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주사 전환을 포기하며 삼성물산에 재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박정훈 기자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면서 컨트롤타워 부재 상태에 놓여 있다. 또 지난 4월 26일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을 포기하면서 삼성전자가 지주회사로서 컨트롤타워 기능을 할 것이라는 관측마저 빗나갔다. 이 때문에 사실상 삼성그룹 내에서 가장 지배력이 높은 삼성물산이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제조 부문과 금융 부문을 아우르며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 있다. 삼성전자 지분 4.25%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삼성생명 지분 19.34%를 갖고 있는 2대주주라는 점이다.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20.76%를 보유한 이건희 회장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2대주주로 7.55%의 지분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삼성카드·삼성화재·삼성증권 등 삼성 금융계열사의 핵심 주주다.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지주회사 개편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17.08% 지분을 보유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을 지배하고, 삼성물산이 삼성 계열사들을 지배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당장 지주회사 자격을 갖지 않아도 실제적 지배력을 가진 것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와 증권가에서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당장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금융계열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금융일류화 추진팀도 해체됐다. 삼성그룹 다른 관계자는 지주회사 전환 문제에 대해 “삼성전자가 지주사 전환을 포기할 때 이미 논의가 끝난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분명 과오가 있지만 미래전략실을 범죄집단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우선은 지배구조 개편 없이 각자 경영 체제로 가보겠다는 경영진의 의지가 보인다”고 삼성 내부 상황을 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부재한 가운데 삼성그룹 계열사별 자율경영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임준선 기자
삼성이 반드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지배구조를 개편할 필요는 없다. 현재의 순환출자 형태를 유지해도 금융 계열사를 소유하는 데 법적 문제가 없고, 지배구조 개편에 따르는 비용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순환출자·지주회사·금산분리 규제 강화를 재벌개혁과 관련한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상 삼성그룹에도 변화가 따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의 완전한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 지주회사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다만,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올라서려면 비금융회사가 금융회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이 통과돼야 한다. 그래야만 삼성물산(비금융회사)이 삼성생명(금융회사)을 지배할 수 있다. 또 금융지주회사법 제6조의3에 따라 금융지주사가 비금융회사 지분을 소유할 수 없기에 금융지주회사 삼성생명은 2년 내에 삼성전자 지분과 호텔신라 지분 등을 매각해야 한다. 이때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와 호텔신라 지분을 넘겨받을 것으로 점쳐진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반 제조기업들은 금융 사업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이미 갖고 있는 금융 계열사라면 어떻게든 지키려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지금 시점에서 삼성물산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든가 지주회사 몫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어디까지나 계열사 자율경영체제로 돌아가고 있으며, 추후 계획에 대해서는 말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