는 멜라니아는 현재 역대 영부인들 가운데 가장 조용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공식 행사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고 있는 데다 대부분의 시간을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이에 불필요한 경호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코드네임 ‘뮤즈’로 불리고 있는 영부인인 멜라니아를 경호하기 위해 트럼프 타워가 위치한 뉴욕 시내 한복판은 수시로 교통이 통제되기 일쑤다. 또한 트럼프 타워를 경호하는 데만 3600만 달러(약 408억 원)의 세금이 소요되고 있으며, 이는 한 지붕 아래 살지 않고 있는 대통령 부부 때문에 추가로 드는 비용이다. 하지만 이런 멜라니아의 부재는 이방카에게는 기회가 됐다. 영부인이 공석이다시피 한 자리를 낚아챈 이방카에 대해서 한 측근은 <버니티페어>와의 인터뷰에서 “이방카는 권력욕이 매우 강하다”고 귀띔했다. 실제 트럼프 당선 직후 가진 <ABC>와의 인터뷰에서 이방카는 “제일 먼저 워싱턴으로 이사갈 것이다. 그리고 미국 전역을 돌면서 어떻게 긍정적인 가치관을 세울 수 있을지 듣고, 볼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둘 사이의 반목에 대해 백악관 측은 서둘러 “둘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가까운 사이다”라고 해명을 내놓았다. 이방카 역시 이를 의식한 듯 지난 4월 26일, 46세 생일을 맞은 계모를 향해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를 통해 따뜻한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