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법조계 내에서는 ‘대선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는 법원의 결정’이라는 분석도 뒤따른다. 그럼에도 법조계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만료 기한인 6개월을 넘기지 않고, 10월 중순 안에는 어떻게든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 3월 31일 오전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나와 서울구치소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지난 2일.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각종 증거와 진술을 담은 기록이 12만 쪽에 달한다며 검토는 물론 아직 복사조차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심리를 위해 공판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지만 변호인단은 기록을 살펴볼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다며 시간 끌기 전략을 선택했다.
박 전 대통령 측 입장에서는 재판을 최대한 늦춰서, 국민적 비난 여론을 최소화 하는 게 재판 전략상 유리하다. 때문에 검찰의 증거와 진술에 대한 증거 채택에 전혀 동의하지 않고, 재판을 더 장기화하는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여러 면을 감안할 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 장기화는 불가피하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다른 국정농단 피의자들 선고 시점도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에 맞춰 늦추기로 한 데다 재판 자체가 법리적으로 다툴 부분이 많은 점도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 한다.
또 혐의가 18개나 되는 박 전 대통령이 줄곧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만큼 증거와 증인들을 모두 법원이 일일이 확인해야만 한다. 여기에 최순실 씨 뇌물 혐의 재판에 170여 명의 증인이 신청된 점을 고려하면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 이어질 증인 선정 과정 또한 변수다.
구속된 지 한 달이 다 돼서야 본격화되는 재판이지만, 법조계에서는 “대선을 앞둔 법원의 노림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고등부장판사는 “조기 대선이 9일 치러지는데 그에 앞서 박 전 대통령을 재판정에 출석시킬 필요가 뭐가 있느냐”며 “법원도 개혁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마당에 법원 입장에서는 대선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사안을 강행할 이유가 없고 그런 점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본격 공판은 대선 이후에 해야만 했다”고 풀이했다.
그럼에도 법조계는 본격적인 재판은 최대한 빠르게 진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는 10월 중순 전에는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10월 중순까지 1심 선고가 나지 않을 경우 박 전 대통령은 석방된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법체계는 피의자들의 인권을 고려, 구속된 피의자의 경우 늦어도 6개월 전에는 1심 선고를 하도록 권고하고 있고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석방하도록 되어 있다. 때문에 재판부가 이를 감안해 1주일에 2~3차례씩 공판을 여는 집중 심리를 선택한 뒤, 10월 15일 전후로 선고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법원 관계자는 “국민적 관심이 많은 재판의 경우, 꼼꼼하고 신중한 판단을 했다고 비춰질 부분은 ‘예외적’으로 진행되지만, 특혜라고 비판을 받을만한 요소들은 ‘예외’를 절대 두지 않는다”며 “박 전 대통령에 풀려난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했다가 받을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은 만큼 무조건 구속 기간 안에 결론을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4월 7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뇌물죄의 공범으로 지목돼 이보다 앞서 구속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은 본격적인 공판 준비에 돌입했다. 현재 이 부회장에 대한 변론을 담당하는 것은 법무법인 태평양. 앞서 이 부회장에 대한 첫 구속영장을 기각시키며 신뢰를 얻은 탓에 재판도 계속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금융전문 변호인 2명도 돕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법인 광장도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으로 참여해 태평양과 함께 변론을 준비 중이다. 법조계에선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신청한 증인만 20여 명에 달하는 만큼 5~6월을 특검과 피고인 측의 증인 신문으로 보낸 후 8월에야 1심 선고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 재판 역시 대선 다음날이 10일부터 시작되는데, 재판부는 이 부회장 등 함께 기소된 삼성 임원 5명에 대해 주3회 공판을 결정했다. 매주 3회씩 변론이 진행되는 것은 공판을 연 다음날도 정신없이 ‘재판 준비’를 해야 하는 만큼 변호인단과 재판부 모두에게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법원의 이 같은 결정은 ‘다투는 모든 사안을 꼼꼼히 다 확인했다’는 명분을 쌓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특검이 이 부회장을 구속 기소했을 때와 1심 선고가 날 8월 즈음에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있을 것”이라며 “일부 혐의의 경우 무죄가 예상되는 만큼 법원도 이를 알고 미리 명분 쌓기를 위한 증거 부족 지적들을 재판에서 일부러 흘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원 관계자 역시 “재판부 역시 기자들이 공판에 다 들어와서 지켜보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언론에 ‘증거 상에 문제가 있다’는 메시지를 ‘표정과 말’을 통해 흘리곤 한다”며 “이 부회장에 대한 재판은 삼성과 기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은 만큼 재판부도 판결문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의 소통을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민준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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