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택 당대표 권한대행과 한국당 의원들이 5월 3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낙연 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장관 후보자 청문위원을 맡고 있는 한 의원실 관계자는 “여당 때는 청문회를 해도 후보자를 감싸주는 입장이니까 자료 제출 등으로 얼굴 붉힐 일이 없었는데 야당으로 청문회를 해보니까 자료 제출을 너무 안 한다”면서 “자격지심인지 모르겠지만 야당이라고 무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당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야당 생활이 적응이 안 된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나경원 의원은 대선 이후 강연을 할 때마다 한국당을 ‘우리 여당’으로 칭했다가 정정하는 일을 여러 차례 겪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나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아직은 말하다 보면 여당, 야당이 자꾸 헷갈린다”고 말했다.
선거법 위반 등으로 재판을 앞두고 있는 한국당 의원들도 정권이 바뀐 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법원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하소연이다. 지난 5월 19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당선무효형인 벌금 200만 원이 선고된 김진태 의원은 자신의 SNS에 “검찰은 당초 무혐의 결정을 했는데 법원에서 기소를 명령하고 재판을 한 것”이라며 “정권이 바뀐 것이 실감난다”고 말했다.
한 한국당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정권 바뀐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불편한 점은 크게 없다”면서도 “여당 의원실에는 고위 공무원들이 줄지어 인사를 가고 있다고 하는데 야당이 되니까 의원실이 조용하더라. 앞으로 지역구 현안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야당이라고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점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반면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정성호 의원은 SNS를 통해 “여당 의원이 되니 여러 모로 수월해진 느낌”이라면서 “법무부 차관, 검찰국장, 대법원 행정처차장 등이 방문했고, 지역구 숙원사업도 4년 만에 해결됐다”고 말했다.
야당과 여당을 모두 경험해본 전직 한국당 의원은 “현직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야당이 되어도 사실 큰 불편함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선출직이 아닌 별정직 사람들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제 각 공공기관, 공기업 등에 별정직으로 채용됐던 한국당 사람들이 실업자가 돼서 여의도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야당의 가장 큰 서러움은 ‘배고픔’”이라고 귀띔했다.
한국당은 대선 패배 후 비대했던 당 조직도 정비 중이다. 최근에는 기자실을 축소하고 외부에 있던 여의도연구원을 당사에 입주시켰다. 임대료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등 원내 교섭단체가 늘어나면서 한국당이 지급받는 국가보조금도 크게 줄었다. 한국당 당직자들 사이에서는 임금이 깎이거나 인력 구조조정이 있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살림살이는 팍팍해졌는데 청와대나 공공기관에 파견됐던 당직자들이 복귀하면서 인건비 부담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국당 홍보국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당직자 인력 구조조정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야당이 되면서 정년퇴직을 앞둔 당직자들이 갈 곳이 없어져서 문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당의 경우 당직자들이 계급 정년이 있어서 50~55세 정도면 정년퇴직을 하게 된다. 여당일 때는 퇴직하고 정부 산하기관 같은 데 사무총장이나 본부장으로 많이 갔는데 야당이 되면 길이 다 막힌다. 자녀들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라 한창 일할 나이에 퇴직을 하게 되는 것이니까 야당이 되면 무척 서러운 것”이라고 털어놨다.
앞서의 전 한국당 의원은 “정권이 바뀌면 또 서러운 게 그동안 추진해왔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된다. 그걸 지켜보는 게 힘든 일이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는 국가 재정 건전화를 위해 공무원 연금 개혁 등을 추진해왔는데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 숫자부터 늘리겠다는 것 아닌가”라면서 “야당은 정부 여당의 저격수 역할을 하며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데 청문회를 보니 한국당이 야성을 다 잃었다. 앞으로 야당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국당이 국정운영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선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총리 인사청문회에 대한 대처를 보니 당분간 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의 협치로 국정이 운영될 것”이라면서 “한국당은 국정운영에서 소외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민주당은 법안 통과를 막을 의석수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야당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힘을 쓸 수 있었지만 한국당은 더 서러운 야당 시절을 보내야 할 것이란 경고로 풀이된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