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0일 디시인사이드 H.O.T. 갤러리에 올라온 문희준에 대한 팬덤의 지지철회성명서. 사진출처=디시인사이드 캡처
사건의 중심에는 90년대 전설적인 아이돌그룹 H.O.T.의 리더 문희준(39)이 있다. 지난 5월 20일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H.O.T. 갤러리 내에서 활동하던 H.O.T.의 팬덤이 문희준에 대한 지지 철회(보이콧) 성명을 발표했다. 이 팬덤은 지지 철회 성명서를 통해 문희준을 제외한 강타 장우혁 이재원 토니안 4인의 활동만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보이콧을 두고 문희준과 소율의 결혼으로 급증한 불만이 최근 딸 출산 소식으로 폭발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그러나 팬덤은 이에 대한 의혹을 사전 차단하듯 “지지 철회에는 비단 문희준이 결혼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팬을 대하는 태도나 거짓말로 대중을 기만한 점, 무성의한 콘서트 퀄리티 등 다양한 문제가 있었다”고 명확하게 밝혔다.
팬덤이 제시한 보이콧의 이유로는 ①문희준의 팬을 대하는 태도 ②속도위반 결혼과 관련한 명백한 거짓말로 팬과 대중을 기만한 점 ③무성의한 콘서트 퀄리티 ④멤버 비하와 재결합 관련 경솔한 언행 ⑤불법적 굿즈 판매와 탈세 의혹 등이 제기됐다.
놀라운 점은 팬덤이 제시한 위와 같은 이유 가운데 대다수가 이전부터 문희준과 관련해 알음알음 퍼졌던 뒷소문이었다는 점이다. 팬들에게 자신의 출퇴근길에 오라고 요구했으면서도 막상 팬들이 모습을 보이면 무시하거나 자신의 곁에 오지 못하도록 한 점, 사진 촬영을 금지시키고 선물 전달도 자신에게 직접 하지 않고 매니저를 통해 전달하게 한 것 등은 문희준의 팬들에 대한 태도로 오래 전부터 구설수에 올랐던 소문이다. 그러나 팬덤에서 직접 성명서에 이를 언급함으로써 사실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특히 문희준과 관련해 팬들이 가장 심하게 속앓이를 했던 부분은 소위 ‘조공’이라 불리는 부분으로 알려졌다. 팬덤의 성명서에 따르면 문희준의 공연과 팬 사인회 등 팬 관련 행사는 소속사인 코엔스타즈가 아니라 문희준이 직접 주관하며, 행사는 문희준의 팬클럽인 ‘주니스트’ 임원들이 관리해왔다. 예컨대 문희준의 생일파티에는 가수 본인이 직접 생일선물을 지정해 주니스트 임원에게 리스트를 넘기고, 임원은 선물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팬들에게 생일선물 비용을 받는 식이다. 여기에 생일파티 입장료도 별도로 지불한다.
지난 2월 12일 결혼식을 올렸던 문희준-소율 부부. 문희준은 당시 “속도위반 결혼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으나 결혼식으로부터 3개월 뒤인 지난 5월 12일 득녀했다. KBS 화면 캡처.
문희준의 오랜 팬이라는 한 30대 여성은 이에 대해 “문희준의 선물 지정 리스트에는 외제차나 오토바이 등 고가의 품목이 들어있기도 하지만 팬들은 생일 당일까지도 어떤 선물이 준비되는지 알지 못하고, 문희준이 이를 인증한 경우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며 “문희준이 직접 행사를 주관하면서도 투명한 회계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팬덤 사이에서도 오랫동안 문제로 제기돼 왔지만 당시에는 가수를 지킨다는 이유로 쉬쉬돼 왔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팬덤 내에서 숨겨왔던 치부를 이번 지지 철회 선언을 통해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한 만큼, 문희준 측이 속 시원한 해명을 해주길 바란다는 게 팬덤 내의 공통적인 의견으로 보인다.
이번 문희준 팬덤의 조직적인 단체 보이콧과 이를 통한 스타의 치부 공개가 ‘사상 초유의 사태’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팬덤이 지지하던 스타로부터 등을 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까가 된 빠’의 시작은 2009년 남성 아이돌그룹 2PM의 박재범 탈퇴 사태부터였다.
당시 박재범이 SNS에 한국을 비하하는 듯한 뉘앙스의 글을 썼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소속사였던 JYP에서 박재범을 일방적으로 탈퇴시키자, 60여 개의 2PM 팬클럽 공동체인 ‘2PM 팬덤 연합’에서 “박재범이 없는 2PM의 활동을 보이콧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초기에 이들은 소속사 JYP를 비롯해 2PM의 다른 여섯 멤버들과의 소통을 원했다. 그렇지만 불통만을 보여준 일명 ‘2PM 간담회 사태’는 이들을 완전히 돌아서게 했다.
2PM 팬덤은 “6명의 2PM은 인정할 수 없다”며 CD와 음원 불매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다른 2PM 멤버들이 고정으로 출연하고 있는 방송에 하차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팬덤 내에서만 알고 있었던 멤버들의 사생활이나 소문 등을 공개하면서 일부 보이콧에 참여하지 않았던 팬이나 멤버들에게도 큰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문희준의 팬덤은 그가 솔로로 전향하면서 록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온 국민들에게 조롱거리가 됐던 시기부터 쳐도 16년 이상을 지지해 온, 말 그대로 견고한 콘크리트 팬덤이다. 이 당시 문희준에 대한 조롱은 “자살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상상 이상의 수준이었고, 팬덤 역시 이와 관련한 피해와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희준을 지지하고 응원해옴으로써 단순한 팬과 스타, 소비자와 판매자 이상의 관계를 맺어온 전우와 마찬가지라는 것이 가요계의 평가다. 그만큼 견고했던 스타에 대한 신뢰가 깨진 만큼 문희준이 이를 재구축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디시인사이드 JYJ갤러리에 게시된 박유천에 대한 지지철회 입장표명문. 사진출처=디시인사이드 캡처
당시 JYJ 팬덤은 “2009년 김재중, 박유천, 김준수가 소송을 시작한 이래로 전 소속사와의 불공정한 계약에 맞선 3인을 지지해 왔으나 박유천이 성을 상품화하는 곳에 출입한 이상 부당함을 타파하기 위해 싸워온 팬덤이 그를 지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박유천에 대한 모든 활동이나 콘텐츠를 철저히 배척할 것이라고 밝혔던 바 있다.
이로 인해 현재 디시인사이드 JYJ 갤러리 내에서 박유천은 언급이 전면 금지돼 있으며, 박유천 개인 팬덤인 박유천 갤러리에서만 간간히 팬들의 지지글이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이런 문제로 팬덤이 고통받고 있던 시기에 박유천은 올 9월 결혼할 예비신부와 연애를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JYJ 팬덤 내에서 박유천은 완전한 금기어가 되기까지 했다.
한편 이번 사태에 대해 한 가요관계자는 “일반인들의 시각으로는 팬덤의 단체 보이콧 사태의 주된 이유가 ‘사랑하는 오빠의 결혼’ 때문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곪아왔던 연예인과 팬덤 사이의 문제를 터뜨리는 하나의 기폭제가 됐을 뿐, 팬덤이 돌아서게 된 계기 그 자체는 아니다”라며 “아직까지 문희준이 이번 사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이유도 이 사실을 본인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결국 무너진 신뢰를 어떻게 다시 쌓느냐의 문제로 보이는데 이번 팬덤이 제기한 문제 가운데는 법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사안도 있는 만큼 문희준 측이 명확하게 해명하지 않는다면 돌아선 팬심을 제자리에 돌리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