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5월 23일 경남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서 ‘노무현의 꿈’을 말했다. 그리고는 “대통령으로서 참석하는 것은 마지막일 것”이라며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돼 다시 찾아뵙겠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선 집권 초반 3가지 암초를 넘어야 한다. 또한 3번의 변곡점도 지나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노무현재단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줄곧 따라다니는 키워드는 ‘개혁’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10여 일 만에 7번의 업무지시로 적폐청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 중 국정교과서 폐지(2호)와 5·18 기념식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3호), 안태근·이영렬 돈 봉투 만찬 감찰 지시(6호), 4대강 사업 정책감사 지시(7호) 등이 ‘문재인식’ 개혁안의 복선으로 꼽힌다. 일자리위원회 설치(1호)와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일시 가동 중단 및 미세먼지 대책 기구(4호), 세월호 희생 기간제 교사 3명 순직 인정(5호) 등 민생·안전보다 많은 수치다.
이 지점은 대통령의 유형을 파악하는 중대 포인트다. 이를 분석하면, 문재인 정부의 성공 전제조건이 보인다. 역대 대통령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유형을 지니고 있었다. 예컨대 문민정부의 문을 연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지 않는다. YS는 금융실명제를 시행하고 하나회 척결을 꾀한 ‘개혁 대통령’이다. 탈권위의 참여민주주의 시대의 물꼬를 튼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국제금융기구(IMF) 탈출에 사활을 건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개혁+경제 대통령’이었다.
일자리 창출을 국정 우선순위로 내세운 문 대통령의 가시적 성과는 예단할 수 없다. 후보 시절 경제분야는 그의 아킬레스건이었다. 더불어민주당 한 보좌관은 대선 기간 “우리 후보의 가장 큰 약점은 경제 분야의 디테일”이라고 말했다. 경제 대통령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현 추세대로라면 개혁 대통령에 가깝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개혁 대통령은 국정 지지도가 과반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모든 동력을 잃는다”라고 말했다.
경제 대통령이나 안보 대통령의 경우 개혁 대통령보다는 지지도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 민생고 해결이나 안보 위기론 돌파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혁 대통령은 다르다. 개혁은 찬반 이슈가 명확히 갈리는 ‘이슈 파이팅’ 요소다. 이명박(MB) 전 대통령 측이 문 대통령의 4대강 감사 지시와 관련해 “시빗거리를 만들지 말라”고 한 것이나,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문 대통령의 업무지시에 대해 “협치를 막는 권한 남용”이라고 비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국정 지지도 ‘과반 유지’는 문 대통령이 임기 초반 넘어야 할 첫 번째 암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5월 3주차(5월 15∼19일 조사·22일 발표,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81.6%였다. <리얼미터>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도를 조사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리얼미터>의 이명박(MB)·박근혜 전 대통령의 취임 1주차 지지도는 76.0%와 54.8%였다.
그러나 동시에 딜레마도 상존한다. 지지도 조정 기간을 거쳐 50%가 붕괴되는 순간, 검찰 개혁이나 전 정권 흔적 지우기 등은 곧장 국론분열의 화약고로 치부된다. 문 대통령이 역설한 제3기 민주정부는 간데없이 ‘참여정부 시즌 2’로 전락한다는 얘기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국정감사와 예산정국이 있는 올해 연말까지 지지도 50%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다음 암초는 2018년 지방선거다. 문재인 정부 2년차 때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사실상 ‘중간평가’다. 문 대통령이 과반 지지도를 유지하더라도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국정동력은 일시에 꺼진다. 정부를 뒷받침해야 하는 민주당은 ‘지도부 총사퇴→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수순을 밟으면서 내부 권력투쟁에 골몰하게 된다. 당·청 간 불협화음이 극에 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임기 초 80% 이상의 지지도 고공행진을 했던 YS도 1995년 지방선거 참패 이후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의 둑이 터졌다.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은 민주계와 민정계가 총선 및 대권을 놓고 권력투쟁을 벌였다. 지방선거 직전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정치 복귀로, 야당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집권 초반 문 대통령의 허니문 랠리로 당·청이 순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밑에선 어두운 그림자도 엿보인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알력 다툼설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청와대에 파견됐던 당직자들이 복귀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까지 연출됐다. 사건의 발단은 5월 2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 대통령 당선 직후인 5월 10일 민주당 부국장·차장급의 실무당직자 6명은 청와대로 파견됐다. 문재인 정부의 업무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5월 24일 이들은 돌연 당으로 복귀했다. 당·청의 설명은 엇박자를 냈다. 청와대 측은 “당에서 복귀 명령을 한 것”이라고 한 반면, 민주당 관계자는 복귀 명령의 주체로 청와대를 지목했다.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임 실장이 2주간의 파견 기간이 끝나서 원칙대로 (당으로) 돌아가라고 한 것”이라고 파문 진화에 나섰다.
정치권 안팎에선 당의 ‘청와대 상시근무자의 할당’ 요청을 문 대통령 측이 거부하면서 추 대표가 사실상 ‘실력 행사’를 했다고 본다. 앞서 ‘당 인사추천위원회’ 구성의 당헌 명시를 놓고 마찰을 빚은 ‘추미애·임종석’ 갈등의 제2라운드와 궤를 같이하는 셈이다. 추 대표는 같은 날 청와대에 고위 당·정·청 협의체 가동도 제안, 당·청 간 주도권을 둘러싼 시소게임이 본격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선 서울시장 출마설에 나도는 추 대표 측과 이를 견제하는 청와대 신문(신문재인)계의 갈등이란 분석도 있다.
마지막 암초는 인사다. 집권 초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등 파격 인사를 단행했지만,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자인 국무위원 후보자의 운명은 알 수 없다. 벌써 일부 인사들은 구설에 오른 상황이다.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 특임교수와 홍석현 한반도포럼 이사장의 돌출 발언이 대표적이다. 문 특임교수는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북관계를 새롭게 이끌어가기 위해 5·24 조치의 제약을 인식하고 이를 전향적으로 풀어갈 필요가 있다”, “북한이 화끈하게 핵·미사일을 검증 가능한 동결로 나온다면, 한·미 연합훈련 잠정 중단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5·24 조치 해제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한·미 연합훈련 잠정 중단 발언은 대미 외교 협상력만 낮출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청와대 측은 “개인의 의견”이라면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끔찍한 북핵 위협 눈앞에 두고도 안보 팽개치는 행태”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홍 이사장도 청와대 특보 임명 직후 “처음 듣는 이야기로 당황스럽다”고 말해 청와대와 엇박자를 냈다. 청와대 측은 당시 “지켜보자”며 말을 아꼈다. 홍 이사장은 5월 17일 미국 특사차 워싱턴 DC로 가기 직전 출국장에서 기자들에게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해 “후보 때 한 발언과 대통령이 돼서는 좀 차이가 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의 공약 수정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배 본부장은 “6월 말 한·미 정상회담과 7월 G20 정상회의에서의 한·중 정상회담, 올해 가을부터 시작하는 국감과 연말정국 등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이 과정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문재인 정부의 시험대”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