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증권사는 이번 인적분할을 반기며 재상장된 4개 종목에 대해 매수 의견을 냈다. 한국투자증권은 5월 8일자 ‘산업분석’에서 현대중공업 등 4개 분할 법인의 목표 시가총액을 19조 8000억 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상장 당시 기준 시가총액인 12조 5000억 원보다 7조 3000억 원이나 많은 것이다. 한국투자증권은 기존 현대중공업의 경영 비효율성 해소로 분할된 회사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진투자증권 등 다른 증권사도 분할 이후 각 기업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 이종현 기자.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인적분할은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대주주인 정몽준 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번 인적분할로 기존 현대중공업 외에 현대로보틱스,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 지분을 각각 10.2%씩 취득했다. 정 전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아산사회복지재단, 아산나눔재단도 각각 2.5%, 0.6%의 지분을 취득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백형록) 관계자는 “정몽준 일가가 지주사인 현대로보틱스 지분을 추가 취득해 그룹 지배력을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장남에게) 경영권을 편법 승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 등 계열사 주식을 매각한 자금으로 지주사 지분을 사들이면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가 가능하다.
증권업계도 이번 인적분할로 대주주의 지배력이 강화됐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정 전 의원은 본인 및 재단이 소유한 지분 13.3%와 현대로보틱스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 13.4%를 활용해 현대중공업, 현대일렉트릭, 현대건설기계에 대한 지배력을 26.7%로 높였다.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현대로보틱스는 지주사 요건(자회사 지분 20% 이상 취득)을 갖추기 위해 각 계열사 지분 6.6% 이상 추가 매입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만큼 대주주의 지배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또 지주사 현대로보틱스가 보유한 자사주 13.4%는 의결권이 제한된 까닭에 현대중공업 등 계열사 지분과 맞교환될 가능성이 높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분사 전 지배력(21.3%)보다 강화된 지배구조 확보가 전망된다”며 “지주사 현대로보틱스에 대한 대주주 지분율은 최소 25%에서 최대 30%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순환출자 고리에 묶인 현대미포조선 보유 지분(각 8%)도 2년 내 매각돼 경영권 승계의 ‘화룡점정’을 할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인적분할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의 좋은 예로 볼 수 있다”며 “국회에 지주사 요건 강화, 자사주 의결권 제한 등 일명 ‘경제민주화법’이 계류돼 있는데 법 통과 전에 속도를 내는 인상이 짙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이 지난 7일(일) 사우디 현지에서 바흐리와 스마트십 부문 협력관계 구축을 주 내용으로 하는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날 체결식에는 현대중공업 정기선 전무(그룹선박해양영업본부 부문장)와 바흐리의 알리 알하르비(Ali Alharbi) CEO 등이 참석했다. 사진제공=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은 “이번 인적분할은 대주주의 그룹 지배력 확보와 전혀 관련이 없으며, 대주주 개인의 지분 취득 계획은 회사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고, 정 전 의원이 회사 내 어떤 직함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정 전 의원은 그간 기업 경영과 거리를 두고, 의정 활동 및 스포츠 외교에 전념했다. 그러나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마하고, 이듬해 FIFA윤리위원회로부터 자격정지를 당한 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에선 정 전 의원이 건강 악화로 미국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2016년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정 전 의원은 이번 대선에서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떤 역할도 맡지 않았다. 올해 들어선 FIFA 징계에 불복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다. 현재 정 전 의원은 외부 노출을 자제하며 명예회복을 꾀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선 현대중공업의 경영권 승계와 정 전 의원의 ‘건강’, ‘개인사’를 연결 짓는 주장이 나온다. 돌발 변수가 생기기 전에 미리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내에서 장남 정기선 전무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 전무는 회사의 ‘간판’으로서 5월 7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국영 해운사인 바흐리와 스마트십 사업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현재 정 전무의 지분 보유량은 아버지인 정 전 의원에 비해 미미하지만 이르면 6개월 내에 지주사 지분을 취득할 것으로 점쳐진다. 앞서 밝힌 대로 현대미포조선이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지주사 지분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일부 지분을 사들일 수 있는 것이다. 비용 측면에서 정 전 의원으로부터 지주사 지분을 상속 또는 증여받는 것보다 회사 지분을 매입하는 편이 더 낫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대주주 개인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