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취임 이후부터 강조해온 정부조직 운영의 기본 방침이다. 청와대는 각 부처에 권한을 일임하고 정책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부처 간 이해관계가 상충하거나 업무 조율이 필요할 때만 나서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과 외교안보수석 등을 폐지하는 등 조직 슬림화에 나섰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왼쪽)과 김태년 부위원장이 22일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열린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출범식에서 현판을 제막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대신 박근혜 정부 때 폐지됐던 정책실을 부활시켜 각 부처 간 업무 조율을 맡기기로 했다. 정책실은 문재인 정부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정책실장에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앉혔다.
흥미로운 점은 부처 인사다. 김동연 아주대 총장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지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 후보자는 기재부 안에서도 손꼽히는 예산통이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예산실장과 세제·예산을 담당하는 2차관을 역임했다.
이명박 대통령 때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통합해 만든 기재부에서는 세제·예산보다는 경제정책·금융 출신이 장관에 오르는 것이 인사 관행이었다. 기재부가 청와대와 협의해 국가 경제의 밑그림을 그리면 예산을 부문이 이를 보조하는 식으로 부처가 운영돼 왔다.
강만수 초대 기재부 장관은 국제금융이 전문 분야며, 바통을 이어받은 윤증현 전 장관은 금융 분야에 정통했다. 뒤이은 박재완·최경환·유일호 전 장관은 모두 정치인 출신이자 대학에서 경제정책과 금융을 공부했으며, 학자 출신인 현오석 전 장관도 금융통이다. 재정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던 신제윤·임종석 전 금융위원장 모두 금융 부문에서 경력을 쌓았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며 금융 전문가가 기재부 장관에 오른 측면도 있지만, 재정부의 역할을 고려하면 경제정책·금융 쪽에서 장관이 나와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는 개발경제 시대를 접고 일자리를 중심으로 한 소득주도 성장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정책의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4월 12일 대선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이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왼쪽),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와 함께 경제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에 기재부의 정책 기능을 후순위로 미루고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의 경제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예산라인을 중용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청와대 경제수석 인사와 기재부 1, 2차관의 역할 조정 및 인사를 지켜봐야하지만 현재로서는 기재부가 주도적으로 정책을 펼치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에 비해 청와대는 국정기획자문위원장에 참여정부 시절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4선 중진인 김진표 의원을 앉혔다. 김 위원장은 세제 등 경제정책 전반을 관리하게 된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부위원장은 장하성 실장이 앉아 경제민주화 정책을 구체화 할 계획이다. 청와대가 정책을 발주하면 기재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구조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큰 활동이 예상되는 공정거래위원회 분야도 비슷하다. 공정위원장에는 재벌 저격수로 이름을 날린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지명됐다. 이전까지 공정위원장은 재무 관료 출신들이 독차지해왔다. 경제정책으로 이력을 쌓은 관료들이 도맡았다. 김 후보자가 얼마만큼의 조직 장악력을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이에 청와대가 지원 사격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와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온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 올랐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국가의 경제정책 수립과 관련해 대통령에게 자문을 주는 기구다. 의장은 대통령이다. 김 부의장은 김상조 교수와 함께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며 학술 활동을 펼쳐왔다. 사실상 청와대가 공정위원장을 지원사격하는 모양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이전 정부와 정책 방향이 바뀌면서 청와대 중심의 강한 리더십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며 “경제사령탑 역할을 해 온 기재부의 역할 축소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지금 비즈한국 홈페이지에 가시면 더욱 생생한 콘텐츠를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