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의 인기 소재로 활용되던 사설탐정. 해외에선 이미 이같은 탐정들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영화 ‘셜록홈즈’ 스틸컷.
18일 문재인 대통령의 경찰 관련 공약집에 따르면, 사설탐정을 합법화하는 ‘공인탐정제도’ 도입이 포함돼 있다. 공인탐정제를 통해 민생치안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이는 각종 사건의 사실관계 확인 등 국가의 한정된 수사력을 지원할 민간 인력을 확보하는 제도로 꼽힌다.
사설탐정에 대한 필요성은 1990년대 후반부터 제기돼 그동안 17·18·19대 국회를 거치며 입법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돼 왔다. 하지만 공인탐정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됨에 따라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된 관련법 통과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현재 국내엔 사설탐정의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 현행법(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신용정보업으로 허가를 받은 업체를 제외하면 특정인의 소재 및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알아내거나 상거래관계 외 사생활 등을 조사해서는 안 된다. 또 탐정·정보원 등의 명칭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간인이 특정인을 미행하거나 당사자 동의 없이 사진 또는 동영상 촬영을 하는 등 증거를 수집하는 행위는 엄연히 불법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불법이라고 해서 국내에 ‘사설탐정’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탐정업에 대한 수요는 항상 존재해 왔다. 다만, 이들은 흥신소, 심부름센터 등의 이름으로 음지에서 공공연하게 활동을 펼쳐왔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심부름센터는 최소 30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근거 법률이 없고 이들 업체를 관리하는 기관이 없는 탓에 늘 사생활 침해 및 불법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공인탐정제가 도입되면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사설탐정이 활동할 수 있게 된다. 지난해 9월 윤재옥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인탐정법’에 따르면, 공인탐정의 업무는 미아, 가출인, 실종자, 불법행위자, 도난물품 등에 대한 추적과 소재 확인 작업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아울러 의뢰인의 권리보호 및 피해와 관련한 사실 조사를 맡는 것도 가능해진다. 전직 경찰 관계자는 “공인탐정제가 도입되면 그간 일부 심부름센터·흥신소의 개인정보보호법위반 등 불법적이고 음성적인 행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금석 대한민간조사협회 회장은 “탐정제가 합법화되면 검·경에 있어 증거자료나 증인을 찾는 등 수사상 도움이 되고 피해자를 구제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데에 앞장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검·경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 기능도 있다”며 “탐정제가 합법화되면 청와대와 법무부, 검·경 등 국가기관에 대해서도 절차에 따른 내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돼 권력기구 견제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인탐정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됨에 따라 국내에도 관련 법제정이 이루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PIA협회·한국특수직능교육재단’의 민간조사탐정 최고위 과정 수업 모습. 사진=PIA협회 제공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경찰청이 지난해 발간한 ‘민간조사업’ 관련 입법정책 설명자료에 따르면, 민간조사업 도입 시 1만 5000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1조 2724억 원의 경제효과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노동부도 지난 2014년 선진국에는 있고 우리나라에는 없는 신(新)직업 41개 가운데 첫 번째로 사립탐정을 꼽은 바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공인탐정제도 도입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제도 도입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특히 변호사 업계에서는 공인탐정제 도입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미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해 20대 국회에서 ‘공인탐정법’이 발의되자 두 차례 성명을 통해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힌 바 있다. 국민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개인정보유출, 기본권침해, 전관비리 조장 등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하 회장은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돼 있고 사생활 침해 우려와 관련해선 통신비밀보호법 등 타 법률에서 규제를 하고 있다”며 “공인탐정제 시행엔 전혀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공인탐정제 도입이 변호사와 탐정이 공생관계로 나아갈 길이라고 하 회장은 주장했다. 그는 “탐정은 변호사나 의뢰인으로부터 받은 소송 관련 사실관계를 조사해 제공하고, 변호사는 탐정이 수집한 정황 증거 자료를 통해 법률 검토를 거쳐 소송에 나설 수 있다”며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
뉴욕 유일 ‘한인 탐정’ 이순기 씨 “FBI 상대로 의뢰인 무죄 이끌어낸 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탐정업이 불법인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이에 따라 해외에서 공인탐정 자격을 취득한 뒤 활동하는 한인 탐정들도 있다. 17년간의 뉴욕시경(NYPD) 생활을 마치고 2010년부터 탐정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이순기 씨(50)도 그 중 한 명이다. 미국 뉴욕에선 최초이자 유일하게 한인 탐정으로 활동 중인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NYPD에서 17년간 근무 후 탐정으로 변신했다. 어떻게 사설탐정으로 활동하게 됐나. “어린 시절부터 만화나 영화를 보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거나 나쁜 사람들과 싸워 이기는 능력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경찰이나 탐정을 하고 싶었고,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온 뒤 자연스레 경찰에 지원하게 돼 17년간 복무하게 된 것이다. 이젠 그런 능력을 일반인, 한인들을 위해서 쓰고 싶었다.” —미국에선 탐정자격증을 취득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 “먼저 민사법·형사법·탐정법 등 필기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이후 자격심사를 거치는데 뉴욕 주는 다른 주와 달리 경찰 근무 20년 이상, 형사 근무 3년 이상의 자격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뒤 라이선스(자격증)를 취득하게 된다.” —주로 어떤 사건을 맡나. “의뢰인은 크게 변호사 측 의뢰와 일반인 의뢰 이렇게 두 종류로 나뉜다. 변호사 측 의뢰는 그들이 맡은 민·형사 사건에서 의뢰인에 유리한 증거나 증인을 찾는 등 증거수집 목적으로 연락이 온다. 미국 형사소송에서 검사는 형사 또는 FBI와 팀을 이루고 변호사는 주로 탐정을 고용한다고 보면 된다. 일반인의 경우는 입양아의 부모나 사기범죄자를 찾는 등 사람 찾는 일부터 교통사고 현장조사, 임금체불 사건 조사까지 범위가 더 다양하다.” —탐정 생활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2014년 한인 병원 1200만 달러 사기 사건에서 FBI와 연방보건국(HHS)을 상대로 의뢰인의 무죄를 이끌어낸 게 기억에 남는다. 당시 증인 40여 명을 찾아 FBI가 의뢰인을 상대로 기소한 11개 항목의 혐의를 뒤집는 증언이나 증거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연방재판검사와 싸워 이긴 자랑스러운 기억이다.” —미국 사회에서 탐정의 위상은 어떤가. “여기서 일반적으로 탐정을 한다 하면 90% 이상 ‘저 사람은 전직 경찰일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일반인은 하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탐정은 항상 총과 수갑을 휴대하는데 공인으로서 경찰·FBI의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받기 때문에 법원이나 사회 전반적으로 탐정에 대한 신뢰가 높은 편이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진 탐정 일을 계속하고 싶다. 한국에서도 탐정제도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하니까 개인적으론 처음에 법적 기반을 잘 마련해놨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 실정에 맡는 탐정법이 돼야겠지만 모든 사람에 공평하게 적용될 수 있는 법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