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KIA 타이거즈가 가장 먼저 20승 고지를 밟았다. 연합뉴스
리그 판도가 뒤집히는 동시에 프로야구 바깥 세상도 바뀔 예정이다. 대한민국은 오는 9일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권 최대의 이벤트를 앞두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져야할 일이지만 프로야구 팬들에게 대선이 유독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프로야구 팀의 성적도 엇갈려 왔기 때문이다.
팀당 28경기를 치른 4일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팀은 KIA다. 2009년 마지막 우승 이후 7년간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하지 못하고 있었던 KIA의 선전은 ‘반짝 상승’의 수준을 넘어섰다. 이들은 지난 4월 12일 처음으로 선두에 올라서더니 탄탄한 전력을 자랑하며 20여 일이 넘도록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다.
삼성은 창단 이래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4일 현재 28경기에서 5승만을 따내 0.192의 승률로 최하위에 처져있다. 4월 9일부터는 10위로 내려 앉아 KIA의 선두 질주 기간보다도 더 길다.
프로야구가 탄생한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도 이들의 희비는 갈렸다. 매번 교차되는 행보와 더불어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묘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지켜보는 재미를 더했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를 선언한 ‘타이거즈 전설’ 김성한 전 KIA 감독은 찬조 연설에서 “광주에서 야구를 하던 시절 야구장에서 많은 응원을 받았다. 그 응원의 목소리가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였다는 걸 잘 알고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KIA의 전신 해태는 1980년대와 1990년대 프로야구 최강팀이었다. 1983년 첫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1986년부터 이어진 4연패 등 1997년까지 9회 우승을 차지했다. 1980년대 군사정권 항거의 상징적 도시인 광주에게 타이거즈는 자존심이었다.
압도적으로 성적을 내던 해태의 우승행진은 지난 15대 대선 이후 멈췄다. 연고지 광주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을 하자 KIA는 거짓말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물론 당시의 정치 상황이 야구에 직접적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다만 KIA의 쇠락시기와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한 세력이 정권을 잡은 시기가 묘하게 겹쳤을 뿐이다. KIA가 팬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10회 우승인 ‘V10 달성’은 마지막 우승 이후 12년 뒤인 2009년에서야 이뤄졌다.
올 시즌 삼성 라이온즈는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가 프로야구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 동안 대구에 연고를 둔 삼성은 이상하리만치 한국시리즈와 인연이 없었다. 전력이 약한 것도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김시진, 이만수, 장효조 등 투타에서 스타를 배출했지만 한국시리즈 우승만큼은 이루지 못했다.
삼성은 첫 우승부터 2010년대의 전성기까지 TK(대구경북)지역을 지지기반으로 한 2명의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득세와 기간이 묘하게 겹친다. 삼성의 첫 우승이 있었던 2002년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선거에 당선된 해다. 선동열 체제에서의 2연패가 시작된 2005년에는 청계천 복원공사가 완료됐다. 이에 당시 서울시장 이 전 대통령은 행정가이자 정치인으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삼성의 진정한 전성기라 할 수 있는 통합 4연패는 2011년부터 시작됐다. 이 시기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는 등 세력을 넓히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동안 삼성도 4연패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삼성과 두산의 한국시리즈 3차전 시구자로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 시리즈 전적에서 밀리던 삼성은 대통령의 시구 이후 역전 우승을 일궈내기도 했다.
‘삼성 천하’도 5년이 지속되지는 못했다. 지난 2015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지난해에는 9위로 곤두박질쳤다. 같은 시기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리며 헌정 역사상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특정 정권에서 좋은 성적을 냈던 구단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부산을 연고로 하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는 국민의 정부-참여정부 시절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10년의 기간 동안 1999년에만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거뒀을 뿐 나머지 9년간 플레이오프조차 진출하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한 2008년부터 거짓말처럼 5년 연속 ‘가을야구’에 참가했다.
반면 넥센 히어로즈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현대 유니콘스는 롯데가 부진한 10년 사이에만 한국시리즈 4회 우승을 달성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임기 첫해에 첫 우승을 기록한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에 고별경기를 치르고 해체돼 넥센 히어로즈로 팀이 넘어가기도 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