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이전 경색됐던 보수정권 시절과 달리 변화가 예상된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북한의 인식
북한이 우리 대선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은 당연하다. 북한 내부에서도 조기 대선 가능성이 제기됐던 지난해 말부터 잠룡들에 대한 갖가지 내부 보고가 이뤄졌다. 당시 북한 내부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이 애초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은 따로 있었다고 한다. 그 주인공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었다.
올해 1월 초까지만 해도 북한 내부에서는 반기문 전 총장에 대한 당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런 저런 내부 보고가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야 하는 북한 입장에서 국제사회의 든든한 커넥션이 존재하는 반 전 총장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심지어 북한 내부보고 중 일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 반 전 총장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 예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2월 1일 반 전 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자 우리 대선 주자들에 대한 북한의 내부보고 동향도 급선회했다. 일단 북한 내부에서도 문재인 정권에 대한 ‘기대감’은 큰 것으로 보인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북한 내부에서도 이를 의식한 변화가 목격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민주정권 당시 밀월관계를 당연히 인식하고 있다. 더군다나 과거에 비해 더더욱 국제적 고립이 심해진 현 상황을 감안하면 문재인 정부 출범은 ‘마지막 구원투수’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북한 조직변화 예고...통전부와 김완수 주목
2015년 5월 6·15공동선언 실천 북측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남측 대표단과 마주한 김완수 통전부 부부장(원안). 연합뉴스
애초 북한의 대남 분야를 주도했던 조직은 통일전선부(통전부)였다. 특히 통전부 대남담당 부서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지난 9년간 보수정권이 집권한 기간 동안 대남 분야를 주도했던 통전부의 위상은 격하됐다. 그 안의 대남담당 부서는 거의 유명무실화됐다.
그 자리를 대남 도발을 주도했던 군 정찰총국이 대신했다. 민주정권 당시 남북관계의 초점은 ‘교류’에 맞춰졌던 반면 보수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그 초점은 ‘군사적 대립’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그런 북한에서 최근 조직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우리 대선을 한 달 앞둔 지난 4월 11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외교위원회’를 부활시켰다. 외교위원회는 1992년 북한 헌법에 포함된 조직이었지만 1998년 폐지됐다. 무려 19년 만의 부활인 셈이다.
김정은이 ‘외교위원회’를 다시금 조직한 것은 결국 심각한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화적 방책으로 풀이된다. 이를 통해 대미관계는 물론 우리 새 정부와의 관계 개선도 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수순을 고려할 때 북한은 그동안 소외됐던 통전부를 정상화하고 대남 채널을 다시금 구축하고자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 내부에서 주목하고 있는 인물은 김완수 통전부 부부장(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서기국장)이다. 김완수 부부장은 지난 2015년 12월 교통사고로 급사한 김양건 전 통전부장의 후계자로 언급됐던 인물이다.
현재 공식적으로 통전부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김영철 통전부 부장 겸 당중앙위원회 대남담당 부위원장이다. 김영철 부장은 외교통이 아닌 군 출신이다. 직전까지 정찰총국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북한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앞서의 이유로 실제 통전부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김완수 부부장이라고 한다. 김 부부장은 1980년대 초부터 대남 분야를 담당했던 대남 전문가로 남한에서 들어오는 자금과 물자, 인사를 관리했던 핵심인사다. 김 부부장은 지난 4월 당직 인사에서 다소 주춤했지만 통전부에서의 위치는 여전히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북한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남북 채널이 다시 구축될 때 김 부부장이 경협 및 협력 작업을 주도하고, 때에 따라서는 밀사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북한 당국은 오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적기로 삼아 남북관계 재구축을 위한 적극적인 평화 공세에 나선다는 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한다.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여부
남북관계 변화 가능성과 관련해 가장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분야는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재개 여부다. 북한 입장에서도 우리와의 채널을 구축한다면 이 부분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 입장에서 이 두 가지 경협 사업을 재개하는 것은 단순한 수익 확보 그 이상의 의미라고 한다. 이유인 즉, 현재 북한은 국제적 대북제재 속에서 사실상 정상적인 외화거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두 가지 경협 사업이 재개된다는 것은 결국 합법적으로 외화거래가 가능한 통로가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북한의 바람대로 문재인 정부가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재개 등 남북 경협 정상화를 곧바로 추진하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북제재는 미국과 UN이 전 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국제적 약속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 구성원이자 이해 당사자인 한국정부 입장에서 정권이 바뀌었다고 현재의 국제적 대북제재를 어기면서까지 사업을 재개한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이러한 국제사회 분위기를 의식한 듯, “평양으로 가겠다”는 말 앞에 ‘여건이 조성된다면’이란 명확한 전제를 달았다.
최근 미국 관계자와 만나기 위해 노르웨이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진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 연합뉴스
변화가 예상되는 남북관계의 또 다른 변수는 북-미 간 독자적인 협상 여부다. 필자는 지난주 연재를 통해 북한 내부에서 미국과의 독자적인 라인을 구축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지난 연재 직후 실제 북한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장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지난 7일 <아사히신문>은 최선희 국장이 노르웨이로 출국해 8일과 9일 현지에서 미 관료 출신 민간 전문가와 접촉한다고 전했다. 당연히 이 자리의 주요 의제는 북-미 간 핵미사일 문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의 의견교환이겠지만, 트럼프 정부의 대응 방식에 따라 의외로 문제가 잘 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곧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 변화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