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에 등장한 ‘고상만’이라는 이름에서 연극의 성격이 어느 정도 규정된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분명한 연극으로 이에 동감하는 이들이 연극 준비 과정부터 스토리펀딩에 동참했다. 막이 오르기 전에 미리 티켓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또는 그 메시지에 동감에 후원하는 방식으로 스토리펀딩이 이뤄졌다. 그러다 보니 벌써 5월 28일까지 예약 전회 매진이 이뤄졌다. 요즘 연극계에선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 “한 해 평균 600여명, 군에서 세월호 참사가 매년 두 번씩 일어난다.”
기본적으로 군의문사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군의문사에 대한 개념부터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 이번 연극의 중심은 ‘의무복무 중 사망 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전국 유가족협의회’다. ‘의무복무 중 사망 군인’이란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에 입대해 사망한 군인을 의미하는 데 보다 개념을 좁혀 ‘군에서 전투행위 이외에 발생한 인적·묵적 손실’, 군 용어로 ‘비전투 손실’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더 개념을 좁히면 ‘군의문사’가 된다.
고 씨는 “1948년 국군 창설 이후 군에서 목숨을 잃은 비전투 손실 인력은 모두 3만9000여명으로 한 해 평균 거의 600명이다. 군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매년 두 번씩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며 “이 가운데 2/3이 자살로 처리된다. 국인의 사망이 자살로 처리되면 지휘관이 처벌을 받지 않는 부대관리 훈령 때문에 자살이 아닌데 자살이 돼 버린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살로 처리된 사망 가운데 군의문사가 많다. 반면 교도소 수감자가 자살하면 교도소장 등 책임자들이 처벌을 받는다. 우리의 주장은 의무복무 중인 군인들이 서울교도소에 수감된 사형수만큼의 대우만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연극은 그 의도에 매우 충실하다. 의무복무 중 사망 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전국 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이 그동안 국방부 철문과 국회, 그리고 길거리에서 시위를 하며 울부짖던 외침이 연극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치 한 편의 연극이 하나의 시위를 보는 듯하다. 그냥 누군가 시위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며 지나쳤을 그들의 울부짖는 절규를 한 편의 연극을 통해 보다 깊이 있게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른 연극이다.
실제로 의무복무 중 사망 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전국 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연극 무대에 오른다. 그들은 연기가 아닌 그 동안 다양한 시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일들을 무대 위에서 재현한다. 그만큼 연극은 사실적이다. 배우가 된 만큼 유가족들은 억울함과 분통함으로 울부짖는 모습은 연기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연기를 하지 않는다. 정말로 억울하고 분통해서 실제로 울부짖는다. 그 어떤 배우도 할 수 없는 사실적인 연기를 배우가 아닌 유가족들이 보여주고 있다.
# “어머니들 만나 두 달 정도 같이 연습하면서 행복했다”
문제는 확고한 메시지를 갖는 연극의 성격이 갖는 한계다. 자칫 길거리나 광장이 아닌 무대에서 하는 시위가 돼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대에 오른 배우의 절반 이상이 실제 배우가 아닌 유가족들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시켜 준 것은 바로 전문 연극인들이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박장렬 연출이다. 연극집단 반의 대표로 제3, 4대 서울연극협회 회장을 지낸 박 연출은 고 작가가 쓴 대본의 진정성을 믿고 이번 작품의 연출을 맡았다. 박 연출은 “어머니들이 직접 쓴 이야기들을 읽고 안 울 수가 없었다. 군 의문사에 대해 몰랐던 사람인데 세상에 이런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몰랐다”며 “어머니들 만나고 두 달 정도 같이 연습하면서 행복했다”고 밝혔다.
애초 고 작가를 만나 연극 <이등병의 엄마>에 대한 기획을 접한 뒤 박 연출은 “간절한 슬픔과 고통을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 확보가 어려울 거 같다”며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이에 고 작가는 의무복무 중 사망 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전국 유가족협의회 회원들 일부가 직접 무대에 오르는 방식을 제안했다. 박 연출은 그렇게 무대에 오르기로 결심한 유가족들과 호흡을 맞추며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완성했다. 힘겹고 고된 시간이 됐을 수도 있었던 2달여의 연습 기간을 박 연출은 행복했다고 표현했다. 그 과정에서 연극도 확고한 메시지만큼이나 높은 완성도를 갖출 수 있게 된다.
# 하나의 스토리에 더해진 여러 유가족들의 사연
연극은 주된 스토리가 되는 하나의 사건과 다양한 ‘의무복무 중 사망 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전국 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의 사연이 어우러진다.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보면 매회 각기 다른 전투를 둘러싼 이야기가 드라마로 그려진 뒤 실제 세계2차 대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의 회상 인터뷰가 에필로그에 담긴다. 연극 <이등병의 엄마>는 이 두 가지가 혼재돼 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전쟁이 끝나고 50년도 더 지나 제작된 터라 참전 군인들이 이미 노인으로 전투신 등에 직접 드라마에 출연하진 못하고 인터뷰로 대신했다. 반면 <이등병의 엄마>는 현재진행형인 사안이기 때문에 유가족들이 직접 출연할 수 있다.
