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그야말로 ‘파격인사’였다. 5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했다. 김 후보자는 재벌 저격수로 이름을 날린 진보 경제학자로 1999년 참여연대 재벌 감시단 단장을 맡은 뒤 재벌개혁운동에 앞장선 인사다.
청와대 조현옥 인사수석은 “경제력 집중의 완화 등 경제개혁에 대한 새정부 국정철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대·중소기업 관계의 정립 등 경제개혁에 대한 방향을 정립할 수 있는 적임자라 판단됐다”라고 설명했다.
김 후보자는 20년 가까이 재벌의 불공정행위를 비판해왔고 삼성 지배구조와 순환출자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인물이다. 문재인 정부 초대 공정위장으로 김 후보자가 내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순간 대기업 일각에서는 “올 것이 왔다”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잇단 악재에 직면했다. 먼저 이낙연 국무총리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도 곤욕을 치른 ‘위장전입’ 의혹이다. 김 후보자 가족은 1994년 3월 경기 구리시 교문동 동현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3년 뒤 김 후보자를 제외한 부인과 아들은 길 건너편 친척집인 교문동 한가람아파트로 분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자 배우자와 아들은 이곳에 주소지를 옮겼다가 17일 만에 말소하고 서울 중랑구 신내동으로 이사했다. 당시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김 후보자가 위장전입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김 후보자 측은 “당시 중학교 교사였던 김 후보자 부인이 지방 전근 발령 난 상태에서 건너편 친척집에서 아들을 학교에 보내려고 주소지를 옮겼다. 하지만 결국 그런 식으로 교육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부인이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이사했다”라고 해명했다.
김 후보자의 위장전입 의혹은 또 있다. 2002년 2월부터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전셋집을 마련해 살던 김 후보자는 2004년 8월 가족 동반으로 미국 예일대에 연수를 떠나면서 6개월간 자가 소유의 서울 양천구 목동아파트에 주소지를 옮겼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해외에 체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편물 수령을 위한 위장전입이었다”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같은 ‘위장전입’이지만 김 후보자와 강 후보자를 향한 온도차는 다르다. 강 후보자는 위장전입에 대한 거짓 해명으로 구설에 오른 반면 김 후보자는 구체적인 해명으로 정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여권에선 김 후보자의 위장 전입이 부동산 투기나 학군 배정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정상참작(?)을 해야 한다”라는 의견이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부동산 투기 목적 위장전입은 당연히 날려야 한다. 하지만 김 후보자의 경우는 좀 다르다. 한국당도 김 후보자의 위장전입에 대해서는 ‘별 문제 없다’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문 대통령 인사 5대 원칙 중에 위장전입이 있는 것은 맞지만 위장전입은 목적에 따라서 달리 구분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도 풀리지 않는 숙제다.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1999년 3월 서울 목동의 한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전용 면적 83㎡, 25평 크기 아파트를 5000만 원에 구입했다고 구청에 신고했다. 하지만 당시 아파트 시세는 평균 1억 8000만 원 정도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김 후보자가 다운 계약서로 세금을 탈루하려고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김 후보자 측은 “과거의 일이라서 사실관계 파악이 어렵다”라며 특별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자기 논문 표절 의혹도 꼬리를 문다. 김 후보자가 자신이 연구자로 참여한 정부용역 보고서를 베껴 논문을 작성했다는 의혹이다. 김 후보자가 2000년 8월 노사정 위원회에 ‘향후 금융 구조조정과 고용안정 방안’이라는 연구용역 보고서를 제출할 때 김 후보자 등 3명은 공동연구자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4개월 뒤 <산업노동연구> 제6권 제2호 ‘최근 금융시장 동향과 2차 금융 구조조정’이란 논문에서 같은 내용을 단독 명의로 게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논문의 모든 내용이 노사정위 용역 보고서를 복사한 수준이라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야권은 김 후보자를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다. 박맹우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은 “김 후보자는 마치 정의의 사도처럼 세상 옳은 소리 다 하고 다니고 남을 힐난해왔다. 본인만큼은 적어도 깨끗한 줄 알았는데 실상은 어땠나. 위장전입 다운계약 등의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세상 더러운 일 다 저지르고 다녔다”고 비난했다. 국민의당 역시 “김 후보자는 예선 탈락감이다. 사퇴해야 한다”라고 보탰다.
김 후보자 아들의 금융기관 인턴 특혜 채용 의혹도 심상치 않다. 김 후보자 아들 김 아무개 씨는 대학교 4학년 재학 당시 외국계 금융회사 BNP 파리바은행 인턴으로 뽑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외부 공고 없이 내부 추천 방식으로 지원해 28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김 씨의 학점이 4.3 만점에 2.81로 외국계 금융사 인턴 중에선 가장 낮은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자는 2013년 BNP 파리바에서 156만 원을 받고 강연을 했다. 일각에서는 “김 후보자의 계열사 강연으로 쌓은 인연이 인턴 채용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 후보자는 “아들의 인턴십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 아들이 인터넷 공모를 보고 응모해 합격한 것이거나 모교 교수의 추천을 받았던 것”이라고 해명했고 BNP 파리바 내부 분위기도 지나친 의혹 제기라는 분위기가 팽배하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이력 허위 표기 의혹도 나왔다. <CBS>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한 적이 없는 데도 이력을 허위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후보자는 2000년 9월부터 2001년 8월까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머물렀다고 한다. 방문연구원은 강의를 하는 초빙교수와 달리 수업을 듣는 입장이다.
민주당에서는 “대기업 차원의 김상조 때리기 작전이 시작됐다”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당 보좌관은 “김 후보자에 대한 의혹은 강력한 한 방이 없다. 야당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재벌 대기업의 입김 때문에 일단 흠집부터 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재벌 개혁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김 후보자를 향해 전방위 공격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