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문재인 후보가 스텔라 데이지호 실종선원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지난 3월 26일 철광석 26만 톤을 싣고 브라질에서 출발해 중국으로 향하던 스텔라데이지호가 출항 5일 만인 31일 오후 11시 25분(한국시간)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 해역에서 ‘물이 샌다’는 메시지를 끝으로 소식이 끊겼다. 사고가 없었다면 이달 6일 중국 칭다오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필리핀 선원 2명은 구사일생으로 구조됐지만 선장을 비롯한 한국인 선원 8명과 필리핀 선원 14명 등 22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사고가 일어난 지 40여 일이 지났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아직 선원들이 어딘가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스텔라데이지호에는 비상 탈출용 구명정 2척과 구명벌 4척 등 총 6척의 비상탈출 수단이 탑재돼 있는데 그 중 아직 발견되지 않은 단 한 척의 구명벌에 가족들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 한 실종자 가족은 “구명벌 안에는 낚시도구 같은 생존 도구와 2~3일치의 식량이 구비돼 있다. (실종된 선원들이) 일반인이 아니라 훈련받은 선원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구명벌에 타고 있다면 생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사고 41일째인 지난 10일 현장 수색이 종료됐다. 지난 11일 실종자 가족 측과 해양수산부 측에 따르면,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사인 폴라리스쉬핑이 투입했던 예인선이 수색임무를 종료하고 10일 새벽 사고 해역을 떠났다. 실종 초기에는 각국 군함과 군용기가 투입됐으나 4월 중순께 모두 철수하고 이후에는 폴라리스쉬핑이 동원한 선박들만 남았다가 이마저도 철수한 것이다. 앞서 외교부는 지난 9일 실종자 가족 대표 허경주 씨에게 “우루과이 해상구조본부(UMRCC)가 수색자원의 한계 등을 고려해 통상선박 위주 수색체제로 전환한다고 알려왔다”고 전했다.
앞으로 현장 수색은 중단되지만 침몰 추정 해역을 통과하는 한국 관련 선박이 우루과이 해상구조본부(UMRCC)의 지시에 따라 바다 위에 떠 있는 물체가 없는지 살펴본다는 게 외교부 측의 설명이다. 한국 정부가 우루과이 해상구조본부에 통과 선박 목록을 알려주면 해상구조본부가 어떤 지점을 살펴보며 지나가라고 해당 선박에 지시하는 방식이다.
가족들은 이에 강력히 반발, 문재인 정부 출범 첫 날인 지난 10일 대통령 측에 스텔라데이지호 수색 촉구를 위한 서한을 전달했다. 이날 가족들은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9일 선사의 요청만으로 가족과 아무 협의 없이 외교부가 일방적으로 수색 종료를 통보했고, 10일 새벽 4시를 기해 투입됐던 모든 수색 선박을 철수키로 했다”며 “외교부는 무책임한 수색 종료 선언을 철회하고 수색을 지속할 수 있도록 시급히 조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족들이 이처럼 대통령에 직접 서한까지 보내며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정부와 선사를 향한 실종자 가족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 허예원 씨는 “정부는 실종자를 찾으려는 노력이나 의지가 전혀 없다. 선사는 처음부터 영업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사고를 은폐하려는 모습만 보였다”며 “애초에 정부를 너무 믿은 게 잘못”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선사 측은 배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스텔라데이지호로부터 받고 12시간이 지나서야 국민안전처에 늑장 보고했다. 또 신고가 접수된 이후에도 정부는 2시간 만에 외교부를 컨트롤타워로 비상대책반을 구성했으나 이후 8시간 동안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보고할 문서를 만들고 보도자료를 배포하느라 골든타임을 허비했다고 가족 측은 주장했다.
