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안팎에서는 2016년 전후로 외국계 자본에 대한 세무조사 강도가 더 세진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최준필 기자
뿐만 아니라 국세청은 지난해 미국계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이 인수한 보안업체 ADT캡스를 상대로도 세무조사를 벌여 약 700억 원의 법인세를 부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계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코리아와 BAT코리아 역시 담뱃값 인상에 따른 재고차익을 축소 계상한 의혹 등으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다. 감사원에 따르면 이들 기업이 탈루한 담뱃세는 2100억 원에 달한다.
국세청의 외국계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는 대부분 5년마다 이뤄지는 정기조사라는 것이 세정당국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국세청 안팎에선 2016년을 전후로 외국계 자본에 대한 세무조사 강도가 더 세진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미국계 소프트웨어(SW) 제조업체인 오라클 한국법인은 2016년 4월 국세청으로부터 3147억 원의 법인세를 추징당하고, 이에 불복해 최근 소송을 제기했다. 국세청은 오라클 한국법인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총 2조 원의 수수료 소득을 올렸지만 조세회피처인 아일랜드를 경유해 국내에서 거둔 수입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2016년 들어 국세청은 외국계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서울지방국세청 국제거래조사국의 조사 인력을 충원하고, 3개 팀을 신설하는 등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트위터 캡처.
박근혜 정부는 임기 초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겠다”며 외국계 자본에 대한 세정 우대정책을 펼쳤다. 외국인 임직원에 대한 근로소득세율을 10%대로 낮추고, 국내 인력을 채용할 경우 1인당 수천만 원의 법인세를 깎아주는 혜택이 핵심이다. 그러나 실제 외국계 기업이 원하는 ‘스펙’을 지닌 구직자는 많지 않을뿐더러 채용 규모마저 적었다.
이명박 정부는 아예 상법을 바꿔 외국계 기업이 선호하는 유한회사 설립 기준을 완화했다. 당초 유한회사는 총 사원 수가 50인 이하로 제한됐지만 법 개정으로 사원 1인 이상이면 누구나 유한회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됐다. 유한회사는 외부감사를 받지 않는 데다 기업 외부로 경영 정보가 노출될 위험이 적다. 그만큼 폐쇄적인 경영이 가능하고, 소득의 해외 이전 또한 주식회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세정당국 관계자는 “국내에서 해외 법인으로 빠져나간 돈은 추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구글은 조세회피처를 이용한 세금 탈루 의혹이 수차례 제기됐다.
세정당국 다른 관계자는 “일반적인 국내 세무조사는 내부자 제보나 자체 수집한 첩보를 활용할 여지가 있지만 (외국계 자본처럼) 정보 접근이 제한된 경우 상시적인 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대기업)가 세무조사를 기피하려는 건 아니지만 세수 확보를 지나치게 국내 대기업에만 의존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국내에 설비를 둔 기업만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것은 역차별 아니냐”고 주장했다.
재계와 사정당국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외국계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강도가 세진 것은 고액 배당 및 조세회피와 관련이 있다. 주식회사 형태인 아디다스코리아는 2011년 5984억 원이던 매출이 2016년 1조 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490억 원에서 1070억 원으로 증가했다. 아디다스코리아는 매년 당기순이익에 대한 주주 배당을 하고 있는데 2011년에는 배당금으로 1000억 원을 책정했다. 2012년에도 500억 원을 독일 아디다스(adidas AG)로 보냈다. 아디다스코리아는 2015년과 2016년에도 각각 900억 원, 1200억 원을 현금 배당했다. 지난 6년간 독일 아디다스가 챙긴 배당금은 5200억 원에 달한다.
애플 한국 법인에는 앱스토어 수수료 매출이 잡히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구글은 조세회피처를 이용한 세금 탈루 의혹이 수차례 제기됐다. 이미 이탈리아와 영국은 구글 현지법인이 탈루한 세금 수천억 원을 추징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구글은 애플리케이션 마켓인 구글플레이 수수료로만 1조 원이 넘는 수입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구글이 거둔 수입은 구글코리아가 아닌 싱가포르 법인인 구글아시아퍼시픽으로 빠져나간다.
애플 역시 같은 방법으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애플 한국법인에는 관련 수수료 매출이 잡히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는 구글과 애플의 조세회피 시도를 막기 위해 2015년부터 전자상거래 시 발생 소득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대책으로 꼽히는 초국적 IT기업에 대한 법인세 부과 요건을 강화한 법률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국세청 세무조사 외에는 외국계 기업의 ‘꼼수’를 제어할 대안이 없는 셈이다.
더구나 복지정책 확대 등으로 정부가 재정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외국계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는 신규 세원 발굴이란 의미를 지닌다. 국제거래조사국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것은 역외 거래에 그만큼 숨은 세원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앞서 국제거래조사국은 외국계 금융·증권사 및 사모펀드의 역외탈세 의혹에 대해 집중 조사를 벌였으며, 미국 씨티그룹 계열 글로벌마켓증권과 스위스 UBS증권 서울지점에 대해서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앞의 세정당국 관계자는 “외국계 증권사를 통해 빠져나간 수상한 국내 자금이 있는지도 함께 들여다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