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2014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3월 29일 오후 10시 30분쯤 피해학생 A 양(18)은 당시 고교 2학년생이었던 B 군(20)으로부터 “우리 집에서 남학생 4명과 함께 놀자”는 권유를 받았다. B 군과는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사이였다. A 양의 친구는 평소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A 양에게 “이 오빠를 알면 상황이 좀 나아질 것”이라며 둘을 연결했다.
B 군의 집으로 가 시간을 보내던 A 양은 자정이 지난 새벽 2시 30분쯤 그 집에 있던 고교 남학생 5명에게 집단으로 성폭행을 당했다. A 양은 완강하게 거부했지만 남자 5명의 힘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B 군을 포함한 3명은 A 양을 직접 성폭행했고 2명은 A 양을 붙잡는 등 3명의 성폭행을 도왔다.
A 양은 이 사실을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다. 침묵하던 그는 한 달쯤 지난 2014년 5월 6일에야 경찰에 입을 떼었다. 전화로 자신이 당했던 성폭행과 그 전부터 이어져 오던 학교폭력의 굴레를 설명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경찰은 A 양을 설득해 5월 17일 오후 2시쯤 만나 상세한 피해상황을 접수 받았다.
하지만 경찰은 이 사건을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없었다. A 양은 소문과 수치심 등의 이유로 가해학생 형사입건 및 처벌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틀 뒤 A 양은 용기를 냈다. 가해학생들의 대화를 본 뒤였다. 가해학생들은 단체 대화방에 “A는 맛도 더럽게 없다. 앞으로 비는 집 있으면 또 불러서 하자”고 남겼다. 이 대화 내용은 여럿에게 전달되며 A 양의 휴대전화까지 흘러 들어갔다. 2014년 5월 19일 경찰은 “가해학생을 형사입건하고 처벌해 달라”는 A 양의 전화를 받았다.
경찰은 서둘러 사건을 진행했다. 2014년 5월 21일 가해학생 5명 가운데 3명을 구속하고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2014년 5월 30일 가해학생 가족이 각각 3000만 원씩 걷어 1억 5000만 원을 피해자에게 합의금으로 넘겼다. 3명은 소년교도소 단기 1년 장기 3년을 받고 1년 뒤 모두 출소했다. 직접 성폭행을 하지 않은 2명은 기소유예 처분 뒤 곧 근교 학교로 돌아갔다.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지역에서 퍼진 소문으로 2차 피해가 발생했다. 지역 사회 또래 학생들의 소셜 미디어에는 “더러운 X, 즐겼으면 됐지 신고를 했네. 돈 벌려고 몸 팔았다”는 글이 떠돌았다. 이 글은 A 양의 눈에 걸렸다. 그 해 2학기부터 A 양은 출석을 거부했다.
이때부터 허술한 학교폭력 피해자 안전망이 속속 드러났다. 2학기 내내 학교를 가지 않은 A 양은 이듬해인 2015년 2월 자동으로 졸업 처리됐다.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르면 피해학생은 결석해도 출석이 인정된다. 학교와 교육부 등 관계 부처는 A 양이 중학교 졸업장을 받을 때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현재도 아무런 관심조차 없다.
교육부는 학교 소관이라며 선을 그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의 출결관리는 학교 소관이다. 중학교 3학년 때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라면 자동 졸업 뒤 이 학생이 다닐 고등학교가 자체적으로 학생의 출결을 관리한다”며 “학교 자치위원회에서 피해학생의 처우 등을 챙긴다. 교육부에서 따로 관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육부 전경. 연합뉴스
이는 현장의 목소리와 동떨어진다. 학교폭력예방법에 ‘학교와 교육청 등의 피해학생 재활 의무화’가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이 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피해학생을 장기간 모니터링해 정상 교육의 울타리로 들어올 수 있게 하는 방안이 시급하다. 현재 법에는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교내 자치위원회가 학교장에게 피해학생의 심리상담, 일시보호, 치료 및 요양, 학급교체 등을 ‘요청’할 수 있다고만 나와 있다. 학교 입장에서는 피해학생 하나 내보내는 게 행정처리가 빠르고 편하다.
