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코오롱 본사 건물 전경. 박은숙 기자.
맥쿼리자산운용은 ‘알짜 자산’인 덕평랜드 지분 49%를 사들이면서 134억 원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덕평랜드가 발행한 영구채 466억 원어치와 차입금 300억 원도 함께 인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맥쿼리그룹 임원은 “맥쿼리자산운용은 펀드기 때문에 공시 의무가 없으며 정확한 인수 금액은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당초 코오롱은 덕평랜드 지분 100%를 매각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 경험이 없는 펀드에 휴게소를 통째로 매각해선 안 된다’며 맥쿼리자산운용의 인수 가능 지분을 49%로 제한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고속도로 휴게소는 국민 모두 이용하는 공공재이니만큼 안정적인 운영이 중요하다”며 “당시 재무적 투자자인 맥쿼리보다 국내 기업인 코오롱에 운영 책임을 맡기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코오롱은 할 수 없이 맥쿼리자산운용에 지분 49%만 매각했다. 그런데 코오롱은 51% 지분을 갖고 있음에도 맥쿼리자산운용과 희한한 약정을 맺었다. 덕평랜드의 경영진 임명권을 포기했고, 의결권에 대해서도 맥쿼리 측에 권한을 넘겼다. 다시 말해 법률상 책임은 코오롱이 지고, 회사 주요 경영권을 맥쿼리에 넘기는 일종의 ‘노예계약’을 맺은 것이다.
휴게소업계에선 코오롱의 이 같은 매각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운영하는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코오롱이 가격을 더 받을 수 있었음에도 ‘급매’한 측면이 있다”며 “맥쿼리가 오래전부터 고속도로 휴게소 사업에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이를 알고, 코오롱이 먼저 협상을 제안했을 수 있다”고 했다.
2007년 개장한 덕평휴게소(사진)는 2012년부터 매년 500억 원대 매출을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의 연 평균 매출은 50억~60억 원 수준이다. 사진 코오롱 네이처브리지 제공
실제 코오롱은 덕평휴게소 매각 과정에서 경쟁입찰을 거치지 않았다. 지분 매각으로 더 많은 수익을 거두려면 공개입찰을 거쳤어야 함에도 맥쿼리를 처음부터 협상 대상자로 특정했다. 앞서 맥쿼리는 연 매출 300억 원대의 행담도휴게소를 인수하면서 1250억 원을 써냈다. 휴게소업계에선 덕평휴게소의 경우 ‘휴게소 매출 1위’라는 프리미엄을 고려하면 더 많은 금액을 받았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앞의 맥쿼리그룹 임원은 “인수 측과 매각 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성사된 거래로 문제는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맥쿼리가 덕평랜드를 통해 올리는 배당소득을 보면 ‘헐값 매각’이 아니냐는 의심이 더해진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덕평랜드의 지분 49%를 보유한 한국증권금융(맥쿼리의 자산 수탁사)은 2015년과 2016년 배당금으로 각각 81억여 원, 62억여 원을 가져갔다. 한국증권금융은 맥쿼리가 조성한 펀드인 ‘한국 민간운영권 사모 특별자산 투자신탁 제3호’(3호 펀드)의 투자자금을 관리하는 곳으로 3호 펀드는 덕평랜드의 지분 49%를 사들인 주체다. 다시 말해 한국증권금융이 배당을 받은 것은 맥쿼리(3호 펀드)가 배당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맥쿼리자산운용은 덕평랜드로부터 이자수입을 올리고 있다. 수입원은 덕평랜드로부터 인수한 영구채로 추정되는데 2015년과 2016년 각각 5900만 원, 1700만 원의 수입을 올렸다. 영구채는 채무자가 원금 상환 없이 이자만 채권자에게 지급하도록 약정된 채권이다. 배당 소득과 이자 소득을 합쳐 불과 2년 만에 전체 투자액(900억 원)의 15%가량을 회수한 맥쿼리는 휴게소 사업권이 최종 종료되는 2029년까지 지속적인 배당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코오롱글로벌 관계자는 “영구채는 회계상 자본으로 인식돼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반박했다.
현재 덕평휴게소의 운영을 맡고 있는 곳은 코오롱 계열사인 네이처브리지다. 네이처브리지는 덕평랜드 매각 직전인 2014년 12월 19일 설립됐으며, 코오롱글로벌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네이처브리지는 덕평랜드와 같은 달 29일 임대차계약을 맺고, 덕평랜드를 대신해 휴게소 점포 임대 사업을 시작했다. 계약기간은 2024년까지지만 5년 연장이 가능해 사실상 2029년까지다.
주목할 것은 네이처브리지가 매년 최소 96억여 원의 임대료 수입을 덕평랜드로 보장하는 데 있다. 즉 매각 전 덕평랜드가 하던 사업을 신설법인인 네이처브리지로 넘기고, 덕평랜드는 임대료만 받는 ‘옥상옥’ 구조가 생긴 셈이다. 뿐만 아니라 코오롱글로벌은 2015년과 2016년 각각 유상증자를 거쳐 245억 원을 네이처브리지에 지원했다. 즉 덕평랜드를 팔고, 또 다른 덕평랜드를 만든 것이다.
지난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특별세무조사 직후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는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이 회장이) 고발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연합뉴스
재계에선 코오롱이 덕평휴게소를 매각한 전후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벌였다는 말이 나온다. 덕평휴게소와 같은 ‘알짜 자산’은 물론 부실 자산도 대거 처분했다는 것이다. 실제 코오롱은 2014년 자본잠식에 빠진 크리오텍을 청산했고, 2016년 연 매출 2000억 원대 알짜 계열사인 코오롱워터앤에너지를 매각했다. 또 같은 해 계열사인 코오롱아로마트릭스를 코오롱이엔지니어링과 합병했다. 재계 관계자는 “코오롱이 대기업 집단에서 제외된 2016년에도 여러 부실 계열사를 정리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 간 복잡한 자금 흐름이 발생했을 개연성이 높다.
사정가 일각에선 지난 박근혜 정부 당시 검찰이 ‘친MB’계열로 분류되는 코오롱에 대해 사정작업을 준비했다는 말이 나온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각 기관이 덕평휴게소 매각 의혹을 주시했다”며 “(코오롱이) 정치인 및 보수 관료들과 인연이 깊은 맥쿼리를 통해 정부 인맥을 소개받으려 했다는 말까지 있었다”고 했다. 앞의 맥쿼리 임원은 “우리를 이명박 박근혜 정권과 엮는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지난해 코오롱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으로부터 특별세무조사를 받았으며, 국세청은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는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이 회장이) 고발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코오롱 핵심 계열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는 같은 해 국세청으로부터 743억 원을 추징당하기도 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