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너리그 생활의 진면목
“내가 재균이한테 그랬어요. 샌드위치라도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먹으라고. 아마 많이 놀랐을 겁니다. 이곳 마이너리그 환경에 대해. 솔직히 KBO리그 2군보다 못한 환경이거든요. 재균이로선 ‘멘붕’이었겠죠.”
박병호와 황재균은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다. 같이 마이너리그에 있는 신분이다 보니 동병상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미 마이너리그 경험이 있는 박병호로선 이번에 처음 마이너리그 생활을 하고 있는 황재균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는 입장이다.
“나도 미네소타 트윈스에 있다가 처음 트리플A팀인 로체스터 레드윙스로 내려왔을 때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환경 차이가 너무 큰 터라 자꾸 빅리그를 떠올리며 겉돌았죠. 재균이도 그럴 거예요. 스프링캠프 때부터 메이저리그에서 생활했으니까.”
박병호는 시즌 초반 햄스트링 부상으로 부상자명단에 오른 후 지난 12일 복귀했지만 좀처럼 타격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엔 황재균의 이야기이다.
“시범경기 마지막 3경기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AT&T파크에서 치렀거든요. 말로만 듣던 AT&T파크를 직접 보고 느끼고 나선 마이너리그로 내려오니 도통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그래도 메이저리그 산하 마이너리그 팀인데 환경이 얼마나 차이가 나겠나 싶었던 거죠. 현실은 극과 극이었습니다. 트리플A팀인 데도 야구장 시설이나 대우가 크게 차이가 있더라고요. 먹는 것도 그렇고요.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차이가 크다보니 혼란스러웠던 모양이에요.”
황재균은 시즌 초반 욕심만 앞섰다고 고백했다.
“AT&T파크로 하루 빨리 가고 싶었어요. 그 생각을 앞세우다보니 야구가 잘 안되더라고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올라갔어야 했는데 욕심을 앞세우니까 더 어려웠어요. 원래 하던 것도 잘 안됐고요. 더욱 밑으로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뭐든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힘들다는 얘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내가 좋아하는 야구하러 왔으니까 무조건 버티자고 마음먹었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하루하루가 괴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 두 선수의 현실과 이상
박병호는 시즌 초반 햄스트링 부상으로 부상자명단에 올랐다. 약 3주가량 미국 플로리다 포트마이어스에서 재활 훈련을 가졌던 그는 지난 12일 복귀했지만 좀처럼 타격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플로리다 포트마이어스에서 재활 경기를 치르며 주로 나이 어린 투수들이 던지는 공을 봤어요. 그런 구속에 익숙해져 있다가 더 좋은 공들을 보니까 초반에 조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또다시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재활에서 올라온 후 말이죠.”
박병호는 다른 선수들보다 뒤늦은 시즌으로 살짝 조급한 마음도 있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조급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잘한다고 해서 당장 (빅리그로) 올라가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좋은 타격감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범경기 때 좋은 성적을 내면서 기대가 컸던 터라 햄스트링 부상이 더더욱 안타깝게 느껴졌을 거예요. 그 공백이 아깝기도 하고요.”
지난 시즌 손가락 부상과 수술, 재활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박병호로선 새로운 시즌에 또 다른 부상을 당하며 하루하루가 암울했다는 얘기를 전한다.
“솔직히 화가 났다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일 겁니다. 왜 또 부상을 당한 걸까. 하필이면 왜 지금일까, 하는 생각이 많았어요. 당시 날씨가 굉장히 추웠어요. 지명타자로 경기에 나가는 터라 나름 안에서 몸을 풀고 경기에 나간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됐나 봐요.”
샌프란시스코와 1년 계약을 맺은 황재균은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보내며 하루하루 자신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황재균은 어떨까. 시범경기를 통해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을 상대해봤던 그는 트리플A의 투수들이 그에 비해 실력이 떨어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투수들의 공을 내가 공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날 더욱 절망적이게 했어요. 내 자신이 한심했죠.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할까? 라고 자꾸 내 자신을 채찍질하게 되더라고요. 야구가 원래 실패하면서, 지면서 배워가는 스포츠잖아요. 그런 야구를 하면서 나 스스로 너무 완벽하려고 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혼자 지내다보니 너무 많은 생각에 빠져 있는 것도 문제였고요. 즐겁게 하자, 스트레스 받지 말자고 결심하면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편해져 갔습니다.”
# 내려놓는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
“스프링캠프 때는 선수들이 짐을 싸서 떠나는 장면을 자주 접했어요. 그도 그럴 게 난 캠프 끝날 때까지 남았던 초청선수였잖아요. 선수들이 사라지는 걸 보던 내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가선 빅리그로 올라가는 선수들을 지켜보는 상황에 처하더라고요. 팀을 떠나 콜업되는 선수들이 정말 부러웠어요. ‘우리 거기서 만나자’고 인사하며 헤어지면서도 나도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마음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내가 욕심낸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 마음 졸이지 말고 지금 하고 있는 야구에 충실하자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을 비우니까 오히려 더 편해지더라고요. 야구가 보이기 시작한 듯했고요.”
황재균은 비로소 내려놓을 줄 알게 됐다고 말한다. 빅리그를 향한 간절함 대신 야구에 집중하기로 했단다. 그 후론 올 시즌 처음으로 홈런이 나오기도 했다.
