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마침내 제3기 민주정부의 문이 열렸다. ‘노무현의 운명’ 문재인 대통령은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41.1% 득표율로 대권 고지에 올랐다. 이로써 문재인 정권은 ‘구체제의 막내냐, 신체제의 장자냐’ 갈림길에 섰다. 87년 체제 이후 집권 초 온 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정권은 문민정부와 국민의정부였다. 그 밖의 정권은 인사 난맥상·불통·권력형 비리 등으로 집권 초부터 흔들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과도기 없이 즉시 취임한 문 대통령은 두 갈래에 서 있다. 민주화 산증인 ‘고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길이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길이냐’다. 군사정권 종식을 알렸던 YS는 임기 초반 금융실명제·하나회 척결 등을 단행했다. 국민적 지지도는 하늘을 찔렀다. 이후 YS는 역사바로세우기를 통해 수천억 원대의 불법 비자금을 만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단죄했다. YS의 역사바로세우기가 1995년 지방선거 패배에 따른 국면전환용 카드라는 비판도 있지만, 국정 개혁 드라이브를 확보한 것만은 사실이다. 여당 한 관계자는 “역대 정권 집권 초기만 보면, YS 때가 국민적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YS정부 집권 초반 키워드가 ‘개혁’이라면, DJ정부는 ‘연합정부’다. DJ는 1997년 대선에서 군부정권 2인자였던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와 DJP 연합 전선을 형성했다. 호남과 충청을 묶는 일종의 ‘지역 동맹 연합군’이다. 난관은 있었다. DJ정부는 초반 국무총리로 지명된 JP가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서리로 전락하면서 초반 삐거덕거렸다. JP는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반대로 국회 총리임명동의안 안건 상정 후 167일간 서리로 지냈다. 다만 JP 총리서리 실타래가 풀린 직후 DJ의 철저한 권력분점으로 DJP 연합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극복에 총력전을 전개했다.
민주당 한 의원은 “당시 JP가 DJ에게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경제부처 조각권을 달라고 했다”며 “그래서 나온 것이 이헌재 카드였다”고 말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초대 금융감독위원장과 재정경제부 장관을 두 차례나 지낸 정통 경제 관료다. 그는 JP 추천으로 DJ정부 재정경제부 장관을 맡으면서 3년 동안 기업과 금융권 구조조정에 나섰다. 동교동계 한 관계자는 “이 전 부총리는 구조조정의 신”이라며 “DJ정부 통틀어 가장 잘한 인사”라고 잘라 말했다. DJ정부가 집권 4년 만에 IMF 관리체계를 졸업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임기 초반부터 후폭풍에 휩싸였다. 권위주의 타파를 외친 노무현 전 대통령 파격 행보는 “대통령답지 않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또 대북송금 특검을 비롯해 불법 대선자금 의혹, 나라종금 사건 등은 노무현 정부를 뒤흔들었다. 급기야 민주세력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갈라졌고, 노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첫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의 주인공이 됐다. 국정 지지도는 급속히 떨어졌다.
문 대통령 첫 행보는 ‘대탕평책·소통·협치’였다. 문 대통령은 5월 10일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에 호남 출신 비문(비문재인)계인 이낙연 전남지사를 지명했다.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 후보자는 한때 손학규계로 분류됐다. 정계에는 DJ의 동교동계를 통해 입문했다. 친정체제 구축이 아닌 ‘비영남·비문’ 껴안기를 새 정부 첫 내각 키워드로 내세운 셈이다. 문 대통령은 이 후보자 지명에 대해 “호남 인재 발탁을 통한 균형인사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통해 친문과 동교동계의 호남을 아우르는 정계개편 그림을 구상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 내 주류와 비주류를 넘어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노리는 정계개편 카드라는 얘기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지난해 4·13 총선 때 민주당이 전남에서 완패하지 않았느냐”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자는 민주당 당적을 유지했다. 문 대통령의 호남 복원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장관급)에는 호남 출신 임종석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임명했다.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신인 임 실장은 문재인 캠프의 실질적인 좌장 역할을 했다. 애초 대선 기간 내내 여의도에선 ‘임종석 비서실장설’이 끊이지 않았다. 그만큼 문 대통령 신임이 두터웠다. ‘박원순 맨’으로 불리는 임 실장은 청와대와 당의 소통창구 역할을 할 적임자로 꼽힌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를 젊고 역동적이고 탈권위, 그리고 군림하지 않는 청와대로 변화시킬 생각”이라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장(장관급) 후보자에는 서울 출신의 서훈 전 국정원 3차장, 대통령 경호실장(장관급)에는 충남 출신의 주영훈 전 경호실 안전본부장을 각각 임명했다. 두 인사의 키워드는 ‘전문성’이다. 1980년 국정원에 입사한 서 후보자는 2008년 3월 퇴직할 때까지 약 30년간 정보기관에 몸담은 ‘국정원 맨’으로 불린다. 국정원 개혁을 예고한 대목이다. 주 실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 경호실 안전본부장을 지낸 인사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는 문재인 선대위의 ‘광화문대통령공약기획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파격 인사도 있다. ‘조국 카드’다. 문 대통령은 초대 민정수석에 개혁 소장파 법학자인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임명했다. 대통령 친인척 관리와 공직기강, 인사 검증 작업 등에 총대를 메는 민정수석에 비검사 출신 인사를 기용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보수정권 9년 2개월간 비검사 출신 민정수석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국정농단 게이트의 원인으로 지목된 우병우 전 민정수석도 검찰 출신이다. 문 대통령의 검찰 개혁 의지가 드러났다는 평가다. 조국 신임 민정수석은 5월 11일 “민정수석은 검찰 수사를 지휘하면 안 된다”라며 “(2018년) 지방선거 전 검찰 개혁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인사수석에는 여성인 조현옥 이화여대 초빙교수를 내정했다. 윤영찬 전 네이버 부사장은 홍보수석, 국무조정실장은 홍남기 미래 창조과학부 1차관,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이정도 기획재정부 행정안전예산심의관, 춘추관장은 권혁기 전 국회 부대변인이 각각 맡는다.