익명을 원한 한 학교전담경찰관은 “보통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학교는 피해학생을 다른 학교로 떠넘기거나 졸업 시키기에 바쁘다. 굳이 가해자 다수를 행정처리 하는 것보다 한 명 그냥 보내 버리면 학교 입장에서 손 씻기 편하기 때문”이라며 “현행법 자체가 허술하다. 학교와 교육청의 피해학생 재활을 의무화해야 한다. 학교가 1차로 피해학생의 재활을 전담하고 교육청은 2차로 학교의 성실한 피해학생 재활을 평가·감독하면 된다”고 했다.
지역 내 악소문 등으로 심신이 안정되지 않은 A 양은 현재 3년이 지나도록 학교를 가지 못하고 있다. A 양처럼 현재 학교를 가지 않는 청소년이 이미 2만 명을 넘었다. 2015년 12월 여성부가 발행한 ‘2015 학교 밖 청소년 실태 조사’에 따르면 만 9세 이상 청소년 총 2만 1960명이 학교 울타리 밖에서 지낸다. 대부분은 중고교생 나이대 청소년이다. 심화 조사대상이었던 4691명의 97.4%가 만 13세 이상이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중고교생 나이대 청소년은 사회 통념상 ‘비행 청소년’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학교를 떠난 학생의 58.7%가 비행과 무관한 일반 청소년이다. 가정불화 등의 원인이 다수를 차지한 가운데 10%는 성폭력을 포함한 학교폭력 탓이다. 일단 한 번 학교 밖으로 나온 청소년은 대부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다. 청소년의 42%는 2년 이상 학교를 나가지 않고 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학교를 가지 못하는 학교폭력 피해학생은 2000여 명이다. 학교폭력 피해학생관리 의무화를 넘어 학교폭력 피해학생을 돌볼 수 있는 대안학교가 서둘러 들어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역의 폐쇄성과 그릇된 성의식은 단순한 법 개정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부 실태 조사에 따르면 학교 밖 청소년이 지낼 수 있는 대안학교는 대부분 미인가 상태다. 정부 지원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에 따르면 최근 5년 학교폭력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소년은 1년 평균 290여 명에 이른다. 모방 자살을 염려해 경찰청과 교육청 등 관련 기관에서는 이와 같은 피해학생 관련 통계를 내부에서만 공유한다고 알려졌다. 이 사건 담당 경찰관은 “내가 맡았던 학생 가운데 성폭행 피해 여학생 2명이 2013년과 2014년 각각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기보다는 서둘러 안전망을 마련해야 이와 같은 비극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성폭력 경험을 단톡방에…‘2차 피해 어쩌나’ 이 사건을 조사한 경찰관에 따르면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 대부분은 2차 피해 때문에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가해자들이 소셜 미디어나 단체 채팅방에서 자신들의 성폭력 경험을 자랑처럼 늘어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벌은 쉽지 않다. 날이 갈수록 청소년들이 영악해지는 탓이다. 이 사건의 경우 2차 피해가 발생한 글에서 피해자는 간접적으로 드러났을 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정도로 특정되지 않았다. 담당 경찰관은 “요즘 가해 학생들은 법망을 피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은연 중에 피해자를 지목하는 등 악질적인 형태를 띤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따른 2차 피해도 여전히 심각하다. 피해자를 ‘꽃뱀’ 취급하는 식이다. A 양이 먼 지역 학교까지 가서도 학업을 중단한 건 이런 시선 때문이었다. 멀리 있는 학교로 다시 입학한 A 양에게 ‘꽃뱀’ 등 악소문은 계속 따라 붙었다. 2004년 밀양 지역 고교생의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때와 변한 게 없다. 사건 직후 밀양에서 진행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밀양 시민의 64%가 “사건의 책임은 여자에게 있다”고 답했다. 심지어 “같이 좋아서 성관계를 했다“고 발언한 사람도 있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