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에서 생산된 관련 문서들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분류해 논란이 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청와대가 만든 자료는 모두 대통령기록물로 분류되는데 이 중 일부는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분류하고 나머지는 일반기록물로 분류한다. 일반기록물은 공개가 원칙이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은 공개될 경우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거나, 정치적 혼란을 불러올 수 있는 경우,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경우 등에 지정된다.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분류되더라도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거나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자료 열람이 가능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 5월 3일 세월호 참사 당일 생산된 문서 등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으나 청와대가 ‘대통령기록물관리법 17조’ 등을 이유로 비공개 통지를 해왔다고 밝혔다. 대통령기록물법 17조에 따르면 “대통령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기록물 보호기간은 30년 범위 이내로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세월호 당일 박 대통령 행적을 사생활로 규정하고, 관련 문서를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한 것이다.
민변 송기호 변호사가 공개한 세월호 관련 정보공개청구 회신 자료. 박 대통령 행적을 사생활로 규정하고 관련 문서를 비공개 통지했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을 당하면서 정치권에서는 대통령기록물 분류와 이관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었다. 황 권한대행이 권한을 가지게 되면 국정농단 사건 증거들을 대거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분류해 사실상 증거인멸을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국가기록원은 기록물 지정권한이 황 권한대행에게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
특히 대통령기록관으로 옮겨지고 있는 기록물 가운데 일부는 목록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 권한대행이 세월호 참사 당일기록뿐만 아니라 사드배치 협상, 한일위안부 협상 등과 관련된 민감한 자료들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분류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기록물이 공개되면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기대됐던 여러 의혹들은 그대로 묻혀버릴 수밖에 없다. 또한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재판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대해 국무총리실 측 관계자는 “대통령기록물 분류과정은 이전 정부의 사례를 참고해 이뤄졌고 이전 정부와 비슷한 수준으로 이뤄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노무현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해하기 힘든 변명”이라고 꼬집었다. 강 의원은 “만약 박 전 대통령이 떳떳하다면 세월호 참사 당일의 동선을 30년 동안 밀봉해놓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분류되는 요건이 생각보다 까다롭다. 이런 것들까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분류한 것은 과도하다”고 꼬집었다.
대통령기록물법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만들어졌다. 노 전 대통령 이전에는 대통령이 재임 중 활동기록을 폐기처분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강 의원은 “노 전 대통령 이전에는 대통령 임기가 끝날 무렵 청와대에 검은 연기가 자욱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정권 말이면 자료들을 태워서 은폐해버렸기 때문”이라며 “대통령기록물법은 대통령의 활동기록을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후대에 전해주려는 노 전 대통령 노력으로 탄생한 법이다.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법을 만든 것은 기록을 보전하기 위함이지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황 권한대행은 이를 악용해 범죄행위를 은폐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황 권한대행은 지난 5월 4일 국무총리 공관에서 출입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갖고 적극 해명에 나섰다. 황 권한대행은 “대통령기록물 분류는 원칙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면서 “대통령기록물은 대통령 임기 만료 전 국가기록보존소에 넘기도록 돼 있다. 국정에 관해 시비가 있는 부분을 국가기록원으로 넘기는 게 은폐를 위한 것이 아니냐고 하는데 만약 그런 문제가 있다면 국회가 3분의 2 이상 의결을 하면 봉인된 기록을 볼 수 있고 그래도 문제가 있다면 소송을 통해 법원에서 인정되는 길도 있다”고 말했다.
황 권한대행은 이어 “왜 제가 증거인멸을 하겠나. 혹시 증거를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 하는 부분까지 다 감안해서 법이 돼 있다. 전에도 그런 문제로 기록들이 공개된 선례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송기호 변호사는 “국민들을 바보로 알고 있는 것”이라며 “국회의원 3분의 2이상이 의결을 하는 것은 탄핵안 가결 수준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00명 가까이 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영장 발부 역시 목록이라도 공개되어야 요청을 할 텐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