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체제’는 DJ(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보다 높은 정당 지지율을 기록, 당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당·청 관계는 아슬아슬하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때로는 보이는 갈등을 노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압승과 경쟁자 없는 정당 구도는 ‘추미애 체제’ 딜레마다. 적수 없는 상황이 당의 원심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16일 국회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하고 있다. 임 비서실장은 장미 한송이를 들고 방문해 추 대표에게 선물했다 박은숙 기자
새 정부 출범 이후 당 내부에서는 부정적 시그널과 긍정적 시그널이 순차적으로 불거졌다. 전자는 인사권을 둘러싼 당·청 간 잡음이다. 후자는 비문(비문재인)계로 분류되는 우원식 의원이 친문(친문재인)계 홍영표 의원을 꺾고 새 원내사령탑에 오른 것이다.
숨가빴던 문 대통령의 일주일은 ‘합격점’이었다. 연일 파격 인사에 나선 문 대통령은 국회와의 협치는 물론, 소통의 진수를 보여줬다. 역대 정권의 덫이었던 집권 초 ‘친정 체제’ 구축 대신 신진 인사를 등용, 회전문식 인사에 대한 비판도 단칼에 날렸다. 4강 외교에도 시동을 걸어 특사 파견과 6월 말 한·미 정상회담 성과를 이끌어냈다.
그 사이 당 내부는 권력구도를 둘러싼 갈등설로 몸살을 앓았다. 대선 기간 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본부실장 인적 구성을 놓고 충돌했던 추 대표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중심에 섰다. 발단은 추 대표가 강조해온 ‘인사추천위원회’ 권한 행사였다. 이는 민주당 중심의 국정운영이 핵심이다.
추 대표는 문 대통령이 취임한 5월 10일 “당규에 따른 인사추천위를 구성해 국정운영에 필요한 준비를 시작하겠다”며 선전포고를 날렸다. 대선 승리를 이끌었던 안규백 전 사무총장은 새 정권 출범과 동시에 전격 경질됐다. 추 대표의 칼춤에 개국공신들이 나가떨어진 셈이다.
파장은 컸다. 민주당 일부 최고위원들은 5월 11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대표 마음대로 할 거면, 최고위는 왜 소집하느냐”라며 추 대표의 인사추천위 설치에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추 대표도 서류를 내려치며 역정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갈등이 일촉즉발로 치닫자, 양측은 한 발씩 물러났다. 추 대표는 애초 구상이었던 ‘인사추천위’ 설치 명문화를 포기했다. 일부 최고위원들은 ‘당이 인사를 추천할 수 있다’는 원칙만 당헌에 반영키로 했다.
같은 날 예정됐던 임 실장과 추 대표의 만남은 불발됐다. 임 실장이 각 당 지도부 예방을 위해 여의도를 찾았지만, 정작 집권당 대표는 만나지 못했다. 추 대표는 치과 예약을 이유로 면담 연기를 요청했다. ‘추미애·임종석’ 불화설이 또다시 불거졌다. 일각에선 추 대표가 청와대 정무수석에 김민석 전 의원을 추천했다가 막히자, 사실상 ‘무언의 시위’에 나선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이내 민주당 당직자 전원 교체 카드가 꺼내졌다. 추 대표는 5월 14일 당 핵심인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을 포함한 당직자 대거 교체 뜻을 밝혔다. 명분은 인적 쇄신을 통한 당·정·청 소통 강화였다. 경질당한 안 전 총장이 며칠째 전화기를 꺼두고 두문불출, 집권당 내부는 쑥대밭이 됐다. 당 안팎에선 추 대표가 ‘김민석 사무총장 카드’를 골자로 하는 원 포인트 인사안을 꺼낸 직후 당내 반발이 극에 달하자, 극단적 처방을 내렸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추 대표는 “오보와 낭설일 뿐”이라며 의혹을 일축했다.
하루 뒤 ‘추미애호 2기’ 진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청 갈등의 중심에 섰던 추 대표는 호남과 친문계 인사를 전진 배치했다. 정무직 당직자 20명 중 18명을 교체했다. 사실상의 전면적 개편인 셈이다. 당 사무총장에는 ‘김민석 카드’ 대신 호남 3선의 이춘석 의원, 정책위의장에는 친문계 김태년 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김민석 전 의원은 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장으로 지명됐다. 김 전 의원이 민주당 공식 직함을 가진 것은 2008년 최고위원 이후 9년 만이다. 민주연구원은 당 예산의 30%가 배정되는 가장 큰 독립기구다.
