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삼성전자를 이끄는 사람은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권 부회장, CE(소비자가전)부문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 IM(IT모바일)부문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 3명의 대표이사다. 이들은 각 부문 인사팀, 경영지원팀을 따로 두는 등 사실상 독자적으로 경영하고 있다. 실제 지난 11일과 12일 있었던 삼성전자 임원인사도 각 부문 개별적으로 단행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으로 오너 부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권오현 부회장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jp85@ilyo.co.kr
3명 중 권 부회장의 행보가 단연 눈에 띈다. 지난 12일 권 부회장은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DS부문의 시스템LSI사업부를 팹리스(설계)사업부와 파운드리(위탁생산)사업부로 분리한 것. 삼성전자는 “사업별 전문성 강화로 최적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각 사업의 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라며 분리한 이유를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직개편이 투자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김경민 대우증권 연구원은 “파운드리 시장 1위 기업인 대만 TSMC의 시설투자 규모를 감안했을 때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연간 매출의 30~40% 수준 금액을 시설투자로 집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보다 앞선 11일 권 부회장은 삼성전자 소프트웨어센터를 반도체연구소 산하로 옮겼다. 삼성전자는 또 대만 LED업체 플레이나이트라이드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인 인수 계획이나 운영 계획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지만 DS부문이 LED사업을 담당하고 있어 권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윤부근 사장과 신종균 사장 역시 맡은 부문을 이끌고 있지만 최근 권 부회장의 활동량과 비교하면 그리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한다. 윤 사장은 지난 4월 한국전력공사(한전)와 에너지 사물인터넷(IoT) 사업 협력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신 사장 역시 최근 로웰 맥아담 버라이즌 회장을 만나 네트워크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으면서 사실상 삼성의 2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사실 권 부회장은 2015년 12월 겸직하던 종합기술원장 자리를 정칠희 사장에게 넘겨주면서 곧 물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 삼성의 이재용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이재용 사람’이 아닌 ‘이건희 사람’으로 분류되는 권 부회장은 자연스레 2선으로 후퇴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일부에서 ‘이재용의 가정교사’로 알려질 정도로 이재용 부회장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분류되는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의 위치와 역할이 더 커지면서 권 부회장의 2선 후퇴 전망에 무게가 더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최지성 전 실장이 물러난 시기에 맞춰 권 부회장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권 부회장의 최근 행보가 이재용 부회장과 교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전문경영인은 오너경영인과 달리 투자나 조직개편에 실패했을 때 그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삼성전자 정도면 수백억 원대 수준의 투자는 전문경영인이 진행해도 큰 문제는 없지만 그 이상의 투자나 조직개편은 오너의 허락 없이는 쉽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수감 중인 이 부회장과 충분히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플레이나이트라이드 인수에 1억 5000만 달러(약 1677억 원)를 베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3인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지만 현재 권 부회장이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어 실질적인 삼성 2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 권 부회장이 이끄는 DS부문의 실적은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DS부문의 매출은 35조 470억 원이었으나 올해 1분기에는 45조 8300억 원을 기록해 10조 원 이상 늘었다. 영업이익도 2조 3272억 원에서 7조 5920억 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반면 CE부문과 IM부문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모두 하락했다.
따라서 한때 생존을 걱정했을 듯한 권 부회장은 최근 사태를 기회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 부회장도 권 부회장에게 일정 권한을 준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사정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다른 건 몰라도 파운드리 사업부 신설은 권 부회장이 직접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권 부회장의 DS부문이 다른 부문에 비해 리더십을 펼치기 더 좋은 곳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CE부문이나 IM부문은 부하직원이 의견을 적극 개진하는 문화지만 DS부문은 상하관계가 강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총괄체제로 운영해왔으나 2009년 완제품(DMC)부문과 부품(DS)부문으로 조직을 양분했다. 2012년에는 DMC부문을 CE부문과 IM부문으로 나눠 지금과 같은 체제로 변경했다. 앞의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애플에 반도체를 납품하고 있는데 당시 애플에 삼성전자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는 소문이 삼성전자 내부에 있어 사업부를 분리한 것”이라며 “CE부문과 IM부문은 DS부문에 비해 같이 있었던 시간이 길어 내부 문화가 비슷하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