정부의 미흡한 대응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수색 초기인 지난달 9일 미군 초계기(항공 수색 정찰기)가 ‘구명벌’로 보이는 특이물체를 발견했다고 알려왔다. 가족들은 이를 위해 수차례 외교부에게 사진 확인을 요청했지만 ‘받기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허 씨는 “외교부가 노력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든다. 오히려 확인시켜줘서 아니라고 반박하면 되지 않나”라고 했다. 가족들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 백악관과 국방부에 직접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스텔라데이지호 사고와 관련해 정부의 무능함이 세월호 참사 때와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일주일 가까이 천막 농성 중인 실종자 가족들을 매일같이 찾아 이야길 나누고 있다. 박 의원은 “세월호 참사 이후 발간한 매뉴얼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며 “외교부, 해수부 및 해양경비안전서는 활용 가능한 수색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하고 협조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서로 떠넘기며 사건을 무마하기에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현재 실종자 가족들은 선사 측이 제공한 상황실을 나와 지난 4일부터 선사가 위치한 서울 남대문 인근 인도에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다.
현재 실종자 가족들은 선사 측이 제공한 상황실을 나와 지난 4일부터 선사가 위치한 서울 남대문 인근 인도에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다. 이런 가운데 선사 측은 지난 3일 가족들에게 보상금 협의 절차 개시를 통지했다. 이날 선사 측은 가족들에게 상황실 폐지와 지원 중단 등을 알리는 내용증명 문서를 보냈다. 이와 함께 서류에는 “가족 보상 전반에 관한 협의를 시작하려 한다. 보상을 원하는 가족들과는 원만히 보상할 예정이고, 원하지 않으면 법적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는 통지도 포함돼 있다.
실종자 가족 대표 허경주 씨는 “선사가 수색할 때는 제대로 된 매뉴얼도 없다보니 정부에 신고조차 안하고 구멍 투성이었는데 가족들을 어떻게 핍박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매뉴얼이 완벽하더라”고 말했다.
허 씨는 또 청와대에 전달한 서한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과의 소통창구가 돼 온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 측으로부터 11일 ‘청와대로 스텔라데이지호 관련 보고서가 올라갔다’, ‘공약사항처럼 최대한 빨리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이번 사고를 해결할 수 있도록 청와대 내에서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새 정부가 우리를 어떻게 도와주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일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그동안은 여기 농성장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
세월호·스텔라데이지호 가족들, 광장에서 아픔 함께 나눠 스텔라데이지호 선원 가족들이 지난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4·16연대와 4·16가족협의회 관계자 주최로 열린 ‘세월호참사 관련 19대 대통령 선거후보자 공약 점검 및 정책질의서 결과발표’ 기자회견에서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가 3년 만에 뭍으로 올라오던 지난 3월 31일, 남대서양에선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했다.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골든타임을 놓쳤고, 관계 부처는 책임을 회피했다. 이번 사고가 ‘세월호 판박이’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 사회의 중대 해양 사고로 꼽히는 세월호 참사와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을 겪은 가족들이 서로의 아픔을 공유했다. 대선을 한 주 앞둔 지난 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4·16연대 주최로 열린 ‘세월호참사 관련 19대 대통령 선거후보자 공약 점검 및 정책질의서 결과발표’ 기자회견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이 함께한 것이다. 그간 대선 정국, 세월호 인양 등 현안에 밀려 세간의 관심 밖에 있던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에 여론의 관심이 본격적으로 쏠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실종자 가족 허예원 씨는 “그날(2일)도 우리는 피켓 들고 광장의 시민들에게 스텔라데이지호 사고를 알리기 위해 나갔다”며 “그런데 세월호 관계자분들이 먼저 찾아와 오히려 ‘우리가 그동안 관심 못 가져줘서 미안하다’면서 우리를 기자회견에 초청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그분들의 도움으로 5분씩 발언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시민들에게 호소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에게 이날 기자회견은 지난 3월 31일 침몰 이후 첫 기자회견이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참담한 마음을 밝히며 정부 측에 실종자 구조를 위해 역량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허 씨는 “세월호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있는 사안이다 보니 기자들도 많이 왔다. 그날 우리도 거기서 발언문도 낭독하고 기자들과 인터뷰도 많이 했다”며 “그전에는 개인적으로 아는 기자 몇 명이 겨우겨우 연락해 우리의 상황 전달했는데 도움 주신 세월호 관계자분들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