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푸른저축은행 신사본점. 고성준 기자
2003년 LG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금융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보험계열사들은 방계그룹인 LIG그룹을 형성해 일찌감치 떨어져 나갔고, LG카드와 LG증권은 매각을 통해 주인이 바뀌며 그룹의 품을 떠났다. 이후 LG그룹은 금융업에 진출하지 않았고, 구본무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 역시 금융사를 소유하지 않았다.
하지만 LG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딸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LG그룹 창업주 중 한 사람인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막내딸 구혜원 회장이 대표적인 사례로, 그는 푸른저축은행 회장을 맡아 회사를 이끌고 있다.
푸른저축은행은 저축은행업계 유일한 코스닥 상장사로, 당초 주진규 푸른그룹 전 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었으나 1999년 불의의 사고로 별세한 뒤 부인인 구혜원 회장이 경영하고 있다. 구 회장은 맏아들 주신홍 푸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와 함께 그룹을 이끌고 있는데, 최근 수년간 배당을 통해 100억 원에 가까운 현금을 챙기고 있다.
푸른저축은행이 본격적인 배당에 나선 것은 2015년부터다. 이 시기는 공교롭게도 주신홍 대표가 푸른저축은행에 입사한 때다. 푸른저축은행은 주신홍 대표 입사 전인 2013년까지만 해도 100억 원이 넘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주 대표가 입사한 2014년 4월을 기점으로 지표가 개선되기 시작하더니 두 달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며 실적을 공개했다. 이후 순이익 규모는 분기마다 급증, 2015년 6월에는 전년(4억 원) 대비 60배가량 늘어난 253억 원을 기록했다.
푸른저축은행의 실적 급증 원동력은 포트폴리오 변화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우선 한동안은 가계 대출을 줄이고 기업 대출에 집중하면서 수익성을 높였다. 2015년 3월 가계자금대출은 225억 원으로 주신홍 대표가 입사하기 바로 전인 2014년 3월 473억 원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
지난해부터는 반대로 가계대출을 늘려 이익을 키웠다. 푸른저축은행은 기업대출이 전체의 90% 이상 차지하지만 지난해에는 가계대출이 489억 원으로 전년(260억 원)보다 88% 증가했다. 전체 대출금에서 가계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3.19%에서 6.07%로 2배가량 뛰었다. 이를 통해 푸른저축은행은 지난해 260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전년(192억 원)보다 35.4% 증가한 수치다.
호실적은 배당으로 이어졌다. 푸른저축은행은 2015년 10월 2014회계연도(2014년 7월~2015년 6월) 결산배당으로 총 36억 원 규모의 현금을 주주들에게 나눠줬다.
6개월 만인 지난해 4월 또 다시 결산 배당금을 지급했다. 푸른저축은행은 2월 이사회를 통해 보통주 1주당 200원, 총 24억 원의 현금 배당 실시를 의결했고 4월에 배당금을 지급했다. 결산배당이 6개월 만에 이뤄진 것은 이례적이다. 2015년 저축은행 회계연도 결산일이 변경(6월 말→12월 말)되면서 2015 회계 기간은 2015년 7월부터 12월까지로 6개월 단축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푸른저축은행 주주들은 2015년 10월 2014 회계연도 결산배당에 이어 2016년 4월 2015 회계연도 결산배당을 받았다.
가장 큰 수혜자는 최대주주인 주신홍 대표와 구혜원 회장 등 오너 일가다. 푸른저축은행은 3년간(2014~16 회계연도)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에 총 96억 원을 배당했다. 이는 3년 총 배당금(121억 원)의 79.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지난해에는 1주당 500원씩 총 61억 원을 배당했다. 전년에는 회계연도 변경으로 두 차례(2015년 6월, 12월 결산)에 걸쳐 총 60억 원 배당이 이뤄졌다.
지난해에만 최대주주인 주신홍 대표가 12억 9625만 원, 구혜원 회장은 11억 750만 원, 주은진 씨는 2억4338억 원, 구 회장의 딸 주은혜 씨는 2억 4108억 원을 배당받았다.
푸른저축은행은 최대주주인 주신홍 대표와(17.19%)와 7명의 특수관계인이 총 63.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특수관계인에는 구혜원 회장(14.69%), 주 씨의 두 여동생인 주은진 (3.23%)·은혜 씨(3.2%) 등 가족이 포함돼 있다. 푸른F&D(14.71%), 부국사료(9.6%), 푸른문화재단(0.4%), 송명구(0.35%) 씨 등도 특수관계인에 속해 있다.
금융권은 푸른저축은행의 이 같은 행보가 경영권 승계 작업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최근 주진홍 대표로 경영권 승계 작업이 발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 대표는 주진규 회장이 별세한 후 1년 만인 2000년 푸른저축은행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주 대표는 금융계열사를, 여동생들은 계열사인 축산업체 푸른F&D로 승계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주 대표는 2011년 이트레이드증권(현 이베스트투자증권)에 입사해 투자전략 담당 애널리스트를 거쳐 채권운용팀 매니저로 일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은 뒤 푸른저축은행으로 옮겨왔다. 주 대표는 2014년 푸른저축은행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은 뒤, 개인자금을 투자해 푸른파트너스자산운용을 설립하고 대표이사를 맡았다.
금융권의 관심사는 주 대표와 구 회장이 배당 수익 등을 밑천으로 삼아 금융업 확장에 나설지 여부에 모아진다. LG카드, LG증권과 LIG손해보험 매각 이후 맥이 끊겨가던 LG가(家)의 금융사업이 부활에 성공할지 눈길이 쏠린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