황재균은 친절한 동료들 덕분에 미국 생활이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한국만의 음주문화인 ‘소맥’을 알려줬다고.
박병호는 지난 14일 포터킷 레드삭스(보스턴 레드삭스 산하)와의 경기에서 4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했다가 8회초 좌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 홈런을 터트렸다. 햄스트링 부상에서 복귀한 지 4경기 만에 맛본 홈런포였다.
“홈런이 나오기 전부터 안타라도 한 개 나오길 바랐어요. 그래야 부담을 덜고 경기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았죠. 3주 동안 재활하면서 빠른 공을 보지 못했던 부분이 복귀 후 타이밍 맞추는데 어려움을 겪게 했습니다. 지금은 타이밍을 맞춰가는 중인데 한 타석 한 타석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해결 방안을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
# 두 사람의 생존 방법
박병호는 인터뷰 중에 인상적인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마이너리그에서도 배울 게 많아요. 모두 팀에 남아 있기보단 위로 올라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동단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면서 또 다시 야구를, 인생을 배우고 있습니다.”
박병호는 겨우내 93마일 이상의 빠른 볼에 약점을 보인 타격폼 수정에 공을 들였다. 그게 시범경기 때 좋은 성적으로 나타났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정말 잘할 자신도 있고, 잘하고 싶은데 아직까진 이전의 내 모습을 회복하지 못한 것 같아요. 시간을 두고 내 모습을 제대로 찾아보고 싶어요.”
박병호는 “마이너리그에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며 인생을 배우고 있다”며 인상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황재균은 친절하고 재미있는 동료들 덕분에 미국 생활이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친한 선수들과 함께 한식당을 방문해 한국만의 음주문화인 ‘소맥’을 알려줬다고. 그래서인지 새크라멘토 선수들은 한국 기자를 볼 때마다 ‘소맥’이란 소리를 내뱉었다. 박병호의 동료들은 마이너리그까지 찾아간 한국 기자를 보고선 “병호가 한국에서 슈퍼스타냐”고 물으며 관심을 드러냈다. 박병호와 황재균. 그들의 공통점은 딱 하나, 무조건 빅리그로의 콜업을 기다린다는 사실이었다.
미국 포터킷·오클라호마시티=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 감독들이 본 박병호와 황재균 박병호와 황재균의 야구를 보는 양팀 감독들의 의견이 궁금했다. 먼저 로체스터 레드윙스의 마이크 퀘이드 감독(2010년 시카고 컵스와 2년 계약을 맺었지만 2011년 71승 91패로 팀 성적이 저조하자 경질된 이후 2015 시즌부터 레드윙스 감독을 맡고 있다)은 박병호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였다. 로체스터 레드윙스의 마이크 퀘이드 감독 “박병호가 부상에서 돌아온 후 잘 맞힌 타구가 여러 개 있었지만 안타로 연결되지 못했다. 오늘 홈런은 그런 답답함을 한꺼번에 씻어낼 수 있는 시원함을 안겨줬다. 분명 박병호의 자신감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박병호는 부상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 재활 경기를 통해 상대한 투수들과 트리플A 투수들의 구속과 구질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아직은 타이밍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보는 게 맞다. 박병호의 타격감이 살아나야 우리 팀도 살아난다(웃음). 박병호가 빅리그로 올라가기 전까지 레드윙스의 승리에 많은 기여를 해주길 바란다. 이건 감독으로서 솔직한 바람이다(웃음).” 새크라멘토 리버캐츠 데이브 브런디지 감독은 1996년부터 20여년 동안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여러 마이너리그 팀을 맡은 베테랑 지도자이다. 백차승, 추신수는 물론 이치로를 시애틀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에서 만났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그는 한 달 넘게 황재균을 지켜본 소감을 다음과 같이 풀어냈다. “황재균이 시즌 초에는 약간의 슬럼프와 굴곡이 있었다. 그건 당연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다보면 예상치 못한 다양한 감정을 만나게 된다. 나도 지금까지 여러 선수들을 봤었고, 시애틀 매리너스 지도자로 있을 때 일본 최고 타자인 이치로가 메이저리그에 적응할 때도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황재균도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변화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이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는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황재균이 일주일 전부터 타격감이 좋다고 말했다. 그게 지금 경기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새크라멘토 리버캐츠의 데이브 브런디지 감독 새크라멘토의 데이몬 마이너 타격 코치는 황재균의 타격폼과 관련해서 이런 얘기를 들려준다. “황재균은 레그킥 동작이 작기 때문에 타구를 맞히려는 공간을 넓게 가지고 들어간다. 선구안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뛰어나고, 빠르고 간결한 스윙으로 이어지는 타격 폼은 다양한 방향으로 타구들을 생산해내는 것이 가능하다. 기본적인 파워가 있는 선수라서 당겨치기뿐만 아니라 밀어치기도 능하다. 좀 더 파워를 탑재해서 다양한 공을 던지는 빅리그 선수들의 실력에 적응하려고 노력중인데 지금 서서히 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마이너 코치는 황재균의 문제점으로, 강속구에 대응하는 타격폼과 너무 성급하게 승부하려고 서두르고 있는 부분을 꼽았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시간을 갖고 충분히 해결해나갈 수 있는 부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