따라서 전문 배우들이 하나의 극화된 사건을 중심으로 연기하는 동안 배우로 분한 유가족들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함께 뛰고 행동하고, 또 시위한다. 그 중간 중간 자신들의 사연도 이야기한다. 매회 두 엄마씩 돌아가며 군에서 사망한 아들의 사연을 들려주는 것. 특히 첫 공연이 있던 5월 19인은 고 윤영준 이병의 실제 기일이다. 연극 후반부에서 시위 도중 한 군인의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날만큼은 무대 위에서 실제로 윤 이병의 제사가 치러졌다. 아들의 실제 사연을 갖고 무대에 올라 아들의 제사상을 엄마의 연기인만큼 윤 이병의 모친 박윤자 씨의 연기는 말 그대로 가슴이 저민다. 당연히 객석의 관객들이 접하는 가슴의 울림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연극은 ‘평범’과 ‘편견’으로 시작된다. 아들의 군 입대를 하루 앞둔 가족의 저녁 밥상, 아버지는 아들이 대견하고 엄마는 걱정하는 마음이 크다. 또 여동생은 진심으로 오빠를 응원한다. 말 그대로 평범하고 평온하다. 하루 뒤 군에 입대하는 아들을 배웅하러 동행한 엄마는 의무복무 중 사망 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전국 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의 시위를 접한다. 엄마는 그들을 ‘편견’어린 시선으로 대한다. 의무복무 중 사망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닌 특별한 누군가의 일로 치부해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객석에 앉아 있는 대다수의 관객이 비슷한 상태일 테다. 평범하기에 편견 어린 시선으로 연극을 접할 수밖에 없다. 박 연출은 이런 관객들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잡아내 연극 초반부에 녹여 놓았다. 그리고 이등병인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관객들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여전히 평범하고 편견어린 시선으로 버틸 수 있겠느냐고. 이미 일부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엄마는 자신이 편견 어린 시선으로 대했던 유가족 협의회를 찾아가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자살로 처리된 아들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외면하고 침묵하는 군을 상대로 고된 길이 계속되고 엄마와 유가족 협의회 회원들은 함께 울고 외치고 행동한다.
# 박장렬 연출을 만난 인권운동가 고상만의 메시지, 웰메이드 연극으로 완성
이렇게 배우들을 중심으로 한 극화된 연극에 유가족들의 다큐멘터리 요소가 더해져 독특한 구성의 연극이 됐다. 이를 통해 작가 고상만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연출가 박장렬을 통해 웰메이드 연극으로 완성돼 관객들 앞에 선 것.
기자 개인적으로는 그 정점에 판타지 요소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것은 바로 사망한 이등병의 출연이다. 사망 이후에도 혼령으로 종종 무대에 오른 아들은 연극 마무리 부분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들려준다.
이미 유가족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시위와 매스컴을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됐다. 이번 연극은 그들의 이야기를 연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무대 위에서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연극이기에 이런 사회적인 문제에도 판타지가 가미될 수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이기 때문에 들을 수 없었던 우리네 아들들, 국가를 지키다 세상을 떠난 그 군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 “부디 자신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밝혀 달라고, 더 이상 그렇게 세상을 떠나는 군인이 없기를 바란다”는 진심어린 이야기가 아들의 혼령을 통해 판타지 적이지만 진실 되게 들려온다. 부디 죽음 뒤에 감춰진 진실을 규명해서 자신의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그들의 목소리가.
이정호 유가족 대표는 “국가에서 징병해서 데리고 갔으면 국가가 책임져야한다”며 “2000년도에 아들을 잃고 16년 6개월 째 이러고 있다. 그 이유는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이 내게 남긴 숙제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바로 그 숙제, 아들들의 외침을 비록 연극의 판타지적 요소로 녹아들어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명확하다. 자살로 처리된 그들의 사망 원인을 명확히 밝혀주고 이를 통한 명예 회복, 그리고 순직 처리 등이 최종적인 외침이다. 이를 위해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다시 만들어 달라는 절박한 호소가 바로 이 연극의 주제다. 배우들이 이를 외치고 연극에 참여한 유가족들이 직접 호소한다.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설치됐지만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예산 낭비’를 이유로 해체시켰다.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부활은 길거리를 지나며 유가족들이 시위에서 외치던 목소리로, 또는 TV나 신문 등 매스컴을 통해 들었던 그들의 외침이다. 그렇지만 연극을 통해 직접 접한 그들의 목소리, 그들이 왜 이런 절박한 호소를 하고 있는 지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는 부분이 이 연극이 갖고 있는 힘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