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2차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이 “유·무죄 판단의 근거로 사용해달라”며 신청한 증거들을 대거 배척했다. 검찰의 조사를 ‘믿을 수 없다’며 법원에서 하나하나 새롭게 따져달라고 한 것인데, 박 전 대통령 측이 부동의한 증거(진술서)는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에 대한 삼성의 승마 비용 지원(뇌물수수 혐의)’ 부분만 150여 명 분에 달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592억 원대 뇌물 수수 혐의 등에 대한 첫 정식재판이 열린 2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마친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로 돌아가기 위해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법조계 관계자들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던 박 전 대통령 측의 예상된 전략”이라고 분석하는 가운데, 법원도 고민에 빠졌다. 이를 모두 조사하려면 시간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해서 박 전 대통령 측이 부동의한 부분에 대해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재판 결과를 선고했다가는 ‘흠집이 있는 재판’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형사재판의 경우 검찰이 수사를 통해 확보한 증거를 법원에 내면 피고인 측 변호인이 이를 검토해 동의하는지 여부를 밝히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검찰이 남긴 진술 조서에 ‘거짓된 내용’이 담겼다고 판단하지 않는 경우 피고인 측은 조서를 증거로 채택해도 된다고 ‘동의’하면 된다.
동의하면 바로 정식 증거로 채택돼 유·무죄 판단의 근거로 사용할 수 있는데, 진술 조서에 담기지 않은 내용은 증인으로 채택해 추가로 물어보면 된다. 하지만 부동의하면 법정에서 하나하나 새로 다퉈야 하는데, 그럴 경우 적게는 30분, 많게는 3~4시간까지 필요하다. 수백 개에 달하는 질문들을 하나하나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박 전 대통령 측의 뇌물수수 사건이 너무 ‘거대’하다는 것. 박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이 적용한 15개 혐의 모두를 부인했는데, 일단(아직 모든 혐의를 박 전 대통령 측이 검토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 진술서 증거 채택을 부동의한 삼성 뇌물 부분만 따져도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진술을 받은 전체 사람 수로 따지면 430여 명에 달한다. 박 전 대통령이 부동의한 150여 명만 불러 조사한다고 해도, 수십 차례의 재판이 불가피 하다.
이를 놓고 법조계는 “검찰의 일부 증거를 철회시키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패 사건에 밝은 법조계 관계자는 “6개월 안에 재판을 끝내야 하고 언론의 이목이 많이 쏠린 점을 감안해 불리한 증거 중 일부는 검찰이 스스로 철회하게 한 뒤 나머지 핵심 진술들은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씨의 범행을 몰랐다’는 스탠스로 정면 돌파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박 전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사는 “진술 내용의 상당수가 전문 진술(다른 사람에게서 전해들은 것)이고 공소사실과 관계가 없는 부분도 많기 때문에 검찰이 철회하면 되지 않느냐”고 재판부에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재판부가 당혹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 재판부는 “(150여 명을) 모두 불러 증인 신문을 하는 것은 시간낭비이고 생업에 종사하고 있어 심적 부담도 있을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 측에 재검토를 요구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측은 검찰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표현해 이미 검찰 조사를 받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재판에 다시 나와 진술해야 하는 상황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1심 재판은 법리만큼이나 국민 정서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 측은 법리로 승부를 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원래 사법부는 이렇게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은 1심에서 국민적 지탄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쪽으로 결론을 내고, 2심이나 대법원을 통해 결과를 조정하는 경향이 있다”며 “아마 1심에서는 국민적 분노를 달랠 수 있는 정도를 감안해 범죄 혐의 중 상당수로 유죄로 인정했다가, 2심 때 정치 흐름에 따라 일부에 대해 유무죄 판단을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2심은 지금부터 한 1년은 있어야 선고할 텐데 그때도 문재인 정권이 지금처럼 지지를 받는다는 보장이 있느냐”며 “그때 정치지형이 어떻게든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단언했다.
법원 관계자 역시 “이번 사건에서 박 전 대통령은 스스로 단 한푼의 돈도 받지 않았고, 공범으로 지목된 최순실 씨도 ‘박 전 대통령은 몰랐다’는 입장 아니냐”며 “대통령의 권한이 얼마만큼 인지 정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직접 받지 않은, 제3자를 통한 뇌물수수를 법원이 직접 입증해 판단해야 하는 구조로 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법정다툼을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법리가 국민감정보다 우선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국민감정도 알게 모르게 재판부에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라며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을 포함, 사법 개혁 드라이브를 세게 걸수록 박 전 대통령에게 알게 모르게 불리한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최민준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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