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체 청년장사꾼이 노동착취 논란에 휩싸였다. 청년장사꾼 블로그 캡처.
“점포를 계속 내는 건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더 많은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서예요. 소상공인 창업도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청년장사꾼의 목표거든요.”
지난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이던 김윤규 청년장사꾼 대표는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일자리’를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가 ‘열정’과 ‘청춘’, ‘도전’을 일자리 정책의 주요 키워드로 내세우며 청년창업을 장려하던 시기, 무일푼 노점상에서 시작해 3년 만에 연 매출 20억 원의 사업가 반열에 오른 김 대표는 ‘성공한 청년 창업가’의 대표 주자였다.
“열정을 바탕으로 장사에 재미를 더해 고객을 행복하게 만든다”던 김 대표의 성공스토리는 많은 예비 청년창업가의 귀감이 됐다. 그는 여러 강연과 언론 인터뷰에서 ‘흙수저’ ‘삼포세대’ 등 청년들이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에서 도전과 희망을 설파했다. 김 대표는 ‘청년에게 창업 노하우를 알려준다’며 청년장사꾼에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수강생들은 50만 원의 교육비를 면제받는 대신 매장에서 일하는 ‘장사 체험’ 교육을 받으며 체험비를 받았다.
노동착취 논란이 불거진 이후 김윤규·김연석 청년장사꾼 대표는 SNS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성장이라는 핑계로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권리를 함께하는 직원들에게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해 죄송하다. 청년장사꾼을 함께 만들어온 전현직 동료에게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과거 및 현재 직원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약속했다.
그러나 해당 사과문에는 청년장사꾼을 응원했던 이들의 실망 섞인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한 누리꾼은 “내 친구는 당신을 보며 당신처럼 되는 꿈을 꿨다. 청년장사꾼이 되려 노력하는 그를 보며 감동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접하고 그가 받은 충격과 괴로워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내가 다 화가 난다”고 비판했다.
김윤규 청년장사꾼 대표는 SNS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비난은 계속되고 있다. 청년장사꾼 블로그 캡처.
재개발이 멈춰 낡은 집과 인쇄소만 남은 용산 인쇄소 골목은 주변이 고층빌딩으로 둘러싸여 흡사 외딴 섬 같아 보이는 곳이었다. 청년장사꾼은 지난 2014년 이 골목에서 폐업한 인쇄소 부지 6곳을 임차해 6개의 음식점을 한꺼번에 여는 ‘열정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열정도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며 고요했던 골목은 금세 활기를 되찾았다. 인적이 드물던 버려진 골목은 저녁이 되면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핫 플레이스’가 됐다.
지난 1일 오후 4시경 방문한 열정도 골목은 지나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한산했다. 새빨간 간판의 찌개 전문 식당과 일본식 선술집을 지나자 200m 남짓한 거리 양쪽에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6개의 음식점이 줄지어 있었다. 가게와 거리 곳곳에는 청년장사꾼 멤버들의 사진이 들어간 각종 홍보물이 눈에 띄었다. ‘열정을 만나면 정열이 솟는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려있다’ 등의 글귀도 보였다. 청년장사꾼이 운영하는 가게 앞 오각형의 작은 팻말에는 ‘열정업소 청년장사꾼’이라는 글귀와 함께 번지수가 적혀있었다. 청년장사꾼에서 운영하지 않는 주변 가게에도 ‘Passion island’라고 적힌 열정도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가옥을 개조해 만든 가게들은 간판의 불이 꺼져 있었다. 감자튀김, 파스타, 고깃집 등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는 청년장사꾼의 가게들은 저녁 장사를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자 오픈 준비를 위해 출근하는 청년장사꾼 멤버들 몇 명이 보였다. 검은색 폴로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직원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피곤한 표정을 채 지우지 못한 채 빠른 걸음을 하고 매장으로 향하는 직원의 등에는 ‘서빙밖에 모르는 바보’라는 익살스러운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열정도 6개 음식점 중 한 곳이 오픈을 준비 중인 모습.
과거 언론에 보도된 것만큼은 아니지만 열정도는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네온사인 간판에 불이 켜지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거리를 구경했다. 일부러 열정도 골목을 찾은 직장인과 대학생들로 가게는 가득 메워졌다. 매장의 규모가 작은 만큼 자리가 없어 다른 가게로 발걸음을 옮기는 손님도 있었다.
가게마다 조금씩 분위기는 달랐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웃음을 띤 채 일하고 있었다. 귀여운 캐릭터 모자를 쓰고 서빙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직원도 있었다. 일하던 와중에도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안녕하세요” “어디 가세요” 인사를 건넸다. 가게를 재방문하는 손님에게는 “오랜만이에요. 왜 이렇게 안 오셨어요?” 하고 넉살 좋게 안부를 물었다.
가게나 열정도 골목을 촬영하려 하면 앞에 나와 포즈를 취하며 “잘 나오나요? 예쁘게 찍어주세요”하는 농담도 잊지 않았다. 다만 노동착취 논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는 당황한 기색이 드러났다. 얼굴을 굳히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 매장의 매니저는 “(논란이 불거진) 이후에 이야기는 있었다. 그래도 현재 일하는 식구들은 흔들리면 안 되기 때문에 저희는 그냥 열심히 하는 거다”라고 답했다.
열정도에 위치한 청년장사꾼의 가게 직원들은 대부분 웃음 띤 얼굴로 일하고 있었다.
열정도 청년장사꾼 음식점들은 그곳에서 일하는 ‘청년’ 멤버들의 ‘활기’와 ‘열정’으로 입소문이 나며 인기를 끌었다. 열정도를 소개하는 언론 보도에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 일하는 청년들의 밝은 모습에 손님들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는 내용이 항상 포함돼 있었다.
발걸음 소리마저 경쾌한 골목에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열정도에서는 ‘밝은 청년’의 이미지가 소비되고 있었다. 청년은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씩씩하며, 도전을 기꺼워해야 한다는 이미지다.
그러나 한 청년장사꾼 교육프로그램의 이수자는 청년장사꾼의 노동착취 논란에 대해 “열정, 열정 하더니 돈도 열정페이였나. 열정적으로 일한다는 것이 억지스럽게 발랄하도록 강요되는 분위기라 견디기 힘들었다. 오래 일하는 직원이 드물던데,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고 일갈했다.
익명을 요구한 김 대표의 한 지인은 기자와의 만남에서 “김 대표는 렉서스를, 그의 아내는 벤츠를 몰면서도 직원들의 급여를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다. 일반 사업체면 욕을 덜 먹었을 텐데 이름 앞에 ‘청년’을 붙이고 열정 타령하던 업체라 더욱 실망스럽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열정도 골목을 나오며 거리 한 쪽에 세워져 있던 청년장사꾼의 소형차량을 발견했다. 차량에는 환하게 웃는 김윤규 대표의 얼굴과 함께 ‘마음만은 벤츠다’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