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놓고 도박을 벌이는 이른바 ‘대선 토토’가 성행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한 불법 도박 사이트가 책정한 후보자별 배당률.
지난 7일 취재를 목적으로 가입한 한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 확인 결과, 5명의 대선 후보에 베팅하는 ‘제 19대 대통령 선거’가 등록돼 있었다. 베팅 마감 시한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9일 오후 8시로 이는 실제 투표 종료 시간이다. 배당률은 언론을 통해 보도된 각종 여론조사 지지율 순위와 거의 일치했다. 선거 당일인 9일 사이트를 다시 확인해본 결과, 오전 7시 기준으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18배,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3.20배,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3.05배,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5.00배,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3.00배로 각각 나타났다.
배당률이 낮은 건 그만큼 베팅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이 사이트에 따르면 문재인 후보를 압도적인 1위로 예상하고 있고, 그 뒤를 이어 홍준표, 안철수, 심상정 후보가 3.00~3.20배 사이의 배당률로 2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유승민 후보는 5배로 당선 확률을 가장 낮게 봤다. 예를 들어 배당률이 가장 낮은 문 후보에게 100만원을 베팅할 경우 문 후보 당선 시 118만원을 받게 되고, 배당률이 가장 높은 유 후보에 100만원을 베팅하게 되면 유 후보 당선 시에 500만원을 받게 된다.
이같이 엄중한 시국을 놓고 도박판이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일부 사설 도박 사이트들은 지난해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하기 전부터 업다운(UP·DOWN) 방식으로 도박을 개설했다. 탄핵 찬성 의원 200명이 넘을 것으로 생각하면 ‘업’에, 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면 ‘다운’에 돈을 거는 방식이다.
또 지난 3월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에도 일부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탄핵 인용’과 ‘탄핵 기각’을 놓고 도박판이 벌어진 사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져 시국을 놓고 도박판을 벌이는 것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기도 했다. 아울러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 이후 최순실·이재용·우병우 구속 여부 등을 놓고도 인터넷 불법 도박이 진행된 것으로 관계 기관은 추정하고 있다.
현재 국내 인터넷 도박 범죄 규모는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지난해 경찰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1~2015년 국내 불법도박 적발건수는 3만 8345건, 검거 인원은 15만 4703명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21건의 도박으로 85명이 검거된 셈이다. 특히 불법도박 시장은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에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 1~9월 발생한 인터넷 도박 범죄는 7092건으로 2015년 같은 기간 2221건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불법 인터넷 도박 규모도 2012년 17조 985억 원에서 지난해 25조 355억 원으로 4년 사이 46% 증가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따르면, 대선과 같은 정치적 현안에 대한 합법적 베팅이 가능한 해외와 달리 국내에선 사회·정치 현안과 관련한 베팅을 금지하고 있다. 또 국내에선 국민체육진흥공단 발행의 ‘베트맨(Betman)’을 제외한 모든 온라인 베팅은 불법이다. 이 때문에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대선 토토’를 하면 국민체육진흥법 제48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불법스포츠도박 혐의로 기소됐다면 판결은 피고인의 사회적 지위·경제적 상황·도박 금액 등의 모든 상황을 고려해 선고되나 통상적으로 도박 액수가 클수록 처벌 수위가 높다.
하지만 불법 도박 사이트는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검거가 쉽지 않고 잡혀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대선 도박 사이트도 광고에 적힌 추천인 코드가 있어야만 가입할 수 있어 수사기관의 추적을 막기 위해 여러 장벽을 설정해 놨다. 서울 일선 경찰서 생활질서계 관계자는 “불법 도박 사이트 적발 사례가 증가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추천인 코드 입력을 통해 가입자를 가려 받는 등 운영수법이 고도화돼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