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장미대선이 끝났습니다. 승자는 당선과 함께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몫이었습니다. 그의 승리는 압도적이었습니다. 이전 정부의 실패, 적폐에 대한 개혁의 대중적 열망이 그대로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것이지요.
역사는 승자의 몫이라고 합니다. 반면 영원한 승자도 없는 법입니다. 화려한 승자 뒤에는 패자들의 아픔이 있습니다. 오늘은 남겨진 패자들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홍준표와 자유한국당, 안철수와 국민의당, 유승민과 바른정당, 심상정과 정의당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낙선한 이들도 당선을 위해 뛰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었지요. 사실 여론조사에서 단 한 번도 선두를 놓치지 않았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어느 정도 당선이 예상됐습니다.
역대 급 다자구도로 펼쳐진 이번 선거에서 각 후보와 정당들은 ‘당선’이외에 나름 의미 있는 득표율을 통해 메시지를 던지고자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남겨진 패자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넘겨 짚어봐야 할 이유기도 합니다.
첫 번째로 자유한국당과 홍준표 전 후보입니다. 홍 전 지사는 이번 대선에서 23.3%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당히(?) 2위를 차지했습니다. 한 때 문재인 대통령과 양강구도를 형성하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후보를 제치고 말이죠. 그는 대선 패배 직후 “당을 복원한 데 만족 하겠다”고 자평하기도 했죠.
홍준표 전 후보는 대선 레이스 초반 각종 여론조사에서 5% 남짓한 지지율로 출발했습니다. 게다가 자유한국당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 속에서 분당의 사태를 맞이하는 등 최악의 상황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홍준표 전 후보의 득표율은 ‘당의 재건’에 있어서 최소한의 기반은 마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홍준표 전 후보와 자유한국당이 직면한 당면 과제는 만만찮습니다. 홍 전 후보와 당 지도부 사이에선 바른정당에 합류했던 일부 인사들의 복당 문제와 친박 인사들의 징계 해제 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이미 복당파 의원들은 당원 명부에 올라간 사안이지만, 당 지도부에선 ‘재검토’로 맞서며 ‘내홍’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분당 촉발을 비롯한 내홍의 근간인 ‘친박’과 ‘비박’ 간 당내 진영 싸움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당장 자유한국당은 6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홍준표 전 후보의 출마 여부가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당권의 향방을 두고 진영 싸움이 극에 다다를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자유한국당은 바른정당과의 보수 주도권 싸움과 더불어 바로 이 당내 진영 간 내홍을 알맞게 풀어야 할 숙제를 떠안고 있습니다. ‘당 재건’의 불씨를 가까스로 살려놓은 자유한국당이지만 숙제가 만만찮은 셈이지요.
안철수 전 국민의당 후보의 참패는 충격적이란 반응입니다. 한 때 문재인 대통령과 양강 구도를 형성했던 그이기에 득표율 21.4%와 3위라는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안철수 전 후보는 패배 승복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의 변화와 미래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담담한 소감만 남긴 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대선 재도전 여부, 해외 출국 계획 등 그 어떤 첨언도 없이 말이죠.
안철수 전 후보의 ‘상왕’이라고 까지 지목받던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결국 ‘대선 참패’를 책임지고 ‘지도부 총사퇴’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지도부 구성 117일 만의 쓸쓸한 퇴장입니다. 일단 국민의당은 차기 원내지도부를 구축한 후 비대위 체제를 가동할 것으로 보이지만, 일부 지도부 인사들이 반발하면서 험악한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두 차례의 대선 레이스에서 한 번의 중도포기와 한 번의 참패를 기록한 안철수 전 후보 개인 적으로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영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송영길 의원은 후에 사과를 하긴 했지만, 안철수 전 후보의 정계은퇴를 종용하기까지 했습니다. 굴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단 국민의당은 ‘충격적인 참패’ 속에서 불거지고 있는 당내 동요를 수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떠오릅니다. 특히 문제는 호남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 전 후보는 전북․전남․광주 등 호남지역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완패했습니다. 지난 총선 국민의당은 호남지역에서 민주당을 압도했지만 어렵게 일궈 놓은 텃밭이 흔들거리고 있는 양상입니다.
국민의당의 차기 비대위는 당장 내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앞두고 호남 지역 지지율을 회복하고 당내 동요를 수습해 제3당의 위치와 존재감을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듯 합니다.
유승민 전 후보와 바른정당은 이번 대선 막판 가장 드라마틱한 레이스를 펼친 후보와 정당 아닐까요. 유 전 후보는 대선 레이스 도중 당내에서 끊임없이 ‘단일화’를 요구받았습니다. 그 와중에 소속 의원의 1/3에 달하는 13명이 중도 이탈하는 청천벽력 같은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유승민 전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희망’과 ‘과제’를 동시에 안았습니다. 대선 레이스 내내 제자리걸음 지지율 속에서도, 특히 소속 의원 대거 타당 속에서도 묵묵히 갈 길을 걸었던 유 전 후보와 바른정당은 젊은 층에게 제법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최종 득표율은 6.8%를 얻었지만, 아주 실망하긴 이른 성적표란 평가입니다.
바른정당의 당면 과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당장 추가 이탈자를 막아야 합니다. 현재 바른정당은 20석으로 교섭단체 최소인원을 가까스로 넘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만에 하나 추가 이탈자가 발생하기라도 한다면 원내 입지는 그 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보수 개혁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자유한국당이 이번 대선 유의미한 스코어를 기록한 만큼 일부 원내 인사들의 맘도 동요 할 수도 있는 노릇이겠죠.
한편으론 ‘백의종군’ 의사를 밝힌 유승민 전 후보가 차기 지도부 구성에 전면으로 나설 경우, 당내 비유승민계 및 김무성계 역시 반발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개혁의 순도’를 놓고 여전히 당내 인사들은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유승민 전 후보를 중심으로 독자 개혁을 주장하고 있는 세력이 있는가 하면, 일부는 ‘국민의당’과의 연대, 심지어 합당 가능성 까지 제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심상정 전 후보와 정의당입니다. 두 자리 수 득표율을 목표로 했던 심 전 후보는 6.2%의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진보정당 최대득표라는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입니다.
심상정 전 후보는 대선 직후 당대표로서 직무에 복귀했습니다. 심 전 후보와 정의당은 이번 대선 레이스 도중 당 정체성과 직결된 ‘리스크’를 확인했습니다.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심 전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일부 정책을 문제 삼아 매서운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 사건 직후 일부 정의당 당원들은 심 전 후보를 향해 ‘왜, 같은 진보를 공격하느냐’는 비판을 가하며 집단 탈당을 감행했습니다.
이 사건은 심상정 전 후보와 정의당이 처한 딜레마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정의당은 문재인 시대 어떤 정체성을 갖고 나아가야하는 지를 두고 말입니다. 집권 여당과 적극 협력하는 ‘대중정당’의 길이냐...아니면 ‘이념정당’의 길이냐...
이는 정의당의 시작과 함께 늘 함께했던 고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전 보수 정권과 달리 많은 진보적 이념을 공유하는 민주당 집권의 시기, 오히려 ‘선명성’과 ‘대중성’을 사이에 둔 딜레마의 고민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산(神算)으로 일컬어지는 이창호 9단은 말합니다.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 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 준다...
이번 대선 쓴 맛을 본 낙선자들과 정당들...앞으로가 더 중요하겠죠? 패자의 역습은 이미 시작된 것과 마찬가집니다.
기획_제작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