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그룹 가운데 현대차그룹만 유일하게 지배구조 개편 방향이 오리무중이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속도와 강도가 강력하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의 변화는 현 정부에서 불가피하다. 증시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변화가 삼성의 경우처럼 주주친화 정책 강화를 수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또 문재인 대통령 취임과 함께 정상외교 채널이 복구되면서 중국의 사드 보복이 완화되고 이에 따른 현대차그룹의 피해도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새 정부 출범으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사건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현대차그룹은 그룹 내 금융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전 그룹사 중 가장 규모가 큰 순환출자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사 지분 보유는 금융사의 제조사 의결권 보유가 아니므로, 새 정부의 규제 강화에 따른 압박이 제한적이다. 기존 순환출자 강제 해소와 관련해서는 단시일 내 입법화 가능성이 제한적이다.
하지만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 관련 규제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추가 입법인 아닌 공정거래위원회의 시행령 등을 통해서 강화 가능성이 유력하다.
특히 내년 말 일몰을 앞둔 지주회사 전환 시 대주주의 현물출자분에 대한 양도차익 과세이연 조세특례법은 현대차그룹에는 지배구조 개편을 서둘러야 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인적분할 후 총수 일가의 기존 계열사 지분을 출자전환하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지배구조 개편 방법이다. 지금까지는 이연되던 과세를 한꺼번에 내면 그 효과가 크게 줄어든다.
이 때문에 5월 들어 지배구조 개선 기대로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주가가 급등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현대모비스의 주가상승폭이 현대·기아차의 2배에 달한다.
현대모비스가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는 방안은 가장 오랜 기간 시장에서 예상했던 지배구조 개편방안이다. 이때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의 순환출자 구조도 해체해야 한다.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해소하는 방법이 가장 유력하다. 상호-순환출자를 피하고 경영권도 지키려면 이 지분을 살 수 있는 주체는 정몽구 회장 등 총수 일가뿐이다.
기아차의 현대모비스 지분 16.88%의 가치는 4조 7000억 원에 달한다. 정의선 부회장이 가진 주식자산은 모두 합해 3조 3000억 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차입을 할 수 있지만 정 부회장은 2조 원이 훨씬 넘는 상속·증여세 부담까지 잠재적으로 지고 있다. 무리한 차입을 피해야 한다.
물론 변수는 있다.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후 현재 장외가보다 주가가 더 오를 가능성이다. 매각이든 주식 맞교환이든 비상장 상태에서는 적정 가치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현대건설과 합병하며 우회적으로 상장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역시 부담이 적지 않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후 후계구도와 관련된 합병은 어려워졌다. 하지만 상장으로 현대엔지니어링 지분가치가 아무리 높아진다고 해도, 1조 원을 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정몽구 회장이 힘을 보태기도 어렵다. 정 회장의 보유주식 자산은 약 5조 3000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그룹 지배에 필요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지분 3조 8000억 원 정도를 제외하면 매각이나 맞교환 등으로 움직일 수 있는 주식가치는 1조 5000억 원 남짓이다. 하지만 이 여력은 지주체제 전환 시 현대제철이 가진 현대모비스 지분(약 1조 5000억 원)을 사는 데 대비해야 한다. 현대제철의 현대모비스 지분 역시 해소해야 할 순환출자 고리에 속한다.
이 때문에 최근 골드만삭스가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가 각각 인적분할한 뒤 지주사들이 합병해 통합 지주사를 출범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 지분만 갖는 통합지주회사다. 정 회장 부자는 보유 중인 계열사 지분을 현물출자해 지주사 신주로 바꿔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현대차그룹 각 사는 자사주 보유량이 충분치는 않으나 3사 간 순환출자로 인해 합병 추진 시 자사주 포함 주식 소각을 통해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이 경우 대주주의 지주사 지분율은 약 30%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이 같은 분할 후 합병을 추진하려면 주주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유지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은 판매량 기준으로 세계 4위, 합산 순이익 기준으로는 세계 약 3위에 해당하지만 배당성향은 20% 수준에 못 미처 경쟁업체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주주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라도 주주권 강화를 골자로 한 상법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지금의 낮은 배당성향은 충분히 빠르게 증가할 여지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