문 대통령이 취임 초반 통합 행보에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정치적 변곡점마다 난제가 산적하다.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협치의 첫 번째 고비다. 여소야대 정국 때문이다. 민주당 의석수는 120석이다. 야당 도움 없이는 인사청문회 통과나 법안 추진이 어렵다.
자유한국당은 임 실장 임명에 대해 “권력의 핵심 중 핵심인 청와대 비서실장을 주사파 출신에게 맡기는 데 대한 국민적 우려가 깊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바른정당은 “국민 통합을 이루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면서도 철저한 검증을 예고했다. 민주당 의석만으로는 국회 선진화법상 법안의 본회의 상정·처리 조건인 재적 의원 5분의 3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박근혜 정권과의 ‘불편한 동거’의 막이 올랐다. 인수위 없는 특수 상황 탓에 기약 없는 신·구 체제 동거가 현실화된 셈이다. 이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벽을 넘지 못한다면, 전 정권의 권한대행 제청으로 인사를 단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의도 정국에 정계개편이 덮칠 경우 문재인 정권은 공회전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대표가 공석이다. 내부 권력구도가 당권 경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집권여당은 원내대표 경선을 코앞에 두고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당장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의 국회 비준 동의, 북핵 문제는 물론, 한미 방위비 분담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추경), 재벌 개혁 등 첩첩산중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역대 정권을 보면 대통령 운신의 폭은 통합 행보와 비례한다”며 “협치의 직접 대상자인 야당과의 관계가 키포인트”라고 전했다.
윤지상 언론인
집권 1년차 징크스 깰까? 역대 정권 무리수로 ‘휘청’ 역대 정권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집권 1년차 징크스’다. 진보정권도 보수정권도 이 부메랑은 피하지 못했다. 취임 직후 형성된 탄탄한 국민적 지지도의 수성은커녕 인사 난맥상과 불통, 무모한 정치적 승부수로 사실상의 국정공백 사태를 맞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1년차 때 인사 파동으로 휘청거렸다. 당선인 시절 김용준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를 시작으로, 5명의 장·차관급 후보자가 줄줄이 낙마했다. 김종훈(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황철주(중소기업청장 내정자), 김학의(법무부 차관 내정자), 김병관(국방부 장관 후보자), 한만수(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이 대표적이다. 청와대 대변인으로 낙점된 보수논객 윤창중 씨 스캔들과 잇따른 말실수 논란을 일으킨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 기초연금 등 복지 공약을 놓고 대통령과 각을 세웠던 진영(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항명 파동도 박근혜 정부가 휘청거리는 데 한몫했다. 야당은 국정원(국가정보원) 댓글 의혹을 고리로 총공세를 폈다. 박 전 대통령이 악수 끝에 내놓은 카드는 친박(친박근혜) 체제의 공고화였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8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이정현 홍보수석 등을 호위무사로 뒀다. ‘김기춘-김장수-이정현’으로 이어지는 친박 트로이카 카드를 꺼낸 것이다. 집권여당은 당시 원내대표였던 최경환 의원을 중심으로 당권 장악 시도에 나섰다. 국정 지지도는 이내 하락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의 2013년 1분기인 1월 3주차(1월 14~18까지 조사·22일 공표)와 3월 4주차(3월25∼28일까지 조사·익일 공표)를 비교한 결과, 박 전 대통령의 지지도는 55%에서 41%로 14%포인트나 빠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각각 ±2.5%포인트와 ±2.8%포인트다.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명박(MB) 정부와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직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강행, 100일간 촛불 시위의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시민단체 등은 ‘MB 아웃’ 구호를 들고 사실상 정권퇴진 운동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세 번이나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1년차 때부터 대북송금 특검을 비롯해 열린우리당 창당 추진 등을 놓고 호남과 친노(친노무현)계의 치킨게임으로 국정동력을 소모했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라는 발언으로 국민에게 뭇매를 맞았다. 열린우리당 총선 지지 발언은 2004년 17대 총선 직전 탄핵 소추안 가결로 이어졌다. 총체적 난국에 빠진 셈이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이와 관련해 “여소야대 상황에서 새 정부가 들어선 만큼, 문재인 정권은 협치 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며 “그 시작은 권력 내려놓기”라고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