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10차 변론기일 공개변론에 배석한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 사진공동취재단
김 후보자는 광주민주화운동 시민군이 탄 버스를 운전했던 운전사에게 사형을 선고하기도 했고, ‘광주에서 공수부대들이 대학생들을 대검으로 찔러 죽였다’고 말한 이장에게 유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김 후보자가 선고한 7건의 판결이 재심에서 무죄가 됐다.
김 후보자 인사청문회 청문위원인 이채익 의원실 관계자는 “헌재소장은 어떠한 정치적 상황에서도 헌법을 끝까지 수호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는 자리인데 군부에 적극 협력했던 인물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겠냐”면서 “시대적 상황이 불가피했다는 핑계를 대지만 광주민주화운동 가담자들을 돕기 위해 무료 변론을 하거나 형량을 대폭 낮춰 선고했던 양심적인 법조인들도 많다”고 했다.
김 후보자가 남긴 판결문 곳곳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비하하는 표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김 후보자는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무기고를 탈취한 피고인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면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전남지역 대학생들의 불법가두시위가 점차 격렬화 되어 계엄군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유혈 사태가 발생하자 지역감정 및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각종 유언비어가 날조 유포되어 이에 현혹된 일부 시민들까지 가세해 폭도화된 것”이라고 적었다.
김 후보자는 가슴에 자상을 입은 여인의 시신을 검시하고 검시관 서명란에 직접 서명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적었던 것이다. 또 김 후보자는 직접 피해자 시신을 검시했음에도 ‘광주에서 공수부대들이 대학생들을 대검으로 찔러 죽였다’고 말한 이장에게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면서 유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판결문을 살펴본 또 다른 청문위원실 관계자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죄목으로 처벌하려면 당연히 발언이 허위사실인지 여부부터 가려야 할 텐데 채택된 증거를 보면 이장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는 주변인들의 진술뿐이다. 실제로 공수부대원들이 대학생들을 죽였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조사하지 않고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012년 헌법재판관 청문회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김재원 의원이 “분명히 검시관으로서 대검에 찔린 자상을 봤다고 했는데 판결에서는 허위사실 유포로 처벌했다. 결국 판결을 잘못한 것 아닌가”라고 묻자 “그런 점이 있는 것 같다”고 인정했다.
김 후보자가 시민군이 탄 버스를 운전했던 운전사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던 판결도 논란거리다. 김 후보자 측은 운전사가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 4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인정돼 사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피고인은 1995년 제정된 5·18특별법에 따라 개시된 재심사건에서 헌정질서를 수호하려는 행위로서 정당행위라고 인정돼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이채익 의원실 관계자는 “당시 운전사는 시야가 가려져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해 발생한 사고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과실치사가 적용되어야 하는데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한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김 후보자는 삼청교육대에서 도망친 사람들에게 계엄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하는 등의 방법으로 군부 정권에 조력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후보자는 삼청교육대에 있다가 1981년 형제의 사망소식을 듣고 도주했던 피고인에게도 징역 장기 1년, 단기 6월을 선고했다.
김 후보자의 광주민주화운동 판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지난 2012년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 때도 같은 내용이 쟁점이 된 바 있다. 김 후보자는 반성하는 의미로 헌법재판관에 취임한 직후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기도 했다. 한 청문위원실 관계자는 “김 후보자는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추천한 인사였다. 야당이 추천한 인사를 여당이 끝까지 반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 당시에는 대선 직전에 청문회가 개최돼 주목도 받지 못했다. 이제는 상황이 변했고 헌재소장은 헌법재판관보다 더 책임이 막중한 자리”라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면서 왜 이런 인사를 헌재소장으로 지명한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야당 청문위원들은 당시 김 후보자로부터 재판을 받았던 피해자들을 청문회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협조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청문위원실 관계자는 “어떤 피해자는 지난 대선 때 자기는 문재인을 찍었다면서 증인 출석을 거부했다“며 ”난처한 입장“이라고 귀띔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재판 피해자는 김이수 후보자를 용서했다 “이제는 용서할 수 있다. 헌재소장 지명 반대 안할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김 후보자로부터 징역 1년6개월 형을 선고받았던 피해자가 김 후보자를 용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해자 양 아무개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벌써 40년 가까이 지난 일이라 기억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면서 “이제는 김 후보자를 용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과정에서 억울한 점은 없었냐는 질문에는 “너무 어릴 때고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없다. 당시에는 법정에 서서 불러준 대로만 말했다. 그때는 재판이 잘못된 것인지, 잘된 것인지도 몰랐다. 재판정에 가서 마땅히 말할 기회도 없고 최후 변론하라고 해서 잘못했다고 한마디 한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 씨는 조사과정에서 엄청나게 구타를 당했다면서도 김 후보자는 그 같은 사실은 몰랐을 것이라고 감쌌다. 양 씨는 “이제 어쩌겠냐, 다 흘러간 세월인데. 개인적으로 김 후보자가 헌재소장이 되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