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의 맏손녀 마코 공주(왼쪽)와 그녀의 약혼남 고무로 게이. ANN뉴스 캡처.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축하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쪽에선 이번 약혼을 계기로 일본 왕족 수가 감소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일본 ‘왕실전범(왕실 제도와 규칙 등을 정한 법률)’에 의하면, 여성 왕족은 결혼할 경우 일반인으로 신분이 바뀌고 왕실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19명인 일본 왕실은 14명이 여성이며 그 가운데 7명이 미혼여성이다.
지난 5월 17일, 일본 궁내청은 “마코 공주가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상대는 국제기독교대학(ICU) 동급생인 고무로 게이(小室圭). 도쿄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사무직으로 근무 중이다. NHK에 따르면, 고무로는 대학 시절 가나가와현 에노시마가 관광홍보 차 주최한 ‘바다의 왕자’ 콘테스트에 나가 왕자로 선발된 이색 경력이 있다. 이러한 사실을 들어 일본 언론들은 “마코 공주가 ‘바다의 왕자’와 결혼한다”면서 “결혼 시기는 내년이 될 전망”이라고 알렸다.
마코 공주는 일본 왕실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동생 가코 공주(22)가 예쁘장한 외모로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비해, 마코 공주는 솔직한 성격으로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외모에서도 차분한 분위기가 나는 데다 종종 서민적인 모습이 목격돼 ‘호감형 공주’에 속한다. 가령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2011년 여름에는 신분을 숨기고 자원봉사를 하는가 하면, 지난해 1월 영국행 비행기에서 ‘이코노미 클래스’를 탄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워낙 오랜만의 왕실 경사이기 때문에 마코 공주의 약혼 소식은 일본인들을 충분히 들뜨게 만들었다. 아울러 공주의 러브 스토리는 해외에서도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CNN은 “프린세스 마코가 사랑 때문에 신분을 포기한다”고 전했다. 대다수 해외 매체들은 ‘여성 왕족이 결혼하면 신분이 평민으로 바뀌고 왕족에서 제외되는 일본 왕실의 특이성’을 기이하게 바라봤다. 특히 엘리자베스 여왕(91)을 국가원수로 둔 영국의 반응은 주목할 만하다.
‘바다의 왕자’ 홍보대사로 활동하던 고무로.
또 영국은 성별 구분 없이 왕위를 계승하지만, 일본 왕실법은 여성이 왕위를 계승할 수 없게 돼 있다. 오직 일왕의 직계 후손인 남성 왕족에게만 왕위 계승 자격이 주어진다. 지금 왕위 계승 자격을 가진 사람은 아키히토 일왕의 장남 나루히토 왕세자(56)와 차남 후미히토 왕자(51), 후미히토 왕자의 아들인 히사히토(10) 등 3명뿐이다.
BBC 방송은 이런 이유로 “점점 줄어드는 일본 왕족 수를 둘러싸고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여성 왕족이 결혼 후에도 왕적을 유지하며, 왕실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초고령화·저출산 문제는 일본 왕실도 피해가지 못했다. 아키히토 일왕의 손주 4명 중 남자는 히사히토가 유일하다. 현재 일본 여성 왕족은 14명. 그 중 30세 이하가 7명으로 머지않아 결혼해서 왕실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왕실에서 남자가 부족한데 여성 왕족마저 결혼으로 차례차례 평민이 되면서 일본 왕실은 꽤나 골치를 앓고 있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특별히 마코 공주는 왕족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테니스협회 및 일본 공예회 명예총재를 맡았고, 해외 친선방문도 적극 수행해왔다. 영국 레스터대학원에서 박물관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에는 도쿄대 박물관 특별연구원으로 근무 중이다. 많은 이들이 마코 공주가 왕실을 떠나는 걸 아쉬워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약혼 소식을 계기로 여성 왕족이 결혼 후에도 왕실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여성궁가(宮家)’의 창설을 검토할 때”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수성향의 아베 정권은 “부계 계승의 전통이 깨질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 논란은 앞으로 거세질 전망이다.
마코 공주는 해외 친선방문 등 왕족으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왔다. 많은 이들이 마코 공주가 왕실을 떠나는 걸 아쉬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16년 9월 파라과이 방문 모습. EPA/연합뉴스
한편, 왕실을 떠날 마코 공주의 거취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식으로 결혼해 신분이 ‘강등’되면 선거권이 주어지고, 일반 국민과 똑같은 위치에 놓인다. 강등 직후 혼란을 피하기 위해 경비로 관할 경찰이 배치될 순 있어도 왕궁 직속 경찰이 배치되는 일은 없다. 당연히 궁내청 직원의 보좌도 없으니, 온전히 20대 부부 두 사람만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왕실경제법 규정에 따라 일시금은 주어진다. 왕족이 처음 독립생계를 꾸릴 때 받는 이른바 준비금 같은 것으로, 우리 돈으로 10억 원가량의 금액이 지급된다. 일시금은 본인 명의 계좌로 직접 입금되며 과세는 하지 않는다. 10억 원은 일반 시민에게 있어 거액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왕족으로 살아온 공주에게는 그리 큰돈이 아닐지 모른다.
예를 들어 2005년 평민과 결혼해 왕족 신분을 상실한 사야코 공주는 도쿄도내에 있는 맨션에 살고 있는데, 시세가 10억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코 공주 역시 비슷한 장소에 산다고 하면 준비금을 모두 쓰게 되는 셈이다. 친정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느냐 하면 거기에는 더 엄격한 ‘법률의 벽’이 존재한다.
왕실 저널리스트 구노 야스시는 “일시금 외에 나라에서 지출되는 돈은 없다. 왜냐하면 왕실의 재산 재원은 국민들의 세금이기 때문이다. 왕실경제법에 따라 돈의 이동이 엄격히 제한돼 있으므로 후미히토 왕자 부부가 딸 마코 공주를 위해 따로 ‘송금’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남편의 월급만으로 생활이 어려울 경우 맞벌이는 가능할까. 구노 씨는 “사실 그동안 왕실 출신 여성이 맞벌이부부로 일한 전례가 없다. 하지만 따로 법률에 금지한다는 규정이 있는 건 아니다”면서 “마코 공주의 경우 현재 공무로 인해 도쿄대학 박물관에서 비상근직원으로 일하고 있으나 결혼 후에는 상근직원으로 일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