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민정수석.
불과 보름만이었다. 10년 이상 거론만 되어온 검찰 개혁이 이번엔 현실화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고강도 검찰 개혁을 예고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법조계에선 문 대통령의 ‘검찰 개혁’ 흐름을 두고 “오랜 기간 구상해온 듯 짜임새 있게 진행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단순히 정권 교체기에 이뤄지는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오랜 시간 말로만 나오던 검찰 개혁을 추진하는 동력으로 활용할 개연성이 크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드라이브을 두고 ‘예측불허’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힌트’는 이미 나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내놓은 검찰 개혁안이 아닌, 검찰 개혁의 열쇠를 쥐고 있는 조국 민정수석이 그 힌트의 주인공이다. 실제로 이번 개혁의 흐름은 조 민정수석이 소장과 운영위원으로 있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의견‧주장 등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 인사가 만사다
10여 년 전부터 고강도 검찰 개혁을 주장해온 사법감시센터의 최근 주장을 간추리면, 개혁 흐름은 크게 인적청산⟶시스템 개혁 순으로 나뉜다. 이를 현실화할 방안들은 줄기처럼 여러 갈래로 뻗어있다.
이 가운데 핵심은 인적청산이다. 본격적인 검찰 개혁에 앞서 기초를 다지는 사전 작업이기 때문이다. 얼핏 단순한 ‘물갈이’ 형태로 비춰질 수 있지만, 검찰 외부로부터의 개혁과 내부 자정작용 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이 숨어있다는 게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측 주장이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파격 인사가 대표적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소속 검사만 200명이 넘어 단일 검찰청으로 검찰 최대 수사 조직이면서도 ‘최고’로 꼽히는 검사들이 포진해 있어, 서울중앙지검장은 법무부 검찰국장과 함께 검찰 내 ‘빅2’의 요직으로 꼽히기도 한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 대전 고등검찰청의 평검사를 임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임명은 검찰 조직의 기수 문화를 깬 파격인사다.
윤 지검장의 인사를 두고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이 가운데 주목할 점은 ‘검찰 기수파괴’에 있다는 게 사법감시센터 측의 설명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으로 활동 중인 최영승 한양대 로스쿨 겸임교수는 “기수 낮은 후배 검사를 요직에 앉힌 것을 ‘선배 검사들은 나가라’는 압박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정권 교체 시기에 이뤄지는 단순 물갈이나 보복적 차원의 인사가 아니다. 향후 이어질 검찰 인사에서도 마찬가지”라며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 정년은 63세다. 평생 검사로 남으라는 뜻이다. 유능한 검사들이 관행처럼 떠나면 그만큼 국민에게 손해다. 이번 인사를 계기로 불필요한 기수 문화를 없애는 등 발전적 방향을 고민하는 것, 이것 자체가 검찰 개혁이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파격 인사는 법무부 탈(脫) 검찰화와도 맞닿아 있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시도한 이 탈 검찰화 방안은 당시 검란(檢亂)이라 불리는 검찰의 조직적 반발에 부딪혀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고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측은 설명한다.
법무부의 탈 검찰화는 법무부와 검찰이 각각 다른 기관으로, 상호 견제기구의 역할을 해야하지만 사실상 ‘한 몸’으로 얽혀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대통령령인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를 보면 법무부 간부 중 보임 자격을 정해둔 60여 개 직책 가운데 검사가 맡을 수 있는 보직은 30여 개에 달한다. 하지만 법무부에 따르면 법무부에 파견된 부장검사급 이상 간부만 31명에 달하고, 그 아래 평검사까지 합치면 80명에 가깝다.
특히 현재 법무부 장·차관 자리 외에도 기획조정실장, 법무실장, 검찰국장, 범죄예방정책국장, 감찰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등을 검사장급 검찰 간부들이 차지하고 있다. 검사가 아닌 실·국장급 공무원은 교정본부장 한 명이 유일하다. 이 때문에 검찰을 견제하면서 지휘·감독해야 할 법무부는 제 기능을 못 하고, 검찰은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인식이다. 앞서의 최 교수는 “검사장급 간부들을 외부 인사들이나 실무 공무원으로 대체하는 게 법무부 탈 검찰화의 시작”이라며 “탈 검찰화가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정치적 중립성 논란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 목표는 ‘사법부 개혁’
인적 청산으로 시작된 검찰개혁 드라이브는 다음 단계로 ‘시스템’을 겨누고 있다. 핵심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다. 공수처는 이미 관련 법안 3건이 발의되는 등 설치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데다, 조국 민정수석도 임명 이후 기자회견 등에서 “공수처를 만드는 건 검찰을 죽이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살리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 민정수석의 “공수처는 검찰을 살리는 것”이라는 발언은 앞서의 ‘외부로부터의 개혁으로 검찰 내부의 자정작용을 이끌어 낸다’는 인적청산 목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막강한 권력기관으로 자리 잡은 검찰의 힘을 신설될 공수처로 나누는 동시에 견제 기구로 활용, 검찰 내부에서부터 중립성과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얘기다. 사법감시센터 측에 따르면 조 민정수석은 공수처장과 간부들에 대한 인적 구성은 물론,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공수처 방안의 경우 사법감시센터가 지난 2013년 한 차례 내놨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 새롭게 방안을 다시 구성 중이다.
검찰 개혁의 최종 목표는 10여 년 동안 논란만 있었던 수사권 조정이다. 앞서의 외부 개혁과 검찰의 내부 자정작용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수사권 조정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공수처와 함께 수사권이 조정되면 검찰은 외부의 감시를 받으면서 기소권만을 갖는 수준으로 권한이 크게 축소된다.
다만 문재인 정부에서 수사권 조정은 검찰보다는 경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사 권한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지금의 경찰 시스템에 그대로 적용하면 또 다른 부작용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경찰도 자체적인 개혁안을 내고 있지만,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상당수다.
앞서의 최 교수는 “경찰에 독자적 수사권을 부여하기 전에 갖춰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며 “경찰 조직 자체를 개편해 중앙과 자치경찰제로 재편해야 한다. 중앙경찰은 마약, 테러, 국제범죄 등 특수 범죄를 수사하는 미국의 FBI 형태가 바람직하다”라며 “나머지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지방경찰청장을 임명하는 자치경찰로 이뤄져야 한다. 자치단체장에게 치안 서비스까지 책임 지우자는 이야기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단체장 산하에 지방경찰위원회를 두고 견제 역할을 맡기면 정치적 중립성도 충분히 보장될 수 있다”며 “경찰 개혁에 대한 안은 충분히 나와 있다.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이제는 선택의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구체적인 시기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법원 개혁도 예정돼 있다. 특히 비대한 권력을 가졌다는 지적을 받은 법원 행정처 권한 분산(일요신문 1302호-‘판사 블랙리스트’ 조사위 발표에도 여진 계속되는 까닭)이 핵심이다. 앞의 최 교수는 “검찰 개혁으로 시작됐지만, 사실상 사법 기관 전체 개혁으로 이어지는 큰 그림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