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계는 정치보복이라며 발끈하면서도 불똥이 어디로 튈지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정권 안에 들어올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 실소유설 등 여러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다스와 관련된 움직임이 친문 핵심 관계자들 사이에서 포착돼 파장이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사진=노무현 재단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4대강 감사 지시를 발표한 5월 22일 저녁. 친이계 인사들 몇몇이 인사동에서 모임을 가졌다. 예정된 약속 자리였지만 하루 종일 언론에 4대강 사업과 관련된 기사가 쏟아졌던 터라 자칫 정치적 오해를 살 수도 있어 장소를 바꾸는 등 주변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이날 화두는 단연 문 대통령의 4대강 감사 발표였다. 참석자들은 문 대통령을 강하게 성토했다.
한 친이계 전직 의원은 “직전 정권을 넘어 전전 정권까지 손보겠다는 것은 정치보복으로밖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최순실 국정농단이야 그렇다 쳐도 4대강 사업은 여전히 찬반 논란이 뜨거운데 적폐로 치부해버리면 국론은 또 다시 분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이계 전략가로 통했던 또 다른 참석자도 “지금 대한민국 현실에서 4대강 감사가 그렇게 시급한 현안인지 모르겠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잡아 어떤 한을 풀려는 의도가 짙은 것 아니냐”라고 물었다.
공개적으로 불만을 쏟아낸 친이계 정치인들도 적지 않았다. 이명박 대선 캠프에서 BBK 방어를 주도했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23일 페이스북에 “일부 좌파언론과 문 대통령이 합작해 감사 지시를 하고 있는 것은 정치적 보복 이외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노무현 자살을 MB 탓으로 여기니까”라는 글을 올렸다. MB정부 초대 특임장관을 지냈던 주호영 바른정당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도 “지난 정부에 대한 정치보복이나 정치감사에 그치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했다. 친이계 핵심 인사였던 정두언 전 의원은 “(4대강 감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옥에 티”라고도 했다.
이처럼 4대강 감사에 친이계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MB 정권을 향한 사정 드라이브의 신호탄 성격으로 보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이를 통해 친이계 실세들, 더 나아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조준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도 “감사과정에서 명백한 불법행위나 비리가 나타날 경우 상응하는 방식으로 후속처리 할 것”이라고 밝혀 결과에 따라 향후 검찰 수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했다.
김 수석은 “4대강 사업은 정상적인 정부 행정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성급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정부 내 균형과 견제가 무너졌고, 비정상적인 정책결정 및 집행이 추진력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됐다”고도 했다. 이는 4대강 사업을 바라보는 현 정권의 시선을 짐작케 한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4대강 사업이 정치적 목적 또는 불순한 의도 하에 추진됐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 세 차례 감사에서 이를 밝혀내지 못한 것은 워낙 교묘하게 감춰놨기 때문이다. 현 정부도 쉽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4대강을 둘러싸고 은밀하게 벌어졌던 불법들을 파헤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일환”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대선 기간 “4대강 등과 관련해 부정으로 축적한 재산이 있다면 환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 측은 지난 정권을 손보는 것 아니냐는 식의 시선에 대해선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김 수석도 4대강 감사를 시작으로 이명박 정부 자원 외교와 방산 비리에 대한 감사도 이뤄질 수 있냐는 질문에 “적어도 제가 아는 한, 그런 판단이나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정권 핵심부 주변에선 강경한 기류가 역력하다. 4대강 사업을 주도한 이 전 대통령으로까지 반드시 검찰 수사가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뒤를 따른다. 앞서의 민주당 의원은 “정치보복이 아니라 과거에 잘못된 것을 되돌려 놓는 일이다. 죄를 짓고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면 이것이야말로 적폐 아니냐”라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친문 관계자들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MB 정권에서 벌어진 석연치 않은 부분들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엔 감사에 착수한 4대강뿐 아니라 자원외교와 방산비리, 그리고 다스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이는 현 정권 레이더가 MB 정권 추진 사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이 전 대통령 일가를 향할 것으로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2007년 대선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 차명 보유 의혹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다스 때문이다.
다스 논란의 핵심은 진짜 주인이 누구냐다. 2007년 대선 때 이 전 대통령과 경쟁했던 친박계는 다스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이라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이 아닌 처남 고 김재정 씨가 다스를 갖고 있다고 해명했다. 고 김재정 씨는 이 전 대통령 재산 관리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고, 김 씨가 지난 2010년 사망하면서 다스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정치권과 사정당국 주변에선 이 전 대통령 일가가 다스를 실제로 지배하고 있을 것이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다는 얘기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대선 기간 문재인 캠프 핵심 업무를 맡았던 몇몇 친문 인사들의 입장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이들은 문 대통령 공약 중 하나인 적폐 청산 관련 보고서를 만들 때 4대강 방산비리 등과 함께 다스도 포함시켰다고 한다. 지금까지 제기됐던 다스에 대한 의혹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문 대통령이 단행한 주요 인사 및 업무 지시 등이 이들과의 논의 하에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른바 ‘다스 보고서’ 역시 신빙성이 높다. 이 과정에 관여한 친문 관계자는 “다스가 이 전 대통령 소유라는 정황은 한두 개가 아니다. 2007년 대선 이후 보수 정권 10년 동안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대표적인 적폐”라고 했다.
또 다른 친문 인사 역시 “(문 대통령이) 다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맞다. 문 대통령뿐 아니라 지난 보수 정권에서 야당을 했던 정치인이라면 다 비슷하지 않겠는가. 다스와 BBK 문제는 어정쩡하게 넘어간 측면이 많다”고 했다. 대선 기간 만들어진 보고서에 따르면 재산 관리인이던 처남에 이어 이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알려진 강경호 씨가 대표를 맡은 점, 이 전 대통령 아들 시형 씨가 임원으로 근무하며 고속승진을 했던 점, 처남이 죽고 남긴 지분 중 일부가 이 전 대통령 재산 출연으로 세워진 청계재단에 기부된 점, BBK를 둘러싼 소송 전에서 나타난 다스의 납득하기 힘든 처신 등이 이 전 대통령 실소유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들로 제시됐다.
현 정권이 4대강 사업 감사에 이어 다스까지 겨눌 경우 친이계도 어떤 식으로든 반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치적 세가 미미해진 이들이 집권당 주류로 돌아온 친문계와 맞서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지난 2009년 ‘박연차 게이트’ 때 대대적인 수사를 받아야 했던 친노 진영의 강경한 스탠스도 친이계로선 부담이다. 기자와 사석에서 만난 친노 진영의 한 중진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무현 공식 서거를 발표했던 게 대통령 문재인이다. 친노에게 이 전 대통령은 정치적 원수나 다름없다. 정권을 잡은 친이계의 그 거만한 태도를 잊지 못하는 동지들이 많다. 이들은 정권만 바뀌길 기다렸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이 한을 풀기 위해서 이러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노무현의 죽음과 같은 비극적 일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4대강이고 다스고 정확히 진상을 규명하고, 잘못된 부분은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 친이계가 강하게 반발하겠지만 문 대통령이 뚝심 있게 밀고 나갈 것으로 본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