가까스로 전면전은 막았지만 인사 뒷말은 무성하다. 앞서 대선 기간 선대위 종합상황실장도, 청와대 정무수석도, 민주연구원장직 인선도 추 대표의 ‘김민석 카드’ 끼워 넣기가 논란의 발단이 됐다. 김 전 의원은 ‘추미애호의 갑판장’으로 불린다. 친문계 한 관계자는 “추 대표가 논란이 예상된 상황에서 왜 김 전 의원을 챙기는지 모르겠다”면서 “추 대표가 대선 기간 (김 전 의원 측근들이 포진한) 국민주권 중앙선대위 직능본부에 의존을 많이 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추 대표가 대선 승리 이후 ‘추미애 2기 진용’을 통해 당권 강화 시도에 나섰지만, 청와대 신문(신문재인)계 벽에 부딪혀 사실상 한발 물러선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는다. 추 대표의 당 장악력 강화 속내는 5월 15일 당 중앙위원회에서 의결한 당의 ‘인사추천 권한’과 ‘대통령의 정례적 당정협의’ 개최 등의 당헌 명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추 대표 임기는 내년 8월까지다. 특히 추 대표가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군인 만큼 지방선거 전 당권 장악은 생존의 문제다. 추 대표의 향후 행보에 따라 지방선거 전 당 내부 권력구도가 요동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추미애·임종석’ 갈등이 당 원심력의 진원지로 재부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청 갈등설이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임 실장은 5월 16일 재차 국회를 찾아 추 대표를 예방했다. 이들은 서로를 ‘누이’, ‘아우’로 칭하며 친밀감을 표시했다. 임 실장은 추 대표에게 장미를 건네기도 했다. 그는 예방 이후 기자들과 만나 불화설에 대해 “선거 전에 두 번 뵙고 이야기 나눴다”며 “언론서 짐작으로 나오는 건 사실과 많이 다르다. 불화는 없다”고 일축했다.
부정적인 시그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권교체 이후 첫 원내대표 경선에서 비문계는 친문계를 꺾고 승전보를 알렸다.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인 우원식 의원이 총 투표자 수 115표 가운데 61표를 얻어 친문계인 홍영표 의원(54표)을 꺾은 것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전 홍 의원 우세를 점치는 이들이 많았다. 한 당직자는 경선 전 “대선 경선과 본선에서 친문계 위력이 나타났는데, 이기지 않겠느냐”며 승리를 점쳤다.
뚜껑을 연 결과는 달랐다. 당의 을지로위원회를 이끌었던 우 의원이 신승을 거뒀다. 이는 친문계 원내대표가 출범할 경우 오히려 여야 협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당내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친문계가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는 비문계 원내사령탑을 통해 협치의 지렛대를 만드는 게 낫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중진 의원실 보좌관은 “원내 원내대표 경선은 이변이 많이 일어난다. 계파나 지역 등도 중요하지만, 후보 개개인의 친소 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여의도에선 원내대표 경선과 관련해 ‘밥을 세 번 이상 사면 당선, 그 이하면 낙선’이란 말이 회자된다. 하지만 우 원내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세월호 7시간’ 규명을 위한 국가기록물 열람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정국이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포스트 대선’ 정계개편에 휩싸인 여의도는 그야말로 폭풍전야다. 물꼬 트인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간 통합을 비롯해 범보수통합(한국당+바른정당), 범진보통합(민주당+국민의당)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분출한다. 포스트 대선 발 정계개편은 ‘양당제 체제냐, 다당제 체제냐’의 분수령이다.
마지막 키는 집권당이 쥐고 있다. 당의 인사추천 당헌 명시는 인수위 없는 과도기 정부의 최대 화약고다. 한 분석가는 “추 대표가 당권 장악에 나섰지만, 청와대와의 교감 끝에 김민석 카드 논란을 민주연구원장 선에서 봉합한 것으로 보인다”라면서도 “당·청 갈등은 휘발성을 가진 만큼,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초기 순항 여부는 당·청 관계,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 변수에 달린 셈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