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자림복지재단은 170여 명의 지적장애인을 보호했던 보호시설로, 전라북도 최대의 복지법인이다. 피고인 조 씨는 재단산하 특수학교인 자림원의 원장이었고 김 씨 역시 재단 산하시설의 원장을 맡았다. 이들에게는 장애인에 대한 준강간 등의 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감형됐다. 그러나 또다시 항소했지만 3심에서 기각돼 각각 징역 13년, 10년간의 신상공개 고지명령과 위치추적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 재판부는 “이들이 사건 범행에 대해 일관되게 부인하는 등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매우 부족해 보이고, 성에 대한 인식과 태도 등에 비추어보면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피의자들은 “피해자들을 간음한 사실이 전혀 없으며 피해자들이 거짓 진술을 하고 있다”면서 “성범죄를 고발한 일부 교사가 자림원 폐쇄를 목적으로 진술 내용을 교육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공소장에 따르면 조 씨는 지난 1986년부터 1996년 사이에 자림원의 여성 장애인들을 강제추행했다.
재단 내 성폭행 가해자들이 대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자 전라북도는 2015년 재단 대표이사 등 임원 10명에게 해임을 명령했다. 해임 이유 가운데 시설장애인에 대한 성폭행이 발생했지만 성폭력 방지회복 등의 조치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 가장 컸다. 성폭행은 2009년 일어났지만 2012년이 돼서야 재단 교사의 고발로 경찰서와 전주시의 조사가 이뤄졌고 이후 기소됐다. 그러나 전라북도가 2014년에 실시한 특별감사 결과 지난 2011년 재단 대표이사는 성폭행 범죄에 대해 이미 보고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재단 대표이사 김 아무개 씨는 조 씨의 범죄를 확인했으나 이때 사직서를 받은 것 이외에는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 심지어 조 씨에게는 퇴직금이 지급됐고, 김 씨의 경우 2012년 사건의 정황이 밝혀져 구속되기 전까지도 재단 내에서 근무했다. 당시 장애인복지법 제59조에 따르면 장애인복지시설의 운영자와 해당 시설의 종사자는 직무상 장애인 대상 성범죄의 발생사실을 알게 된 때에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시설 운영자는 시설 이용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인권이 침해된 경우에는 즉각적인 회복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결국 전라북도는 대표이사 김 아무개 씨를 포함한 임원들이 이를 간과했다는 이유로 해임명령을 내렸다.
또 감사를 통해 임원 등에 대한 생활지도원 보조금 지급 및 사후 관리 부적정, 기본 재산 처분의 부적절 등 11건의 위법, 부당사항을 발견하기도 했다. 재단은 이전보상금을 받아 원룸을 운영하고 직원 퇴직금을 유용하는 등 법인의 기본 재산을 개인의 돈처럼 사용했으며 전북도와 전주시의 시정 명령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도 드러났다.
이에 재단 측에서는 불복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단은 “전라북도는 인권침해를 이유로 임원해임명령을 내렸는데 임원들이 직접 인권침해 행위를 한 것이 아니며 가해자들의 성폭행을 인지하고 보호조치에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1심에서 재판부는 재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사회복지사업법 22조는 법인 임원의 위법 행위가 있을 경우 1차적으로 법인 스스로 위법 상태를 해소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법인 임원에 대한 해임명령은 신중하게 내려질 필요가 있다”면서 “임원들은 해임된 이후 5년 동안 사회복지법인의 임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건 처분이 전라북도 재량권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전라북도의 임원해임명령을 취소했다. 또 임원들의 직무가 정지돼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재판부 직권으로 효력을 정지하기도 했다.
자림성폭력대책위원회는 자림복지재단 법인설립허가 취소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처분청인 전라북도의 재량권이 지나치다고 판단한 1심 재판부와는 달리 2심 재판부는 장애인들이 성범죄 피해를 입은 이후 법인 이사들이 최소한의 보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에 무게를 뒀다. 재판부는 “법인 이사는 전반적인 업무집행을 감시할 수 있고 업무 집행이 위법하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음에도 임원 또는 감사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방치하는 등 의무를 위반했다”면서 “대표이사 김 씨는 성폭행 사실을 확인하고도 ‘없었던 일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해 성범죄 피해 사실을 은닉하려 했기에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2심부터 전라북도 변호를 맡았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재판 당시 민간장애인단체 중심으로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전라북도에서 장애인단체 입장을 대변해줄 수 있는 변호사를 선임해달라고 해 서울에서 장애인 인권을 변호하고 있던 변호사들이 사건을 수임하게 됐다”며 “1심과 2심의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달라진 게 없다. 2심에서는 성폭력이 지속적, 반복적으로 이뤄진 게 이사전원을 해임해야 할 사안인지에 대한 법리적 검토가 변화했고, 1심에서 인정되지 않았던 성폭행 이외 다른 인권침해나 횡령 등이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염 변호사는 또 “3심에서는 2심 판결에 대한 법리적 검토를 하게 되는데 결과에 대해서는 낙관하고 있다. 법인 운영자체가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도 법인 설립 허가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 지금 자림학교 재학생이 세 명뿐이고 이들은 상반기 중으로 다른 학교로 전학 조치가 될 예정이다. 법인 운영 자체가 안 되고 있어 폐쇄하고 이사를 해임하더라도 전혀 사익을 해할 부분은 없다”며 “수업시간에도 성추행 등의 범죄가 벌어졌기 때문에 이미 재단 내부에서는 오래전부터 성범죄 인지는 하고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재단 내에서 누구나 성폭행 사실을 알고 있을 정도였지만 재단 이사장의 친인척으로 구성돼 있으니 쉽게 고발하지 못했고, 사실상 방치하고 외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재단의 앞날에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장애인 폭행 등 비리가 드러났던 서울의 인강재단 역시 서울시와 재단 간의 시설 폐쇄 처분과 임원 해임 등을 두고 오랜 기간 소송을 진행했다. 서울시는 인강재단의 정상화를 위해 공익이사회를 구성했다. 인강재단의 기존 이사진은 친인척으로 구성됐고, 성범죄는 없었지만 여러 인권침해가 드러나 가해자들은 형사처벌을 받았다. 전라북도에서는 자림복지재단도 인강재단처럼 향후 공익이사회를 선임하는 쪽으로 법인 정상화의 가닥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장애인인권단체 등에서는 법인을 환수조치하고 별도의 지역사회 시설을 운영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라북도는 재단의 임원 해임 명령을 내린 이후 법인허가 취소 처분 조치를 취했고, 재단 측은 또다시 불복하고 소송을 제기해 1심 판결 선고가 오는 23일로 예정돼 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