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주말 드라마 ‘맨투맨’에서 냉철한 국정원 고스트 요원 ‘김설우’ 역을 맡고 있는 배우 박해진이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제공=마운틴무브먼트 엔터테인먼트
“사이코패스 역할이 이어서 들어오면서 ‘내가 전에 연기를 잘했나? 그래서 (똑같은 걸) 또 주나?’ 하고 생각했어요(웃음). 근데 제가 그렇게 생겼나 봐요. 사람들이 그래요, 웃지 않으면 차갑다고.”
마냥 잘생긴 것보다는 속내를 들여다보기 어려운 쪽이 맘에 든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최근 JTBC 금토드라마 <맨투맨>에서 냉철한 국정원 고스트 요원 김설우 역을 맡아 활약하고 있는 박해진이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차가운 이미지만을 온전히 부각시킨다면 ‘완전한 악역’도 탐나는 캐릭터다. 박해진은 “단순한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그냥 웃으면서 푹 찌르는, 밑도 끝도 없는 악역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과거사가 밝혀지면서 ‘이 녀석도 착한 녀석이었어’라고 시청자들로부터 동정심을 사는 악역이 아니라 악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던 동기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나쁜 놈’이 탐난다는 이야기다.
그는 “원래는 악역을 맡을 때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냥 등장부터 나쁜 놈이고 죽을 때까지 나쁜 놈, 매력 있지 않아요?”라며 무조건적인 악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악역에 애정이 넘친다고 해서 지금 맡은 배역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극중에서 본격적인 작전에 들어가면서 흑화한 최정예 고스트 요원 김설우와 완전히 동화된 박해진은 앞으로의 전개와 관련해 고민이 많았다.
“설우라는 인물이 주변에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맺고 끊는 게 아주 철저한 인물인데,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이런 설우의 철칙이 깨지게 돼요. 그러다 보니 그 인물들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배역 하나를 맡으면서도 그 캐릭터와 주변 인물 간의 관계, 배경, 과거와 현재를 모두 분석해서 연기에 임하던 그다. 그러다 보니 사람과의 관계에서 고뇌하는 김설우라는 캐릭터가 어디까지 느슨해져야 하는지, 마음을 얼마나 열어야 하는지가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치인트’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박해진은 ‘맨투맨’이 끝나면 영화 ‘치인트’ 촬영에 올인할 예정이다. 사진제공=마운틴무브먼트 엔터테인먼트
한꺼번에 두 사람과의 ‘로맨스’를 펼쳐내야 하는 행복에 겨운 상황에 대해 박해진은 “(시청자들에게는) 로맨스가 주목받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브로맨스에 더 치중했다. 굳이 상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고, 설우라는 캐릭터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는 멜로 그 자체를 느끼는 것에 집중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진지했던 설명과 달리 “사실은 주변에 도하 말고는 다 맨(man)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더 브로맨스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고스트 요원으로서 역할이 끝나면 박해진은 다시 어딘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대학선배 ‘유정’으로서 팬들 앞에 서게 된다. 지난해 tvN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치인트)>에 이어 영화 <치인트>에서도 유정 역할을 맡게 됐다. 드라마 제작에 들어가기도 전에 가상 캐스팅에서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 그 자체로 인정받았던 캐릭터니만큼 애정도 깊다.
“영화는 드라마와 다르게 호흡이 짧아요. 드라마가 조금씩 캐릭터를 쌓아가는 식이라면, 영화는 등장부터 임팩트 있어야 하니까 조금 더 캐릭터에 대해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웹툰이나 드라마에서 팬분들이 접한 어딘지 이상하고 예민한 유정과 비교하면 영화에서는 톤을 끌어 올려서 훈남이지만 설이(여주인공)에게만 이상한 선배처럼 보이도록 했죠.” 영화판 유정에 대한 박해진의 설명이다. 영화 <치인트>에서는 이처럼 똑같은 배우가 똑같은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는 미묘한 차이점도 주목할 만한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해진은 ‘소처럼 일하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맨투맨>이 끝나면 <치인트> 촬영이, 그리고 현재 캐스팅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 드라마 <사자(四子)>도 준비돼 있다. 쉴 틈 없는 스케줄에 주연 배우로서 부담감도 이만저만이 아닐 터다. 그러나 박해진은 오히려 일상은 바쁠수록, 부담감은 높을수록 좋다는 입장이다.
“작품에 대한 부담은 항상 있고, 솔직히 말하면 그 부담을 이길 자신은 없어요. 하지만 그냥 즐기고, 또 부딪쳐야죠. 항상 그렇게 해야만 하는 직업이기도 하니까요. 작품을 시작하는 데에는 저 뿐만 아니라 감독님, 작가님, 스태프들, 다른 배우들로부터 수많은 도움이 있을 거예요. 제가 그 배역에서 최고로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주실 수 있는 분들과 함께 일하면서 가지는 부담은, 굳이 설명하자면 좋은 부담이겠죠. 그런 느낌도 놓치지 않고 작품에 임하려고 합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