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열린 제80차 국민경제대책회의에 이명박 전 대통령 초대로 참석한 한경희 대표. 당시에도 한경희생활과학은 수백억 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미래사이언스는 주부 성공신화로 유명한 한경희 대표가 세운 생활가전 기업이다. 지난해 12월 한경희생활과학에서 사명이 변경됐다. 한경희생활은 지난해 5월 신설된 법인이다. 법인등기부 확인 결과 두 법인의 사업 목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래사이언스의 채무는 약 250억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완전자본잠식에 매년 적자만 수백억 원에 이르자 결국 지난해 12월부터 워크아웃이 추진됐다. 그러나 기업은행 등 채권단은 실사 후 기업가치 대비 채무가 지나치게 많다는 결론을 내고 부결시켰다. 부활 가능성이 낮다고 본 것이다.
결국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운 미래사이언스는 지난 4월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기업 회생에 성공하면 채무 일부를 감면받고 상환 유예가 가능하다.
이처럼 회사가 재무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신규 법인을 세운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기업회생을 위한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스팀 제품 및 주방기기 등 핵심 사업은 한경희생활로 이관시키고 미래사이언스를 의도적으로 도산시킴으로써 채무를 한꺼번에 정리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미래사이언스라는 사명에 한경희라는 이름이 빠진 점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황적 증거다. 모든 한경희 대표 관계 기업에는 ‘한경희’ 혹은 ‘한(HAAN)’이 사용됐는데, 유독 미래사이언스에만 이름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즉 부채를 떠안고 서류상으로만 존재하거나 장차 사라질 기업에 CEO(최고경영자) 이름을 사용하기가 거북스러워 뺀 것 아니냐는 추론이다.
평소 한경희 대표와 가까이 지내던 중견 통신장비업체 대표 A 씨가 지난해 5월 한경희생활 법인이 설립되자마자 8억 원을 빌려준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A 씨는 회사 대 회사가 아닌, 개인적으로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단 신주인수권부사채(BW) 조건이다.
BW는 채권자가 향후 지정된 가격으로 주식을 구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계약을 말한다. A 씨가 미래사이언스가 아니라 한경희생활 주식을 조건으로 거액을 투자한 것 역시, 한경희생활이 향후 핵심기업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한경희 대표는 왜 사업을 계속 영위해야 할 한경희생활 직원들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을까. 이는 한 대표가 A 씨로부터 지난 4월 사기혐의로 고소를 당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A 씨는 소장에서 한경희생활이 대여금도 상환하지 않고 신주도 발행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사기행위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한경희생활의 전체 자본금이 4000만 원에 불과한 반면, A 씨가 신주를 구입할 수 있는 권리가 주당 5000원씩 8억 원 규모라는 점이다. 따라서 신주 발행을 하게 되면 A 씨의 지분이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기 때문에, 사실상 회사가 A 씨에게 넘어가게 된다.
정리하면 회사의 핵심 직원들을 보유하고 있는 한경희생활이 당장 A 씨에게 넘어가게 될 위험에 빠지자, 한 대표가 직원들을 다시 미래사이언스로 돌리려 한 것 아니냐는 것이 대부분 직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한 퇴사자는 “권고사직 후 미래사이언스로의 이직을 통보 받은 상당수 직원들이 회사와 협의를 통해 그냥 퇴사를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래사이언스 역시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간 만큼 차라리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다.
결국 미래사이언스가 신청한 기업회생을 법원에서 승인하느냐만 남았다. ‘비즈한국’은 이와 관련해 한경희생활 측에 수차례 문의했지만 “담당자가 공석”이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봉성창 비즈한국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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