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과 친문 핵심부는 검찰이 제대로 역할을 했더라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도 막을 수 있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래전부터 제기됐던 검찰의 정권 눈치 보기 수사 행태를 뿌리 뽑겠다는 얘기다. 조국 민정수석이 지난 2014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정윤회 문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도 그 연장선상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일요신문>은 정윤회 문건 수사 당시 벌어진 청와대 내 은밀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정윤회 씨가 2014년 12월 10일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인이자 피고발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이에 대해 한 친문 의원은 “현 정부의 검찰 개혁 강도는 예상을 뛰어 넘을 정도로 셀 것이다. 문 대통령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개혁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 독립 차원에서 스스로 변하길 기대했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었고,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검찰은 이명박근혜 정부 들어 회귀했다. 그 대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검찰 스스로 바뀔 능력이 없다고 본다.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검찰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검찰은 정치권의 핑계를 대선 안 된다”라고 날선 비판을 했다.
선봉장으로 나선 조 수석은 연일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내며 검찰을 긴장시켰다. 조 수석은 5월 11일 기자회견에서 “한국 검찰은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하고, 그 외에도 영장청구권까지 가지고 있다. 검찰의 막강한 권력을 제대로 엄정하게 사용해왔는가에 대해선 국민적 의문이 있다”면서 “검찰개혁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 철학은 확고하다. 저도 그 소신과 철학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또 검찰이 강력 반발하고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에 대해서도 “노무현 대통령 임기 때부터 시작된 논의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기도 하고 소신이기도 하다”면서 “공수처를 만드는 것은 진정으로 검찰을 살리는 것”이라며 추진할 뜻을 분명히 했다.
조 수석은 발탁되자마자 검찰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그 일환으로 조 수석은 지난 2014년 정윤회 문건 사태를 재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문재인 정부 공약 중 하나인 적폐 청산 대상으로 검찰을 정조준한 셈이다. 이는 문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수석은 “정윤회 문건 사건 당시 진실이 제대로 밝혀졌더라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당시 민정수석실과 검찰이 정윤회 문건 사건과 관련해 진실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갖고 있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하는 것은 (민정수석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는 조 수석이 정윤회 문건 당시 민정비서관으로 근무하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 검찰 내 ‘우병우 사단’을 겨누고 있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앞서의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정윤회 문건 당시 수사 책임자는 서울중앙지검장이던 김수남 전 검찰총장이었다. 김 전 총장을 비롯해 검찰 최고위급 간부들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던 사건이다. 청와대에서는 당연히 민정비서관이던 우 전 수석이 주도하지 않았겠느냐. 검찰과 청와대의 우병우 사단들이 타깃이 될 것이다. 검찰이 쑥대밭이 될 수 있다. 검찰 개혁 기반을 닦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는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정윤회 문건 사건은 2014년 11월 24일 <세계일보>가 최순실 전남편 정윤회가 ‘십상시’로 통하는 박 대통령 측근들과 수시로 만나 국정을 좌지우지한다고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근무하던 박관천 전 경정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문건을 바탕으로 해서다. 이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라시에나 나오는 얘기”라며 일축했고, 검찰도 비선 개입 여부보다는 문건 유출에 중점을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 검찰은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관천 전 경정이 청와대 문건을 불법적으로 유출했다며 재판에 넘겼고, 십상시 국정농단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결론 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부실 수사 논란은 끊이질 않는다. 문 대통령과 조 수석이 살펴보겠다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우선 검찰이 문건 유출은 특수부에, 십상시 의혹은 형사부에 배당한 것부터가 수사 의지를 짐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핵심 당사자인 정윤회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도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권력서열 1위 최순실, 2위 정윤회’라는 박 전 경정 보고서에 대해 검찰이 꼼꼼히 수사했더라면 대통령 파면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야기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라는 아쉬움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한 친문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정윤회 문건 수사가 부실했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고 귀띔했다.
이를 두고 검찰이 청와대 가이드라인에 따라 수사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에도 이런 흔적들이 발견됐다. 비망록에 적혀있는 지시들이 그 다음 검찰 수사로 이어지는 사례들이 나왔다. 2014년 12월 2일 ‘압수수색’이라는 단어가 기록돼 있었는데, 실제로 그 다음날 검찰은 박관천 전 경정 자택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밖에 검찰 수사 배당, 정윤회 수사 범위 등에 대한 내용이 비망록에 포함돼 있었다. 조 수석은 ‘김영한 비망록’을 토대로 당시 민정수석실이 검찰 수사에 얼마나 관여했는지를 짚어본다는 방침이다. 앞서 조 수석은 기자회견에서 “민정수석은 검찰 수사를 지휘해선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었다.
