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의 감사가 또 개시된 가운데 이번에는 하청업체가 건설사를 대신해 발주처에 로비자금을 건넨 정황이 포착됐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2009년 ‘4대강 정비 기획단’을 설립했고, 4대강 살리기 사업 마스터플랜에 따라 13억 톤의 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공사를 3년 간 진행했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와 검찰 수사 결과, 입찰담합 등으로 11개 건설사와 관계자 22명이 기소됐으며, 과징금으로 1200억 원이 부과됐다.
이외에도 건설사들의 비리는 다양했다. 입찰 당시 낙찰 받기 위해 입찰 공구를 사전에 나눠서 들어가는 담합이 드러났다. 이때 특정업체가 낙찰될 수 있도록 도운 경쟁업체들은 저마다 설계보상비를 챙겼다. 또 다수 건설사들이 공사대금을 부풀려 지급한 후 차액을 돌려받거나 하청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챙기는 방법으로 수십억 원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도 밝혀졌다.
사업을 발주했던 한국수자원공사는 건설사들을 상대로 설계보상비 환수 1차 소송에서 승소했고 계속해서 2심을 진행하고 있다. 건설사들은 4대강 사업 계약 규정에 담합 등 입찰 무효 사유가 확인되면 설계보상비를 반환해야 한다. 아직까지 법정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건설사가 하청업체로부터 손해배상소송을 제기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A 하청업체가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한 건설사는 지난 2009년 4대강 사업 가운데 3000억 원대 규모의 영산강 살리기 6공구와 2공구 사업자로 선정된 한양건설이다. A 하청업체 대표였던 송 아무개 씨에 따르면 한양건설은 사업의 지역필수지분을 약속하는 조건으로 A 업체가 대신 발주처에 로비자금을 제공할 것을 지시했다.
일부 건설사는 입찰을 받기 위해서 그동안 암암리에 발주처에 로비자금을 제공해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건설사가 직접 로비자금을 건넨 것이 적발될 경우 영업정지 등과 같은 손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협력업체나 하도급을 줄 수 있는 하청업체에게 대신해서 로비자금을 전달할 것을 지시했다는 것. 송 씨는 “한양이 한국농어촌공사에서 발주하는 국가시책사업인 4대강 사업 2개 공구와 댐 둑 높이기 사업을 입찰 받아야만 하는데 이를 도와주면 각 해당 공사 구간의 입찰금액 대비 지역필수지분 5~10%를 주겠다고 약속했다”면서 “건설사 대신 로비자금을 발주처인 한국농어촌공사에 건네는 것을 지시했고, 농어촌공사의 공사설계 심의위원에게 골프접대뿐만 아니라 병원 치료비와 학원비까지 대줬다”고 말했다.
송 씨는 지난 2010년 골프 접대를 시작으로 1억 5000만 원 상당을 한양건설 대표로부터 받아 당시 일괄입찰 설계심의위원회 분과위원이자 심의위원이었던 김 아무개 씨에게 전달했고, 김 씨 딸의 병원비와 학원비로 수백만 원을 부담 및 대납했다고 주장했다. 또 한양건설의 지시로 4대강 사업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의 뒷조사를 했고 그 비용까지 부담했다고 밝혔다.
이후 한양건설은 당시 한국농어촌공사가 발주한 영산강살리기 사업의 최종낙찰자로 선정됐지만 A 업체를 제외한 채 금광, 새천년, 남해, 우미 등의 지역업체와 한양컨소시엄을 구성해 영산강살리기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송 씨는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심의위원으로 있던 김 씨가 로비를 받은 이후 한양건설에 발주 관련 입찰정보를 알려줬고, 저가에 낙찰 받을 경우 공사비를 부풀릴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줬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이후 한국농어촌공사 자체 감사 결과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돼 설계심의분과위원회 분과위원 활동을 못하도록 위원직이 해촉되는 징계 처분을 받았다.
또 송 씨에게 로비활동을 알선했던 김 아무개 씨는 뇌물공여 등으로 기소되기도 했다. 김 씨의 혐의는 무죄로 결론났지만 재판부는 “당시 한국농어촌공사의 직원에게 로비해 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명목으로 원고에게 돈을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고 판시했다.
송 씨는 한양 측에서 한국농어촌공사의 입찰을 위해 한국농어촌공사 내부자료가 필요하다고 해 이 자료를 갖고 있던 한 국회의원 보좌관에게 책 제작 비용이라는 명분으로 250만 원 상당을 차명계좌를 통해 송금하고 자료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골프회원권과 분양권 등도 강매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양 측에서는 송 씨의 청구원인이 불분명하며 송 씨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로비가 진행된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이에 원고인 송 씨 측에서는 남은 재판에서 원고의 손해를 입증하기 위한 증인 신문과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에 대한 증인 신청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또 피고 측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음으로 생긴 원고의 손해와 원고의 지시에 따라 지급된 실비용의 보전 청구를 요구하고 있다.
송 씨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중정의 정경석 변호사는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형사 고소도 할 계획을 갖고 있는데 혐의는 횡령과 배임 정도가 될 것이다”라며 “하청업체와 원청업체 간의 금품 수수 비리는 그동안 많았지만 하청업체가 발주처에 금품을 대신 전달하는 게 드러난 적은 없었다. 하도급 때문에 부당한 점이 있어도 밖으로 말 못하고 당하고 있을 업체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한양건설 측은 “영산강 사업 수주 당시 송 씨는 건설업체를 운영하고 있지도 않아 당사 임원이 지역필수지분을 약속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며 “송 씨가 로비 지시를 받았다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주장으로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재판을 통해 밝혀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한편 한양건설 이 아무개 대표는 지난 2005년 안상수 인천시장에게 굴비상자에 2억 원을 넣어 전달했다는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 대표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이 됐지만 2심에서 재판부는 “2억 원을 건넨 점은 인정되지만 인천에 있던 건설사를 인수하면서 의례적인 인사였고 청탁 의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2억 원 몰수 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