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사건은 지난해 5월 17일 여대생 A 씨가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을 이용하다 전혀 알지 못하는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이다. 피고인 김 씨는 지난 4월 상고심에서 살인죄가 인정돼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김 씨 측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항소를 제기했지만 상고심에서는 변론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상고가 기각된 채 재판부가 형을 확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1심에서부터 검찰은 김 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이에 김 씨 측은 “조현병으로 인해 범행 당시 정상적인 사물변별능력, 의사결정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해 3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재판에서 김 씨는 “자연스럽게 이뤄진 일이라 만족하고 있다”며 “그런 기회가 한 번 더 오더라도 똑같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반성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진술을 해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김 씨의 처벌은 확정됐지만 아직도 묻지마 살인과 여성혐오 살인 중에 정확한 동기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 조사 당시 김 씨의 범행은 여성 혐오라기보다는 조현병으로 인한 전형적인 피해망상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김 씨는 재판에서 “저는 얼굴도 못난 편이 아니고 여자들과도 술을 마시고 잘 지냈다”며 ”그리고 저는 건강하다“고 말해 살해 동기에 여혐이 내포됐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난 1년간 가장 많은 고통을 받은 이는 단연 사건의 당사자인 피해자 부모였다. 이들은 역시 계속해서 심리적, 육체적 안정이 안 되는 모습을 보여 심리치료를 계속해서 받아왔다. 이들은 재판을 이어가던 도중 교통사고까지 당해 지난 1년간 검찰과 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지급한 긴급 구호금으로 생활을 이어왔다. 사건 1년 만인 지난 17일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으로 김 씨에게 5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주기인 17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출구 앞에서 범페미네트워크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 추모문화제 참가자들이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고성준 기자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많은 사회단체들의 움직임이 잇따랐다. 27여 개의 시민단체와 여성단체는 범페미네트워크를 구성해 지난 18일 강남역 일대를 누비며 “여성혐오에 의해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며 우리는 잘못됐다고, 바꿔야 한다고 화내고, 떠들고, 목소리를 높이겠다”며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1000여 명의 시민이 함께한 것으로 추산됐고 피해자 부모도 함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라고 주장하는 일부 시민단체, 여성단체들은 강남역 살인사건을 시발점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여혐혐(여성혐오를 혐오한다)을 주창하며 세를 확장해나갔다. 여혐의 시작은 메르스 사태 때였다. 지난 2015년 홍콩에서 한국인 격리 대상자 중 여성 두 명이 격리 요구를 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베를 포함한 커뮤니티에서 ‘김치녀가 그렇지. 자기만 알아’라는 비방 글이 올라왔다.
그러나 사실이 왜곡됐다는 것이 알려진 후에도 한국 여성들을 비방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여성 일부가 대응을 하기 위해 메갈리아를 개설하게 된다. 그러나 강남역 사건을 거치면서 일부가 남혐으로 바뀌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메갈리아에서 파생된 워마드는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범죄를 저지른 김 씨의 여성 혐오를 주장했고 이후 회원수가 2만여 명으로 늘었다. 다만 남성에 대한 혐오를 분출하기 위해 강남역 살인사건을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도 나왔다. 이들은 불특정 남성에 대한 살인 모의를 하는가 하면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도 조롱하는 등의 행동을 보여 논란의 중심이 돼 왔다. 이들은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 하나로 조롱과 비하를 서슴지 않았다.
한편 워마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을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탄핵이 됐다는 논리를 펼치며 박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이번 추모제에서 역시 여혐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일부 단체가 정치관련 구호나 게임 구호를 외치는 것이 목격됐다는 증언이 이어지면서 추모 자체의 본질이 퇴색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사건이 터진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도처에서 유사범죄는 일어나고 있었다. 사건 이후 서울시뿐만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공중화장실 앞에 CCTV를 설치하거나 화장실 내부에 비상벨과 안심 거울을 설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서울시 공중화장실의 비상벨 설치 현황에 따르면 화장실이 위치한 곳에 따라 비상벨 설치율은 천차만별로 집계됐다. 공원 근처 화장실에는 설치가 됐지만 하천, 길가 등 주변 화장실에는 설치가 돼 있지 않았다.
또 개인 소유 건물 화장실의 경우에는 비상벨 설치 유무에 대한 통계가 없었고, 현행법에 따라 2004년 1월 29일 이전에 지어진 시설이나 연면적 3000㎡ 미만 건축물에는 남녀 분리 화장실 설치를 강제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