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선서를 마친 뒤 취임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이번 선거 관련 고소·고발 사건의 대부분은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검사 이성규)가 담당하고 있다. 공안2부는 선거법과 관련한 사건을 전담하는 부서다. 공직선거법 상 공소시효는 6개월에 불과하기 때문에 늦어도 오는 11월 9일 이전에는 수사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일반적으로 선거 직전까지 난무하던 정치권 고소·고발 사건은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취하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 대선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심각한 ‘마타도어(흑색선전)’가 선거 때마다 벌어지곤 했지만 SNS를 통해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이번 대선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강력한 법적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특히 선거캠프 관계자나 후보가 직접 언급하는 허위사실이 SNS 이용자들에게 강한 영향을 끼치고 또 신속하게 퍼지는 점을 감안한다면 피해 정당으로서도 더 이상 ‘대통합과 화해’를 강조할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거리로 불거졌던 것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69)의 회고록 파문이다. 지난 4월 24일 송 전 장관이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를 통해 밝힌 내용은 “노무현 정부가 2007년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기권에 앞서 북한의 의견을 물었고,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이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 측의 당시 더불어민주당 선거캠프는 송 전 장관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공직선거법 위반과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이와 관련해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문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열린 대선후보 TV 토론회에서 송 전 장관의 회고록과 관련해 거짓말을 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이미 지난달 27일 하 의원은 고발인으로서 1차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의 아들 준용 씨(35)의 특혜 채용 논란에 대해서도 고소·고발이 이어졌다. 민주당 선거캠프는 지난 6일 준용 씨의 한국고용정보원 특혜 채용 의혹을 제기했던 김인원 국민의당 공정선거추진단 부단장과 익명의 제보자 등 3명을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했다. 국민의당 측 역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특보단장인 김태년 의원을 무고죄로 고소하면서 맞불을 놨다. 이 사건은 서울남부지검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준용 씨 관련 사건에는 자유한국당도 동참했다. 한국당은 지난 7일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준용 씨 의혹과 관련한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조작하고, 관련 기사 노출도 임의로 축소했다”라며 한성숙 네이버 대표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것.
또 SBS가 지난 2일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을 고의로 지연시키면서 문재인 후보 측과 거래를 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보도한 건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민주당은 이 의혹을 논평한 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을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했으며, 한국당은 “해수부가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어겼고, 문 후보가 SBS에 압력을 가해 사과방송을 강요하고 기사를 삭제하도록 했다”며 문 대통령과 당시 민주당 선대위원장을 강요 혐의, 김영석 해수부 장관을 국가공무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각각 검찰에 고발했다. 이 사건 역시 서울남부지검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서울을 포함한 전국 지방검찰청에 이번 19대 대선과 관련해 접수된 고소·고발 사건은 약 350~400건으로 파악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2007년 17대 대선(456건)보다는 적었지만, 2012년 18대 대선(368건)에 비해 8%가량 증가한 것이다. 60일로 이례적으로 짧았던 대선 유세 시간과 비교해 보면 이번 대선에서 후보와 캠프는 물론이고 그 지지자들까지 서로를 물어뜯는 양상이 더욱 심화됐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선 후보와 그 캠프들 간 고소·고발전은 투표를 앞두고 경쟁 후보 측과 지지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전략적인 수단이면서, 반대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섣불리 허위 사실을 유포시키지 않도록 하는 제동장치로써의 역할을 해 왔다. 애초에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상대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고소·고발이다 보니 선거가 끝나고 나면 유야무야 종결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BBK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던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당선 후 이 같은 의혹을 제기했던 당시 정동영 후보의 대통합민주신당 측에 대한 고소·고발 20여 건을 모두 취하했다. “국민과 정치권 화합을 위해 결심한 한나라당의 정신을 이해하고 이제는 국민을 위한 정치로 돌아오자”는 것이 한나라당 측의 소 취하 이유였다. 이에 대통합민주신당 역시 이 전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했던 소 9건을 모두 취하했다.
그러나 바로 직전 대선인 제18대 대선에서는 정치권이 그토록 주장하던 ‘통합과 화해’는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의 새누리당 대선캠프는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비공개 대화록을 공개하면서 문재인 전 민주당 대선후보의 ‘NLL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바 있다.
이에 민주당 측이 새누리당 정문헌·이철우 의원과 박선규 선대위 대변인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자, 새누리당 측은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를 무고 혐의로 맞고소했다. 이 고소·고발 난타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승리 이후에도 취하되지 않고 그대로 수사가 진행됐다. 그렇지만 관련 의원들은 검찰 수사에서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19대 대선 이후 검찰의 수사와 관련, 문 대통령 측에서 제기한 소 가운데 굵직한 사건들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설사 취하해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더라도 야당 측이 이를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야당 측에서 대선 전까지 거론됐던 의혹이 아직 충분히 해명되지 않았다며 연일 언론 창구를 통해 강경한 발언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앞장서서 문 대통령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 왔던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의 경우, 당선 이후의 수사 진행을 고려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가칭 ‘고소왕 대통령 방지법’을 정식 발의하기까지 한 상황이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대선이나 총선에서 ‘아니면 말고’ 식의 흑색선전이 크게 불거졌다가 선거가 끝나고 나면 정당끼리 서로 겸연쩍게 소를 취하하는 일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새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여전히 의혹 제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진실 해명을 위해서라도 이번 대선에서의 고소·고발 사건들, 특히 가장 크게 불거졌던 논란들은 소 제기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