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발간되고 충격과 놀라움에 휩싸인 건 교계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유명 목사와 유명 오페라 프리마돈나의 불륜 이야기가 상세하게 펼쳐져 있어서다. 책에서 ‘유명 목사’는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목사님’ 등으로 표기돼 있었으나, 내용과 여러 가지 정황상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인 것으로 추정됐다.
오페라 가수 정귀선 씨의 자전소설 표지.
정 씨의 책이 자전 ‘소설’이었지만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만남부터 이별 과정까지의 구체적인 상황 묘사를 토대로 보면, 유명 목사는 조용기 목사와 상당히 흡사했기 때문이다. 특히 정 씨가 책 발간 직후 <일요신문>에 자신의 사연을 보도해 달라고 직접 요청을 하면서 조용기 목사의 ‘파리 불륜설’은 소설이 아닌 사실일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이 과정에서 정 씨는 책에서 등장한 조 목사와 함께 묵었던 호텔의 영수증 등 관련 증거들을 공개했다.
그런데 정 씨는 <일요신문> 보도 직후, 돌연 <일요신문>을 상대로 2억 원대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다. 자신이 직접 취재진에 전한 이야기와 책의 내용을 토대로 보도된 내용이었는 데도 그것을 문제 삼아 고소한 것. 대화로 마무리를 하는 과정에서도 정 씨는 고소 이유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정 씨의 태도가 변하면서 논란도 점차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빠리의 나비부인> 논란은 이대로 묻히는 듯했다.
그런데 10년 뒤, 정 씨의 이야기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다. 2013년 여의도순복음교회 교회바로세우기장로기도모임(기도모임) 측이 ‘조 목사 일가의 부패’를 고발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다. 당시 기도모임은 교회에 “5000억 원의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하며 조 목사 일가의 비리 의혹 16가지를 폭로했는데, 이 가운데 불륜 의혹이 포함돼 있었다.
기도모임은 조 목사가 정 씨와 불륜을 저지른 뒤, 이 사실이 책을 통해 알려지자 정 씨에게 ‘15억 원’을 주고 입막음을 했다고 주장했다. 기도모임 주장과 순복음교회 진상조사단 조사서를 종합해보면, 책 발간 이후 순복음교회는 발칵 뒤집혔다. 일각에서는 책이 나오자마자 순복음교회 측에서 회수를 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책이 나오는 족족 절판이 되는 경우가 많아 일반인들은 쉽게 책을 접할 수 없었다는 내용도 있다.
사안을 덮기 위한 ‘협상단’도 꾸려졌다. <빠리의 나비부인> 관련 논란이 조 목사 최측근의 귀에 흘러들어간 이후다. 조용기 목사의 최측근들로 구성된 협상단은 2004년 무렵 정 씨를 직접 접촉하며 협상을 하기 시작한다.
협상단은 정 씨를 만나며 조용기 목사와의 관계를 자세하게 듣고 여러 증거물들도 확인했다. 협상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이 수차례 가진 잠자리와 관련한 얘기를 자세히 듣고 둘의 사진, 호텔 빌(영수증)도 봤다. 정 씨는 조 목사가 ‘남편의 체취로 알고 보관하라’며 남기고 간 잠옷과 속옷 등까지 보관하고 있었다. 이런 것들을 왜 갖고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정말로 사랑하고 존경했다’고 했다. 조 목사가 물 한잔 마신 컵도 애지중지했다고 했으니 얼마나 조 목사를 사랑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사안이 ‘진실’임을 확인한 협상단은 조 목사를 만나 합의금 액수를 조정했다고 한다. 또 다른 협상단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 목사에게 이 사실을 전하니 ‘그냥 조용히 해결했으면 한다’라고 담담하게 얘기했다. 처음 정 씨 측이 25억 원을 제시했지만, 15억 원으로 합의가 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일요신문>이 입수한 ‘순복음교회 윤리분과위원회 <빠리의 나비부인> 진상조사서’에 따르면 15억 원을 전달한 과정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15억 원은 2004년 2월 14일에 1차(3억 원), 3월 10일에 2차(12억 원)에 걸쳐 전달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조용기 목사가 수표를 최측근 B 장로에게 주고, B 장로가 본인의 통장에 일단 입금했다가 출금해서 정 씨 측에게 전달해 준 것으로 밝혀져 있다. 금액을 전달한 뒤엔 협상을 했던 관계자들이 불륜과 관련한 증거물들을 곧바로 회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 씨는 앞서의 기도모임 기자회견으로 논란이 증폭되자, 2014년 1월 기도모임 측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기도모임은 ‘무고’ 혐의로 정 씨를 고소하며 맞섰다. 수사기관의 조사가 한창이던 2014년 11월, 정 씨는 직접 파리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대질심문에 응하기도 했다.
당시 대질심문에서 정 씨는 “불륜과 합의 사실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이에 기도모임 측은 정 씨의 목소리가 담긴 녹취와 해당 증거를 제출했다. 그럼에도 정 씨는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 조작이다”라고 맞섰다. 대질심문 후 파리로 돌아간 정 씨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잠적했다.
이후 1년 반가량 진행된 조사 끝에 검찰은 기도모임의 명예훼손과 관련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반면 기도모임 측이 제기한 ‘무고’ 혐의 고소 사건은 ‘기소중지’ 상태다. 정 씨가 파리에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수사가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2017년 5월 현재까지도 이 사건은 기소중지로 남아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