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충청북도 진천선수촌에서 열린 스노보드 국가대표 조현민 인터뷰. 최준필 기자
[일요신문] 지난 1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한스키협회의 ‘스키인의 날’행사에는 앳된 얼굴의 중학생 한 명이 참석했다. 이 중학생은 단순 행사 참석을 넘어 스노보드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인 이상호, 최보군과 함께 국가대표 자격으로 신동빈 스키협회장에게 격려금도 받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그는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국가대표 조현민(14)이다. <일요신문>은 중학생 스노보드 국가대표 조현민을 만나 국가대표로서 마음가짐, 앞으로의 목표 등을 들어봤다.
지난 19일 오전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조현민은 아직 볼살이 통통하고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영락없는 중학생이었다. 그는 스키인의 날 행사를 떠올리며 “그날도 그랬지만 오늘처럼 경기장이 아닌 곳에서 따로 인터뷰를 하는 게 아직 얼떨떨하고 어색하다”며 웃었다. 만 14세의 중학생 조현민은 이번 스키인의 날에 국가대표 임명장을 받으며 스키협회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 기록을 세웠다. “행사 때 받은 격려금 500만 원은 그대로 모아 놨다”는 그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지난해까지 참가한 모든 전국동계체육대회 1위를 휩쓸며 ‘스노보드 신동’으로 불렸다.
그는 전국체전 등 공식 대회에 나서기 이전부터 스노보드계 유명인사였다. 생후 28개월부터 취미로 스노보드를 즐기던 아버지를 따라 눈 위를 누볐다. 4살 때는 그가 스노보드를 타는 영상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며 ‘몬스터 베이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지금도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4살 조현민의 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실력에 놀라는 외국인들의 댓글도 발견할 수 있다.
스키협회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 조현민. 최준필 기자
조현민은 국제대회 참가가 가능한 나이인 만 14세가 되자 도전을 위해 코치이자 매니저 역할을 하는 아버지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국내무대가 좁았던 조현민은 해외에서도 경쟁자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올랐다. 그는 지난 2월 스위스에서 열린 유로파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더니 3월에는 국제스키연맹(FIS)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현민은 “주니어 세계선수권 때 컨디션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대회 시작 전에 자신감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대회가 열린 스위스 락스 현지에 도착해서 경쟁자들의 경기장면을 지켜보자 덜컥 겁부터 났다. 다들 생각보다 너무 잘 탄다고 느껴졌다. 조현민은 “전날에도 같은 장소에서 열린 다른 대회에 참가했는데 몸이 안 좋아서 성적이 안 나왔다. 그대로 하다간 망신만 당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했다”며 “주니어 대회에서는 절박한 심정으로 집중해서 했다. 다행히 중요한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제대회에서의 우승은 곧 국가대표 발탁으로 이어졌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며 가장 달라진 점은 항상 붙어있던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게 됐다는 것이다. 조현민이 스노보드를 시작할 때부터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따기까지 아버지의 헌신도 큰 부분을 차지했다.
조현민은 ‘아버지가 아들이 선수촌에서 지내서 적적해 하실 수도 있겠다’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항상 나를 신경 쓰셔야 했는데 오히려 지금은 편하실 수도 있다. 그래도 매일 통화하며 이야기를 나눈다”고 전했다. 조현민 부자는 지난해 2월 한 방송에 출연한 경험도 있다. 아버지의 강압적인 훈련에 조현민이 불만을 품고 갈등을 겪는 내용이었다. 조현민은 이에 대해 “아무래도 방송이다 보니 과장된 면이 있다. 실제로 아버지와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사이좋은 부자관계다”라며 웃었다.
국가대표 팀에 합류해 선수촌에서 생활하며 조현민은 팀 동료와 코치가 생겼다. 그는 “유명한 국가대표 형들과 함께 생활하고 스노보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계시는 코치님께 배운다는 게 신기하다”며 들뜬 모습을 보였다. 태극마크를 달자 학교 친구들도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다. 조현민은 “친구들이 올림픽 나가면 사인해 달라며 응원해줬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헬스장에 다니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선수촌 내 첨단 장비의 도움도 받는다. 조현민 지도를 맡고 있는 스노보드 대표팀 김수철 코치는 “현민이가 그동안 다른 운동은 특별히 하지 않고 보드만 타왔다”며 “선수촌이 장비나 운동기구가 잘 갖춰져 있어서 스노보드 타기에 최적화된 몸 상태로 만들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아직 일반적인 운동선수보다 통통한 모습으로 어린이처럼 보이기도 하는 조현민은 “근력 운동 열심히 해서 보드에 도움이 되는 허벅지와 복근을 탄탄하게 만들고 싶다”며 결의를 다졌다.
조현민(왼쪽)과 그를 지도하는 김수철 코치. 최준필 기자
“출전은 걱정 없다”는 김 코치는 “본선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현민이가 어떤 자세로 어떻게 임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한번 해보자’는 자세로 자신감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기술적으로 본인이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고치려고 노력하면 더 폭발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마냥 어린 아이처럼 보이지만 보드만 타면 눈빛이 달라진다. 한 가지 지시를 내리면 무섭게 달려든다.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덧붙였다. 조현민도 ‘금메달’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쑥스러워하기도 했지만 “꼭 좋은 성적 내고 싶다. 무조건 10위 이내엔 들고 싶다”며 결의를 다졌다.
김 코치는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으로 ‘시간’을 꼽았다. 그는 “현민이가 조금만 빨리 대표팀에 합류했으면 더 매끄럽게 가다듬어서 올림픽에 나갈 수 있었을 것”이라며 “시간이 촉박하기에 더 집중해야한다. 나이도 어리다보니 좀 더 눈길이 가는 선수이기도 하다”고 했다.
현재의 국가대표 조현민이 있기까지 선수 본인과 아버지 둘만의 노력이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금전적 뒷받침이 필요한 스노보드 종목 특성상 조현민은 경제적으로 어려움도 겪었다. 이에 그의 잠재력을 확인한 부천시 체육회는 직접 나서 지역 사업가들을 소개했고 이들은 유망주 조현민을 지원했다. 차곡차곡 쌓인 후원금은 국제대회 참가 경비에 쓰였다. NGO 단체 굿네이버스에서도 2010년부터 그를 도왔고 국제대회에서는 동행할 통역사를 지원해 주기도 했다. 이 같은 도움에 대해 조현민은 “도움을 주신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해야한다. 더 좋은 성적을 내는 게 그분들께 보답하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