특히 친문 핵심부는 우병우 전 수석 역할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 전 수석은 정윤회 문건 수사를 깔끔하게 처리한 ‘공’으로 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신임을 얻었고, 그 결과 민정수석으로까지 발탁됐다는 게 정설이다. 세계일보 보도 후 문건 유출에 초점을 맞추는 ‘프레임’을 짠 것도 우 전 수석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비서관이던 우 전 수석이 상관이던 김영한 전 수석을 제치고 김기춘 전 실장에게 ‘직보’를 했다는 전언도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실세로 통했던 한 친박 의원은 “우 전 수석이 정윤회 문건 사태 이후 청와대 내 실세로 떠올랐다. 김기춘 전 실장이 물러난 후엔 명실상부 2인자로 통했다. 친정인 검찰을 확실하게 장악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다보니 친박계에서 잘나가는 우 전 수석을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라고 전했다.
그런데 당시 검찰 내에서는 정윤회 문건 수사를 원칙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청와대도 이러한 기류를 예의주시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한다. 자칫 검찰이 대통령의 ‘역린’까지 건드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앞서의 친박 의원은 “검찰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수사 라인에서 강경한 주장이 제기됐다. 문건 유출은 핵심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봐주기식 수사를 할 경우 국민적 지탄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 검사들 사이에서 돌았던 것으로 안다”면서 “검찰을 확실하게 컨트롤해야 한다는 게 친박 핵심부의 생각이었고, 실제로 여러 방안이 실행됐다”고 귀띔했다.
김진태 전 검찰총장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 수집도 그중 하나다. 만약을 대비해 김 전 총장과 관련된 파일들을 준비해놓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 상대가 현직 검찰총장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이는 박근혜정부 초반 국정원 댓글 사건을 놓고 정권과 마찰을 빚다 중도하차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떠올리게 한다. 채 전 총장을 낙마시킨 이른바 ‘혼외자 사건’도 정권 차원의 ‘기획’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고,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들이 여럿 나왔다. 채 전 총장에 이어 취임한 김 전 총장에 대해서도 친박 핵심부가 비슷한 시나리오를 구상해놓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청와대와 일부 사정기관 특정 라인이 은밀히 이 업무에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정부 사정당국의 한 고위 인사는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첩보와 동향을 모으는 일이다. 극소수만이 진행했다. 보고서는 VIP(대통령)에게로까지 올라갔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를 활용하진 않았다. 검찰 수사가 뜻대로 순조롭게 잘 풀렸기 때문 아니었겠느냐”라고 되물었다. 당시 이들이 확보한 자료에는 김 전 총장과 친인척들의 재산을 비롯해 각종 비위 의혹 등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 자료들이 어디에 보관돼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이러한 과정들이 김 전 총장에게 압력으로 다가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박근혜정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또 다른 사정기관 관계자는 “고급 정보들을 다루는 검찰총장이 이러한 움직임을 몰랐을 리 없다. 아마 알았을 것이다. 청와대 쪽에서 일부러 흘렸을 수도 있다. 만약에 그랬다면 김 전 총장 입장에서는 청와대 뜻을 거스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여차하면 전임인 채동욱처럼 날아갈 수도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현직 검찰총장에 대해 자료를 모을 정도의 힘이 있었던 라인의 작업이라면 대충 누구일지는 짐작이 갈 것”이라고 했다.
이는 정윤회 문건에 대한 검찰 수사에 청와대 외압이 있었던 것은 아니냐는 의혹을 뒷받침한다. 특검도 이 부분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려 했다. 하지만 청와대 압수수색이 무산됐고, 특검 내부는 물론 검찰 반발이 커 실적을 내지 못했다. 특검 관계자는 “검찰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이 주로 반대했다”고 했다. 검찰은 청와대 하명 없이 원칙대로 이뤄진 수사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정윤회 문건 수사를 원점에서부터 검토 중이다. 한 친문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와 사정기관 특정 라인들이 정윤회 문건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검찰총장 뒷조사 등 온갖 편법을 저질렀다. 이들은 국가가 아니라 비정상적인 권력에 충성했다. 이게 최순실 국정농단으로까지 이어졌다. 반드시 밝혀내 진상을 규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